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우미 Sep 19. 2024

나는 내가 좋아.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딸이라서 감사해요.


한 때는 제 자신을 원망한 적이 있습니다. 바랐던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달리 점점 더 형편없어 보이는 나란 사람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또 남 탓보다는 제탓하길 더 편해했던 저인지라 자존감은 늘 바닥을 쳤었고 장점 보단 없는 단점만 들추어내며 스스로를 비난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해 보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저는 타인조차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쉽게 다가가지도 다가오는 사람마저 밀어내기 바빴습니다. 혹여 꽤나 긍정적인 관계를 이어갔어도 늘 의심의 시선은 변함없었고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는 관계가 다였습니다. 마치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사회부적응자 같았습니다. 외로움은 자연스럽게 찾아왔고 혼자서 보내야 할 시간들은 익숙하기까지 했습니다.




1 남편

그런 제게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사람은 다른 아닌 남편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독립해 살아왔던 남편은 저와는 정반대적인 삶을 살았던 것였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을 책임질 줄 알았던 그는 내면이 단단했던 사람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존감이 높았으며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일에 두려움 없이 나섰습니다. 그를 만나게 된 건 운명이었습니다. 그를 만남과 동시에 점점 자신의 삶을 대립해 가며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겪기 시작했습니다.(뒤늦은 성춘기?) 바로 제게 없다시피했던 자존감 그리고 독립적인 선택들과 더불어 책임질 줄 아는 태도,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관심을 쏟았기 때문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같은 삶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다 생각했고 결국 저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먹음과 동시에 실전은 전쟁과도 같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다른 자신이 되어보겠다 하는 삶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의 삶을 눈여겨보며 조금씩 용기내기 시작했고 그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까지 성장의 과정을 목표로 계속해서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전엔 사람을 의지하기 바빴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기만을 택했다면 지금의 저는 꽤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줄도 알고 그렇기 때문에 외면보단 내면이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스스로 약물치료를 택했고 그에 맞게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예로 들자면 말이죠.) 저는 이제 제 자신을 사랑할 줄도 압니다. 자연스럽게 높아진 자존감은 상대에게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끊임없던 의심보단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의지해 모든 걸 함께 하기만을 바랐던 의존적인 아내의 모습을 떠나 홀로 서는 법부터 함께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반자적 아내의 모습까지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2 친정엄마

두 번째로 친정엄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인생은 늘 분주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배움의 목마름이 있었기에 무언가로부터의 채움을 갈망한 삶이었습니다. 6남매 중 장녀였던 엄만 동생들을 위해서 학교보단 일을 택하며 살았기 때문였습니다. 스스로 희생된 삶이었다 여기고 자신을 늘 애처롭게 여겼고 동정 어린 눈빛으로 연민의 감정을 토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경제적 부유함을 원하면서도 엄마의 남편 즉 나의 아빠는 그 모든 걸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더욱 악착같이 사셨습니다. 야간학교를 다니셨고 지금의 사업장을 운영하시기까지 아내이자 엄마면서 사업자로서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선택에 있어 책임지려 하면서도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엄마였습니다. 감당하기 버거워하면서도 내려놓지는 않은 마치 이도저도 아닌 그저 바쁘게 살고 있는 엄마일뿐였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엄마는 분명 지쳐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정받으려 노력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열등감과 자기 연민에 빠져 살아가는 엄마였습니다. 전 그런 엄마의 불안을 먹고 자랐습니다. 강압적이면서 짜인 규칙이 자신의 삶의 기준이 되도록 다그치는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내가 너보다 좀 더 살아 잘 안다는 이유로 자식을 틀 안에 가둬 키우던 엄마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바라던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내가 바라던 엄마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면 그릴수록 엄마와 부딪힘은 더해갔지만 보다 더 이상적인 엄마의 삶을 꿈꿀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이상적인 것보다 내가 바라던 엄마의 모습을 꿈꾸기 시작했고(조언이 아닌 공감해 줄 줄 아는 엄마, 뭐든 다 해주려 하는 엄마가 아닌 실수하더라도 지켜봐 주고 기다려줄 줄 아는 엄마) 그 꿈은 지금까지도 꾸고 있고 이루고픈 목표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엄마란 삶을 살아가기보다 아이에겐 보다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비춰줄 있다면야 더 이상 바랄 없다는 나의 진심 어린 소망이 되어 기도 또한 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론 엄마와 딸과의 관계가 친구처럼 가까워 보이는 사람을 볼 때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자신 역시 그런 관계를 꿈꾸며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 더 화기애애하게 보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자신이 그리고 엄마가 끊임없는 연단의 시간을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관계마저 부인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이러한 엄마와의 관계는 결국 나란 사람을 엄마란 이름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찰 끝에 찾아오는 밑바탕이 되어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딸

