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어릴 적 자신을 되돌아봤고 부모의 양육태도, 성인이 된 자신의 삶까지 쭉 훑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더 이상 엄마를 미워하지 말자, 그저 나는 다르게 살아가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다짐은 수도 없이 해야만 했습니다.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어도 어느새 도루묵 마치 도돌이표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때가 많았기 때문였습니다. 최근까지도 똑같은 다짐을 했던 저였습니다.
'엄마를 미워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던 건 엄마의 태도, 생활방식, 가치관이나 신념 등이 스스로 생겨났다기보다 스쳐온 세월로 지나온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았을 거라 여겨 탓하는 게 의미 없어 보였습니다. 아주 가끔은 젊었을 때의 엄마를 떠올리며 만약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다면 분명 엄마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 확신까지 했기 때문였습니다. 그리고 탓하고 불평해 봤자 나의 아우성보단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각자의 변화만이 서로에게 의미롭게 다가올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 시간은 결국 엄마뿐만이 아닌 자신 또한 돌아볼 시간이었고 자신 역시 변화가 필요한 사람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 어쩌면 제 머릿속에도 엄마와 동일하거나 비슷하게 박혀있는 생각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태도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제게도 역시 엄마와 같은 즉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까지 보일 거라고 느꼈습니다. 생각하고 느꼈던 것 대부분은 역시나 그랬습니다.
제가 마주하기 싫었던 모습이 제 안에서도 보였고 제가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제 입으로 꺼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게 제 아이에게 향했을 땐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운 그저 나 역시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돌아봄은 결국 엄마를 원망하며 마주 앉아 소리칠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 반성하는 시간이 될 뿐이었습니다. 자책을 하기도 하고 누가 누굴 탓하고 있는 건지 허무함과 무력감마저 들었습니다. 이런 자신을 부인하고 싶다가도 지금의 내 모습이 나란 사람을 말해주고 있었기에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마주하게 된 자신의 민낯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빠른 수긍과 그럼에도 거기에 매몰돼있진 않게 다시 고쳐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즉 자신의 허물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되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로 되돌려 주지는 않도록 다듬으려 애썼습니다. 결국자신의 뾰족함을 둥글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다른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자신보다 약자인 상대라 느꼈고 자신의 생각이 정답인 마냥 소리치며 설득 중이었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몰아세웠습니다. 결국 후회할 짓이 돼버린다는 걸 예상하면서도 계속해서 상처되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죠. 제가 늘 그렇게 엄마에게 소리쳤었는데 이젠 제가 그 소릴 듣는 상황이었습니다. 감정 조절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겁주며 말하는 엄마의 모습, 이 모습만큼은 정말 닮고 싶지 않았었는데 오버랩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엄마의 나무람은 제게 딱 맞는 표현이었습니다. 저 역시 후회할 짓이라 여길 만큼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 여기서 멈추진 않았습니다. 자신의 허물이 들춰진 상황 속에서 상처 줬던 상대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후회가 밀려왔기에 이는 지금이라도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자 생각했기 때문였습니다. 결국 자신의 무례함을 용서해 달라고 다음엔 조금 더 지혜롭게 말하겠다고 말하며 상대의 이해심을 구했습니다. 다행히 용서를 받아줬고 이전과는 다른 대화가 웃음 띈 얼굴로 이어져 갔습니다.
저는 이따금씩 대화가 참 어렵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의 날것이 보이는 게 두렵습니다.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해 내는 방법이, 상황에 따라 자신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태도가 센스 있게 나오지 못합니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과정 중에 있기에 오늘도 배우고 내일도 배웁니다. 그렇게 저는 엄마와 다른 사람이 되고자 다른 삶을 살고자 조금씩 용기 내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제 아이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순간적으로 올라왔던 짜증의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냈고(아이가 고집을 피워 잠시 이성적인 생각에 한계가 왔던) 화를 가라앉힌 뒤 다시 대화를 이어가는 상황였습니다.
비록 저보다 한참 어린 작은 아이였지만 어른을 떠나 용서를 구할 땐 진심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진심을 받아줬습니다.
"OO아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해 그리고 OO가 엄마 딸이 되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더니
아이 역시 제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엄마 아까 나도 미안했어, 나도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워"라고요.
용기 내서 한 걸음 다가갔던 것뿐인데 아이 역시 함께 용기 내어 제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잠시 멀어졌던 관계가 이전보다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면서 보다 더 단단한 사이가 돼버린 기분였습니다.용기는 또 다른 이에게 전해질 수 있고 함께 변화를 이어가게 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친정엄마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길 어려워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도 감사하다는 말도 말이죠. 당신과 똑 닮은 딸이라 그런지 나와 비슷하면서도 마주하기 싫은 모습을 볼 때, 그저 날카로운 가시 돋기 바쁜 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정적 감정은 마냥 어둠 속에 가라앉거나 곪을 때까지 썩어 냄새날 때가 많았습니다. 제 때 제 때 풀려고 노력했다면 엄마는 안 했어도 나는 용기란 걸 내봤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요? 그랬으면 지금 이렇게 엄마와 닮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진 안 했을 텐데 그저 지나온 시간들 속 조금 더 용기 내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손 내미는 제 용기에 저와 엄마의 관계에도 조금씩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음을 봅니다. 물론 파도에 휩쓸려 다 날아가버리더라도 분명 우린 함께 변화 중에 있음을 믿습니다.
이제라도 고쳐 나가려는 자신을 보며 희망을 품어 봅니다. 마주하기 싫어했던 자신의 민낯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다른 결말을 향해 걸어 나가려는 지금의 용기라도 칭찬해주려 합니다. 한 번 한 번의 용기는 제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 돼 아이는 저와는 다른 결말로 살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고, 건강치 못한 표현방법엔 좀 더 나은 대안의 태도를 배우게끔 제가 먼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저와는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거거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살아온 길을 제 아이에게까지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전 그렇게 오늘도 저만의 용기를 내봅니다. 들추어지는 자신의 민낯을 허물을 포옹해 가면서 이마저도 사랑하고 둥근 하트의 모양이 될 때까지 다듬고 다듬어지려는 제가 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