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우미 Aug 01. 2024

뒤가 아닌 앞을 보며 나아갈 때.

계속 걸어가야죠, 살아가야죠.


치료를 시작하고 하루는 담당 교수님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제 치료 방향이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듣고 싶다고 말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사 입장에선 꽤 당황스러우셨을 텐데 예상외로 친절하게 답 해주셨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누구에게서 보상받기도 어렵겠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시간만큼은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고 병을 완전히 없앤다기보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주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환자가 느끼는 불안과 막연한 부담감들이 자연스럽게 감당이 될 만큼 그 정도의 삶을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과장하게 포장하지도 대충 둘러대지도 않았던 적절한 거리감의 신뢰가 담긴 교수님의 대답, 꽤나 현실적이면서 긍정적 희망 또한 품케도 하신 성실한 답변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대답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7년의 세월을 생각하기보다 앞으로 더 많이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보낼 때, 깨어있는 몇 시간 동안만큼은 덜 불안해하고 덜 부담을 느끼며 조금이라도 나라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중 제가 하고 있는 방법들을 몇 가지 덧붙여 얘기해보려 합니다.



1 자신을 알리세요.

남들보다 몇 배의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별 거 아닌 일도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도 갑자기 막막하다 느끼는 순간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셔야 해요. 스스로 자신의 불안상태를 인정하고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자신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에게는 미리 언급해 놔도 좋습니다.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제겐 남편이 그 상대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부모님껜 이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이전에 병원 다니던 시절 제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마음 아파하시던 어머니, 자기 때문은 아닐까 죄책감 갖고 계실 수도 있을 아버지(아빠 역시 병원 경력이 있어 유전적 영향이 높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전 이번엔 알리지 않았답니다. 사실 남편에게조차 이런 자신의 약함을 알리고 싶진 않았어요. 그것이 제 올무가 되어 다른 모든 것에 부정적 색안경이 써질까 봐 겁이 났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약함 또한 나인데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할까, 내 잘못도 아닌데' 라며 생각하고는 남편에게 말했던 것 같아요. 저의 마음이 담긴 이야길 곰곰이 듣더니 남편 역시 인정하더라고요. 제 잘못이 아님을요. 물론 스스로 가져야 할 책임감은 갖길 바랐던 것 같아요. 아픔을 핑계로 자신의 역할까진 소홀히 하지 않았음 하면서요. 그는 그게 다였어요. 아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전에 못 느꼈던 서로 간의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사랑일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의 형태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이제는 꽤 안정된 서로의 모습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아닌 이 사람이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조금 더 실감하는 요즘인 것 같아요.



2 자신의 행복을 먼저 챙기세요.

신혼 때는 남편을 먼저 챙겼고 아이가 태어나고선 딸과 남편 챙기기 바쁘다 보니 저는 늘 뒷전이었던 것 같아요. 먹을 것 역시 다 퍼주고 남은 게 있음 먹고 아님 말고 이런 식의 일상? 자신보단 남에게 도움이 더 되고 피해는 주고 싶지 않아서, 싫은 소리 듣고 싶진 않아서, 그나마 내가 좀 더 편한 쪽의 마음으로 행동하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결국 이 같은 행동은 자신을 위해선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답니다. 때론 내가 원하는 것을 과감하게 말할 필요가 있어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시길 바라요. 나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둔 뒤 그것에 먼저 집중해 보세요. 저는 프리랜서식의 일을 하고 있어 다른 워킹맘분들에 비해 조금 더 유동적인 면이 있어요. 집안일과 육아 외 가끔씩의 사회활동 및 하고 있는 공부시간을 제외하면 사실 남는 시간 거의 없긴 한데도 틈만 나면 꼭 저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 해요.

혼자서 영화관이나 미용실에 간다거나 먹고 싶었던 것을 먹으러 가요.(혼자서도 잘 먹어요) 길을 가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날 위한 선물'이라며 사주고 자신을 꾸미기도 해요. 꾸미는 방법이라 해봤자 반신욕이라던가 새 매니큐어를 바른다던가 얼굴에 팩을 붙이는 정도의 소소한 행동들이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날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답니다.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으러 도서관에 간다거나 밀린 드라마를 보며 눈물도 흘려보고 이 공간 브런치스토리에 와서는 자유롭게 글 또한 씁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응어리들을 풀어내는 글쓰기는 저 같은 사람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고요.(브런치스토리 감사해요) 그래서 일기를 자주 쓰려했던 제 습관적인 방법이 결국은 이곳으로 인도해 줬던 것 같아요.