신생아 시절, 딸아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이 많았습니다. 물론 처음 아이를 키워보는 부모라면 아기의 모든 울음을 해석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자라면 자랄수록 순하다 생각했던 제 아이는 결코 순한 아이가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아이의 성향은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했지만 기저에 깔려있는 마치 변하기 쉽지 않은 부분에 '나 좀 예민해요'라고 적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긍정의 언어로 말하자면 '섬세해요'라는 표현으로 말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쉽게 이뤄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관에 들어가 적응을 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할 때도 아이가 크면 클수록 이러한 과정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육아, 좀 편하게 가면 안 되나 싶다가도 날 닮아 그런가 되려 자책과 차라리 아빠를 닮았음 하는 바람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가 말이 트이며 조금씩 세분화되는 감정을 표현할 땐 아이에게서 저와 비슷한 '불안'의 감정이 생각보다 많구나를 느꼈습니다. 아이는 엄마인 자신의 불안을 조금씩 먹으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불안한 모습이 보일 때마다 엄마인 자신의 불안도 커져갔고 목소리도 함께 커져갔습니다. 관계가 극에 달했을 땐 아이도 저도 모든 것을 나몰라라 하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절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는데 불안이 가득한 자신을 인정하고 아이의 불안마저 인정해주려 하니 긍휼과 용서의 마음이 셈 솟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그러니 서로가 같은 연약함을 안아줄 수 있도록 어른인 내가 먼저 아이에게 본이 되어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방법을 모를 뿐 배울 준비가 되어있었고 어른인 엄마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선뜻 먼저 나설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단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이와 함께 각자가 품고 있는 불안의 감정을 사랑할 있도록 불안이란 감정은 자연스러우면서 이를 인정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있게끔 함께 노력해나가고 있습니다. 조금씩 변화되어 갔고 그렇게 아이와 저는 서로 더욱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아이는 제게 없던 사랑의 표현을 때도 있습니다. 자신보다 많은 가능성을 품은 아이이기에 불안의 싹을 일찍 토닥여주니 제게선 볼 수 없는 사랑의 열매로 맺을 수도 있단 것 또한 알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이의 다채롭고도 무한한 사랑을 보았고 볼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아이는 저와 닮아있으면서도 다를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더 귀한 존재란 걸 인정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약함마저 사랑할 줄 알고 그 약함을 넘어 사랑의 열매로 맺어 갈 수 있는 이 과정이 참 뜻깊고 의미 있다고 느꼈습니다. 더구나 혼자만의 열매가 아닌 함께 이뤄갈 수 있는 열매이기에 앞으로 더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는 참 많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중에서 남편과 친정엄마 그리고 제 딸아이는 저를 다른 사람이 되기까지 꼭 만나야 했던 필연들이 되었습니다. 저와는 참 다른 사람들입니다.

제게 없는 걸 가지고 있었고, 제가 갖고 싶지 않은 것을 갖고 있었고, 제가 생각할 수도 없는 미지의 무언가를 품고 있는 이가 바로 이 들였습니다. 이들이 제 곁에 있었기에 저는 지금의 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을 만나 정말 많이 부딪혔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았던 서로였기에 당연한 가정였는데도 전 그 과정을 과정 속 모든 부딪힘을 이제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딪힘 속에서 제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틀 안에 갇혀있던 제가 나올 수 있는 과정이었고 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발견하게 해 줬으며 함께 나아갈 동반자 되어 같은 목표를 향해 손잡고 성장하는 그의 아내가 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였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를 만나 정말 많이 부딪혔고 지금도 부딪히는 중에 있습니다. 닮고 싶지 않아도 닮아 있기에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런데도 끊을 수도 없는 천륜이기에 엄마란 사람을 평생 마주해야 한다면, 나의 모난 부분을 둥글게 만들며 살아가란 메시지는 아닐까요?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기에 멈추지 말고 진정한 사랑의 모양을 꿈꾸는 제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엄마 역시 당신의 삶 속 변화를 꿈꾸길 원하며 제가 보일 수 있는 '변화의 삶' 역시 보여줄 각오마저 합니다. '나는 엄마와 다르다고, 엄마와는 다르게 살 거라고 그러니 지켜보라고 엄마가 말한 게 다 맞지는 않았다고, 내가 사는 삶은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을 만나 매일매일 부딪히고 있습니다. 5살짜리 아이와 싸워봤자 싸움이라 말하기도 민망할 때 많은데 좀 더 어른스럽게 엄마란 이름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성장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선택이자 책임이 뒤따르는 일 맞습니다. 제가 그럴 자격이 없다 느껴질 때 많지만 그럼에도 제 아이를 낳은 것을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부모가 된다는 건 스스로를 철들게 하고 정말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게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어른을 어른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다음세대를 향해 기성세대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어떤 생각을 품고 이들에게 본이 되어야 할지 알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수도 있는 인생였는데 자신보다 아이를 위한 삶을 수도 있게끔 헌신과 인내 그리고 겸손까지 배우게 하는 이보다 값진 경험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과는 다른 세 사람.

부딪힐 수밖에 없는 세 사람. 

하지만 그 부딪힘 속에서 결국엔 함께 웃으며 성장할 수 있는 우리임을 믿습니다.

 때론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 하지만 평생을 걸쳐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 그래서 전 이들과의 관계를 매일 사랑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만남으로 지금의 자신이 된 저를 그 누구보다 제일 많이 사랑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 말한 적 잘 없는 것 같은데

오늘은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매일매일 내가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이들과의 삶을 자유롭게 사랑할 줄도 아는 제가 되길 바라며 오늘만큼은 '그동안 사랑하느라 애썼다'라고 '앞으로도 사랑 이어나가길 바란다'며 속삭이겠습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10화 나는 엄마와 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