오늘도 저는 제가 느낄 수 있는 불안들과 싸우며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의 평안을 바라며 살았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을 했고 나름 열심히 일 했으며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딸아이와 함께 오후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이후 퇴근한 남편까지 함께 먹을 저녁식사 준비로 잠시 바빴다가 또 셋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몇 시간 뒤 육아는 퇴근했지만 쌓여있던 집안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설거지와 뒷정리를 끝으로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브런치스토리' 앞에 앉기 전까지 말이죠.
어제의 일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불안에 더 이상 매몰되지도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오직 앞을 바라보며 제가 해야 할 일에 집중했습니다. 불현듯 올라올 수 있는 갖가지 불안에 말도 안 되는 생각들 속에 더 이상 머물러있지도 않은 채 그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오직 마음 하나 지킬 수 있도록 미리 그어놨던 한계선 안에서 오늘의 일만을 겸손하게 마쳤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일상이 뭐 별거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앞서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평범함이 제겐 바람이 될 수 있기에 오늘의 나의 마음을 지킬 수 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특히 아이가 있음에도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감사하다는 고백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는 것에 더욱 행복이 짙어지는 오늘 밤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고백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였습니다. 그런 날엔 보통 끊임없는 자책과 후회가 남고 '만약 내가 좀 더 이랬다면 어땠을까' 라며 이미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을 그리는 자신이었습니다.
그만큼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김으로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던 지난 세월였습니다. 어쩌면 제게 딸아이가 태어남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불안들은 결국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엄마가 되고 나니 보이고 알게 된 사실이 있었고 동시에 내게는 없지만 딸아이에게는 주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보통 엄마를 생각하면 좋아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나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엄마를 엄마라 인정은 하지만 사실 좋아하는 사람에 속하진 않습니다. 부모 자식 간이 아니었다면 그다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엄만 제가 싫어하는 모습을 갖고 계셨고 그로 인해 벌어진 간격을 좁혀가기란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모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스스로 엄마와는 건강한 애착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엄마 입장에선 엄마도 처음이었고 늘 너한텐 최선이었다 말하실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제게는 늘 닮고 싶지는 않은 사람,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지 했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던 건 저였습니다. 그렇게 건강한 애착관계의 모습을 잘 모르고 자랐던 삶이었어서 그런지 점점 제 아이에게 주려는 사랑마저 사랑이 아닐 때가 많았습니다. 그 사랑은 사랑을 외쳤지만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오는비일관적인 양육태도에서 드러났습니다. 바로 엄마가 제게 보인 태도, 엄마가 말하는 사랑였습니다.
제가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 엄마의 모습이 제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부인하고 싶었습니다. 머리로는 싫다 외치면서도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는 즉 건강치 못하다 생각했던 방식들이 저를 그 안에 가둬뒀고 제 아이마저 괴롭히고 있었던 것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그대로 습득해 가는 아이, 자연스럽게 아이마저 엄마가 느끼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고 엄마의 사랑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는 것을 두려워했고 타인과의 관계 역시 원활하게 유지해 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 같아 보였습니다. 아이의 언행을 볼 때마다 불안정한 애착관계의 형태를 띨 때면 엄마인 자신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 자책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를 위해 제 나름의 노력을 해봤지만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거나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 때 언제쯤 이 숙제가 끝이 날까 막막함만 더해갔습니다. 즉 제가 받아야 할 건강한 사랑법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줄줄 아는 것 역시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들뿐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무엇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힘겨운 상황일지언정 내가 이를 감당할 수 있겠다 생각하면 시작부터 쉽게 느껴졌겠지만 감당하기 어렵다 느끼는 순간 시작은 그저 부담 자체가 될 수 있겠고 무엇을 하든 자신 없어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저는 늘 후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제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브런치스토리에 이 방향의 글들을 참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이것이 제 삶의 모토가 되면서 끊임없이자신을 변화시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그렇게 전 자신이 먼저(생각이) 건강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아닌 결국 제 자신의 문제였던 것였습니다.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아닌 그러한 환경과 건강치 못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자신은 엄마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살아갈 문제였던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제게 건강한 사랑을 주시진 않았지만 저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야 제 아이에게 역시 건강한 사랑을 줄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늘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전문가들 역시 불안정한 애착관계로 자란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니 아이는 제게 저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음에도 결과적으론 제가 더 나은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존재였습니다. 아이로 인해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지나간 시간을 안타까워하기보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삶을 살 거라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줬습니다. 비록 제게는 없었지만 내 아이한테만큼은 물려주고 싶은 그것, 바로 건강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 또 건강한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어갈 줄 아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도대체 건강한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제게는 일관된 양육 태도였습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엄마의 불안정한 모습이 아닌, 이런저런 불안의 형태가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강요받지 않는 것였습니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생각을 무시하지 않고 경험을 통해 성장해야 할 아이한테 퍼붓는 조언보다는 진심 어린 공감을 받는 것였습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사랑을 준다는 것은 그저 한결같이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 곁에 묵묵히 서 있어 주면 되는 사랑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그 실수를 통해 배울 줄도 아는 기다림이 부모에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말을 내뱉으려 할 때면 늘 자신의 감정을 먼저 되돌아보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건강한 사랑의 모습이고 제 아이한테만큼은 물려주고 싶은 엄마의 언행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오늘의 글을 쓰면서,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으로 즉 결핍된 사랑의 형태가 있었기에 자신을 알게 되었고 내 아이에게마저 주지 못한 사랑으로 진정 내가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줬던 아주 값진 시간였음을 믿습니다.
작가님들이 생각하시는 건강한 사랑이란 어떤 형태를 띠고 어떤 방법을 말하는 걸까 궁금해지는 밤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