3 불안을 전달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안 되는 것 중 하나인데 불안의 풍선이 점점 커지게 되면 결국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게 돼요. 혹시 인사이드아웃 2 보셨나요? 거기서 불안이란 캐릭터를 보며 참 많이 공감했던 게 있었어요. 바로 불안과 불안이 쌓여 결국 소용돌이치는 불안이의 마음상태, 그리고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의 모습까지 너무나 잘 표현해 줬던 것 같아요. 저도 가끔 그럴 때 있거든요. 제 마음인데도 통제가 잘 안 되는 그런 기분? 불안과 불안이 뒤섞여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해요.


인사이드 아웃2 '불안이'


그런데 그 불안은 꼭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 아시나요? 다른 감정을 모두 무시한 채(기쁨 슬픔 화남 부끄럼 기타 등등) 오직 불안의 감정은 강하게 전해질 수 있어요. 제게는 특히 아이한테 그랬던 것 같아요. 저보다 힘없고 약하다 생각되는 존재에게 너무 쉽게 부정적 감정을 내비치고 일관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기 때문였어요. 한없이 줘도 모자란다는 그 사랑을 전 늘 버겁다 느끼기도 했었고 온전히 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때도 많았어요. 어쩌면 제 이면에 갖고 있던 무언가의 불안이 앞서면서 완벽에 가까운 사랑을 계속 줘야만 할 것 같은 부담과 온전히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책과 불안에 늘 휩싸였던 거였죠. 꼭 그렇게 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사랑의 전부는 아닌데 말이죠. 불안은 사람의 생각을 참 어리석게 만들고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하는 것 같아요. 사랑이란 크고 작음의 형태도 아니고 완벽의 기준이란 것 자체가 모호할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주려했길래 말도 안 되는 불안만 가득한 사랑을 주려했을까요? 아이는 그저 엄마 곁에서 따뜻한 미소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엄마의 불안한 모습을 본다면 아이 역시 그 사랑이 단단한지 불안한지 다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마저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아요. 안정적 애착관계의 가장 중점은 엄마의 상태가 사랑을 주기에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를 먼저 살피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가 먼저 단단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단단해진다는 말은 여기서 건강해진다는 말과 동일하겠죠. 그리고 건강해진 엄마는 더 이상 자신의 불안을 아이와 나누려고도 전달하지도 않으려 노력해야 해요.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자신의 마음 상태를 컨트롤할 수 있을 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해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며 계속해나가야 서로에게 성장이 있어요. 아이와 엄마가 건강하기 위해 나의 건강을 위해 '함께 성장하는 건강'을 추구해 봐요.



4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마지막으로 저는 이 얘기도 드리고 싶어요. 성인들 대상으로 상담해 주시는 오은영박사님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요즘 현대인들의 성인들 역시 아이들 못지않게 자신의 약함 하나쯤은 다 갖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 저는 성인 ADHD인 한 연예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해서 병원 가길 거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혹 치료를 함과 동시에 이전의 삶과 다른 삶을 살게 될까 봐 겁이 난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혹 자신이 갖고 있는 달란트마저 없어질까 봐 무섭다고도 했고요. 약물의 도움을 받게 되면 어느 정도 삶에 제한이 있기도 하겠지만 크게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라 생각해요. 그리고 되려 더 나은 삶의 모습을 통해(건강을 되찾은) 또 다른 자신의 성장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고도 믿어요. 무엇보다 이 약함을 치료한다 해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님을 기억하셨음 해요.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조절해 감으로 '진짜 건강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면 배우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질병이 있다는 건 자신에게 흠이 아님을 이제 누구에게나 갖게 될 수 있는 거고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친구 같은 존재라는 것을요. 사실 두려울 수 있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도 숨겨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아주 잠시만 그 두려움 내려놓고 자신의 불편함을 전문가에게 들려주세요.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나의 어려움을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기 시작하면 풀리지 않던 것들일 풀리기 시작할 거예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도 방법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러니 용기 내보세요.




불안이 쌓여갈 수 있는 것 어쩌면 계속 뒤돌아봐서 그런 건 아닐까요? 이전과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 앞날인데 여전히 바뀔 게 없을 거라 미리 장담하는 선입견이 계속해서 자신을 가둬두는 건 아닐까요? 나는 지금과 똑같은 삶만 살게 될 거야 단정 짓기보다는 새롭게 펼쳐질 앞만 보길 원하신다면 이제 뒤돌아보는 행동을 조금씩 줄여가 보시면 어떨까요.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후회와 자책을 일삼기보다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엔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밝게 빛날 당신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계속 품고 있으면 언젠가 꼭 이뤄질 수밖에 없기에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기회가 될 때 자신을 드러내시길 조금만 더 용기의 손길을 내밀어보시길 바랍니다.


제 인생을 제 자신이 응원하듯 이 글을 읽는 작가님들의 삶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화요일 연재인데 제 몸상태가 좋지 않아 이틀이나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화요일에 바로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전 04화 짜 맞춰지는 퍼즐조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