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자라는 시간
우리 반에는 아이들이 14명 있다.
그중 두 명은 조금 다른 리듬으로 하루를 산다.
누군가는 ‘특별한 아이들’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저 ‘우리 반 아이들’이라 부른다.
유민이는 말과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이다.
자주 눈치를 보고, 무엇이든 “선생님, 이거 해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마치 실수할까 두려운 듯, 늘 정답을 먼저 확인하려 한다.
현우는 집중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교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때때로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긴다. 눈을 잘 맞추지 않고, 친구들의 말에 반응하지 않거나 갑자기 큰 소리로 흥얼거리기도 한다.
유민이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한다. “선생님, 나 이거 못 해요.”
그 말속엔 ‘혼자 하기 무서워요’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말해준다.
“괜찮아. 차근차근하면 돼.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다가 도와줄게”
몇 분 후, 유민이는 내 시선을 확인한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현우는 자꾸 책상 밑으로 숨는다. 그럴 때면 나는 옆에 조용히 앉아 기다린다.
말 대신 블록 하나를 건네는 손짓은, 그날 그가 보여준 가장 큰 용기다.
현우와 함께한 어느 음악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리듬악기를 사용하는 수업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소리에 민감한 현우는 작은 징 소리에 놀라 책상 밑으로 숨어버렸다.
다른 아이들이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수업을 잠시 멈추고 천천히 현우 옆에 다가가 앉았다. 말 대신 작은 실로폰을 조심스럽게 내밀자, 현우는 손을 뻗어 한 번 두드렸다. 그 소리에 나는 웃었고, 그제야 현우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몇 분 뒤, 현우는 조심조심 책상 밖으로 나와 앉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날의 현우는 누구보다 음악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처음엔 “왜 유민이는 혼자 못 해요?” “현우는 우리랑 안 놀아요?”라는 말이 많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이야기했다.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고, 자라는 속도도 다르단다. 어떤 친구는 말로, 어떤 친구는 표정이나 행동으로 마음을 보여줄 수도 있어. 우리는 그걸 같이 배우는 중이야.”
한 번은 만들기 시간이었다. 유민이는 종이접기 설명을 듣고도 손을 떼지 못했다.
그때 혜원이 다가가 말했다. “유민아, 내가 옆에서 같이 해줄까?”
유민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혜원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도와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어느새 우리 교실에는 ‘서로 기다려주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현우는 그림을 좋아한다. 혼자 앉아 선을 반복적으로 그리거나 색을 겹쳐 칠한다. 말은 없지만, 색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날 현우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어느 날, 그림을 다 그러고 나서 현우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이건 나무예요.”
처음으로 말을 붙여준 순간이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복사해 교실 뒤 벽에 붙여 주었다.
다음 날, 몇몇 아이들이 “이거 현우가 그린 거예요? 진짜 멋지다!”라고 말했다.
현우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눈빛은 분명히 반짝이고 있었다.
교사로서의 하루는 늘 치열하다.
특히 통합반에서의 하루는 감정노동의 연속이다. 설명하고, 기다리고, 조율하고, 또 기다린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 끝에,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질 때,
그 모든 기다림은 충분히 값지다.
나는 이 교실에서 매일같이 배운다.
유민이에게선 포기하지 않는 연습을,
현우에게선 말보다 중요한 마음의 표현을,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에게선 ‘다름을 함께 품는 법’을.
그리고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자라지 않아도, 함께 자랄 수 있다는 이 진리를
이 아이들이 훗날 살아갈 세상에서도 잊지 않기를.
그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어떤 친구가 되고,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나는 천천히 그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