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대신해 수업을 중단시켜야 할 때, 발달지연을 이해하지 못한 친구의 부모가 강하게 항의할 때,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교실 뒤편, 조용한 그림자였다.
“그건 특수교사 역할이잖아요.”
그 말은 벽이었다.
아침이면 나는 현관 앞에 먼저 서 있었다.
큰 소리에 민감한 아이를 위해 이어폰을 챙기고, 혼자 화장실을 못 가는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급식 시간이 되면 수저를 잡기 어려운 아이의 손을 잡아 천천히 식판 위에 밥을 올려주었다.
때로는 교실 복도 한편에서 작은 눈높이로 무릎을 꿇고, 한 아이의 혼잣말에 귀 기울였다.
대그룹 시간에는 아이의 표정을 읽었고, 종이 위 낙서 대신 의자의 뒤틀림에 반응했다.
‘수업’보다 더 중요한 ‘생활’이 내 수업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기록되지 않았다.
하루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큰 소리로 울며 몸을 바닥에 던졌다.
친구들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고, 담임교사는 당황해 나를 찾았다.
나는 아이의 눈앞에 조용히 앉아,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꺼냈다.
울음은 멈췄고, 다시 조용해졌다.
그날 오후, 담임은 나에게 말했다.
“아, 진짜 대단하세요. 저는 진짜 저 상황에서 뭐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조금 아팠다. 내가 한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매일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서진이는 오늘 또 안 와요?”
아침 등원 시간, 하연이가 내 손을 잡고 물었다.
하연이의 질문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하연이가 말한 아이는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서진이는 종종 등원을 거부했다.
등원을 하면 정해진 자리에만 앉고, 종일 말없이 블록만 쌓았다.
서진이는 등원만 해도 큰 용기가 필요한 아이였다.
교실 안의 소음, 낯선 활동, 예측할 수 없는 변화—모든 게 서진이에게는 전쟁과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서진이의 하루를 위해 전날 밤부터 시각 일과표를 다시 만들고, 좋아하는 공룡 그림을 출력하고, 벽면에 새로운 구조를 그려 붙였다.
“서진이 자리는 항상 창가에. 시작은 초록색 카드로.” 작은 준비가 쌓여 아이 한 명의 교실이 만들어졌다.
한 번은 서진이가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체육 시간이 갑자기 미뤄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당황했고, 다른 선생님은 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나는 서진이 옆에 조용히 누웠다. “서진아, 우리 초록 카드부터 다시 해볼까?” 손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말하자, 서진이는 내 눈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아이들도 변했다. 블록 놀이를 하던 하연이가 어느 날 서진이 옆에 조심스럽게 앉더니 이렇게 말했다.
“같이 해도 돼? 서진이는 공룡 좋아하잖아.”
그 순간, 교실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같이’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단지, 옆에 앉아주는 것. 기다려주는 것. 말 대신 눈빛을 나누는 것. 그 작은 행동들이 교실 안에서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복도에서 다른 선생님이 무심히 말했다.
“서진이는 어차피 담임 선생님이 아니면 못 다루잖아요.”
나는 웃었지만, 마음은 아팠다.
내 하루의 90%는 서진이를 위한 준비였고, 나머지 10%는 다른 아이들이 서진이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특수교사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다리’와 같다.
교사와 아이, 아이와 아이, 가정과 기관 사이의 무게를 조용히 이어준다. 하지만 그 다리는 눈에 띄지 않고, 위를 걸어가는 사람만 빛을 받는다. 나는 기꺼이 그 그림자가 되기로 했지만, 가끔은 나도 빛이 필요했다.
어느 날, 통합학급 친구 하나가 쪽지를 건넸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이 좋아요.”
그 순간 나는 뭉클했다.
누군가가 내 ‘보이지 않는 역할’을 봐준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역할이지만, 그건 ‘없는 역할’이 아니다.
교실 뒤편에서 아이를 품어주는 시간도, 수업 시간에 나지막이 건네는 말 한마디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
아이들은 진심을 쏟는 사람을, 자기를 믿어준 눈빛을, 끝까지 곁에 있어 준 손길을 안다. 그 믿음 하나로 소리치지 않아도, 드러나지 않아도, 아이들 곁에서 가장 단단한 다리가 되기 위해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