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실, 너의 자리

기다림이 필요한 아이

by 다움

나는 교사의 역할이 아이들 사이의 틈을 메우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기질과 발달 속도를 가진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교실에서는 작은 오해도 쉽게 벽이 되어, 그 틈을 다정한 말과 기다림으로 잇는 사람이 교사라고 여겨왔다. 장애 통합 교사로 일하며 수많은 교실을 만났지만, 올해 맡은 이 교실은 조금 특별했다.


우리 반은 만 세 살 아이,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 다섯 살 아이가 모여 있는 통합반이다. 영아에서 유아로 막 넘어간 아이들이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가는 시기. 그리고 그 한가운데, 감정 조절이 어렵고 언어 발달이 지연된 민우가 있었다.

민우는 또래보다 키가 크고 다섯 살 아이에 비해 신체 발달은 앞섰지만, 상황에 맞는 말이나 표현은 거의 하지 못했다. 불안하거나 혼란스러울 때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장난감을 바닥에 내던지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이 그런 민우를 보고 놀라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처음 몇 주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민우의 감정이 언제 튈지 몰라 항상 예민하게 상황을 살펴야 했고, 아이들을 일일이 다독이며 설명해야 했다.

“민우는 지금 마음이 속상해서 그래.” “우리가 조금만 기다려주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민우 옆에 다가가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마음이 쓰였지만 민우를 따로 떼어두거나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우가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민우가 말로 감정을 잘 전달하지 못하니 민우에게 그림 카드나 표정 판으로 표현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감정이 격해질 땐 곁에서 앉아 ‘괜찮아, 여기 있어도 돼’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민우는 교실이라는 공간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었고, 친구가 다가오면 장난감을 내주는 등 작은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역시 조금씩 달라졌다.

놀이 시간에 민우가 조용히 블록을 쌓고 있으면, 한두 명 아이들이 옆에 앉아 자기 블록을 보여주기도 했다. “민우야, 이거 봐!” 말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더 이상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간식 시간, 민우가 친구의 자리에 실수로 앉자, 주희가 “괜찮아. 민우 거기 앉아도 돼.”라고 말했다.

그날은 처음으로 민우가 친구들의 공간 안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마냥 어리게만 여겼던 아이들이 다시 보였다.


나는 이 작은 교실에서, 마음이 자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것은 오랜 기다림과 관찰로 쌓이는 관계다.

민우가 아직 자기 이름을 또렷하게 부르진 못하지만, 민우를 피하던 친구들도 이제 민우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민우가 이거 좋아해요.” “민우 오늘 안 울었어요!” 그 말속에는 친구를 향한 인식과 존중이 담겨 있다.


5월에 우리는 작은 발표회를 준비했다. 무대에 민우가 오를 순 없었지만, 민우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교실 한쪽에서 손뼉을 쳤다.

그걸 본 몇몇 아이들도 함께 손뼉을 쳤다. 말하지 않아도, 노래하지 않아도 민우는 그 공간 안에 ‘함께’ 있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


민우를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건 아이들의 따뜻한 시선과, 교사의 느긋한 기다림, 그리고 서로를 향한 ‘괜찮아’라는 마음이었다.

이제야 알겠다. 교사가 모든 틈을 메우지 않아도 때로는 아이들이 직접 다리를 놓았고, 다름. 속에서도 어울리는 방법을 아이들 스스로 찾아갔다.


나의 교실, 너의 자리.

그 자리는 누구의 것도 아닌, 누구든 앉을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아이가 조용히 민우 옆에 앉을까.

그 이야기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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