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우미 Sep 05. 2024

풀리지 않는 숙제.

엄마 그리고 딸

1

며칠 전 친정엄마와 다툼이 있었습니다. 사실 엄마와의 관계는 그리 살갑진 않아 미묘한 거리 두기를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이날은 엄마도 저도 꽤나 예민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각자의 어려움 속에서 그만 상대에게 불똥이 튄 상황, 엄마는 제게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하셨고 전 엄마에게 서운하게 들릴 소리만 해댔습니다. 감정이 격해져 큰 소리까지 오고 갔고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더는 '후회할 짓 하지 말자' 생각하곤 입을 다물었습니다.


전 어릴 적부터 열등감이 심했습니다. 쌍둥이 동생에게마저 질투심이 많았기에 엄마에게서 더 큰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또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라며 공감 어린 반응을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엄마의 모습은 사랑 아닌 질책, '그랬구나'라는 말 대신 '그런데 엄마 생각에는'식의 충고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자신이 얼마나 낮은 자존감을 가졌는지 얼마나 타인에게서 관심받고 싶어 하는지 성인이 돼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삶이 스스로를 얼마나 다그치게 하고 얼마나 부질없는 삶이었는지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전 부모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지냈고 뒤늦은 독립심을 키워갔습니다, 낮아진 자존감은 이렇게 저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실천해 살다 보니 조금씩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의 변함없는 태도로 습관적인 나락에 떨어질 때가 있다는 것였습니다.


그날이 이와 같은 날였습니다.

마치 제게 치명적인 약점과도 같은 아킬레스건처럼 엄마는 제 인생의 그런 존재였습니다.

엄마를 바꾸려 아우성친 적도 있지만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나는 그렇게 살지 말자'라는 주의로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던 게 나의 감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했던 게 화근이 되어 이내 불꽃이 튀었습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갔으면 좋았을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전히 풀릴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이 숙제에 대해 숙연해지고 겸허해지자는 상태가 돼 버렸습니다. 나의 모난 자존심 내세워봤자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상황인데 왜 그리 열을 냈는지 그저 후회가 되고 의미 없다까지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엄마는 제게 소리쳐서 미안했다며, 잘하고 있는데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저도 뭐 하나 잘한 것 없는데 사실 제가 먼저 급발진한 것도 있는데 아직까지도 답장을 못하고 있습니다. 안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제자리 같은 기분 잠시 들었지만 이 또한 엄마와 딸의 관계 속에선 긍정의 방향으로 가는 쉼표 일 거라 생각하렵니다.

어떠한 해결을 바라고 어떻게 상황을 해석할지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기에 앞선 결론 역시 섣부르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엄마에게도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달라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제가 이 관계를 보다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또 건강하게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합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달라진 제가 엄마 앞에 서있길 바랄 뿐입니다.



2

엊그제 있었던 일였습니다. 아이와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몇 권 읽고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말하곤 하는데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자기를 껴주지 않았다는 얘기였습니다.


지금 이 시기 때 아이들 사이에서의 관계는 때에 따라 쉽게 변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함께 있을 때 일어날만한 상황을 배우는 단계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을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에게선 관심 또한 오래 받고 싶어 하는 제 아이에겐 이 같은 상황이 힘들게 느껴졌던 것였습니다.


어떤 상황였고 또 어떤 이유 때문에 아이들이 제 아이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일까? 혼자 자라다 보니 뭐든 자기 뜻대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친구들에겐 그저 이기심 많은 아이로 비쳐 그런 건 아녔을까 의심도 됐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후 아이는 갑자기 울먹이는 소리로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엄마 난 이유를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자 그 순간 이미 너무 커져있던 아이의 슬픔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5살밖에 안 됐는데 며칠간 얼마나 속상해하는 맘을 품었던 건지 그게 이렇게 울분이 되어 터져 나왔던 걸 보니 제 마음 역시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기도 하고 나의 행동을 돌아보자 타일러 보기도 하고 다른 친구와 더 친해질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며 좋게 말하려는 저였습니다. 근데 그것도 잠시 중단하고는 제가 어릴 적 듣고 싶었던 말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어 엄마도 마음이 아프네"라고 말하자 더 복받치며 엉엉 우는 아이였습니다.


아, 이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이가 더 커서 사춘기가 올 때쯤 이 보다 더한 고민도 품게 될 텐데 나는 과연 이 아이 옆에서 어떤 부모로 서 있어야 할지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눈물을 닦아주며 토닥이니 어느새 잠들어버린 아이, 울다가 재울 땐 꼭 꿈속에서도 힘들어하던데 바라보는 내내 제 마음도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기분였습니다.


남편과 이야길 나누고 부모가 어디까지 역할을 해줘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관계란 언제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그것에 연연하지 않게 키우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관계의 끝이 보였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아이와 충분히 이야길 하며 알게는 하지는 것과 마지막으로 전 제 아이가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전 타인을 많이 의식했기에 심지어 지금까지조차 부모나 상대에게서 사랑을 구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관계에 있어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였습니다. 나를 얼마큼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자존감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아이에게 '나는 그래도 내가 좋아'라는 책 한 권을 읽어줬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엄마를 사랑해 OO도 OO를 사랑해 줄 수 있겠니?"라고 묻자 똑같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유치원 등원하는데 제게 넌지시 말하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엄마, 나는 내가 좋아"라고 말하는 아이. 그 순간 제 마음 한 구석이 환해지는 기분였습니다.


여전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숙제가 쌓여만 갑니다.

지금까지도 해결하기 어렵다 하는 고민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른이 되어서도 풀기 어려운 엄마와의 관계처럼 제 아이에게 역시 전 어떤 엄마로서 살아갈지의 숙제가 늘 동일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성장이 필요한 딸이자 엄마이겠지만

이런 고민을 하는 제가 저는 귀하고 감사합니다.


크게 바뀌는 것 없겠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숙제이겠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더 나는 미래로 건강하게 살아가려 한다는 건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숙제 푸는 딸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사랑합니다. 완벽하지도 않고 모난 부분 많은 저이지만 구불구불해도 아이가 바라는 사랑의 모습이 될 때까지 이 걸음을 지속하려 합니다.



오늘도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출처 #엄마의 명언 #그림에다

이전 08화 마음과 동시에 몸을 다스려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