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유아 통합교사 14년 차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매일은 여전히 새롭고, 조심스럽다.
부모 손을 떠나 처음으로 사회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아이들의 ‘첫 번째 교사’가 된다. 아이들을 맞이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뭉클하다.
이번 학기, 나는 수현이라는 아이를 만났다. 수현이의 부모님은 통합학급 배정에 대해 조심스러워했다. “너무 어리잖아요. 아이들이 아직 장애에 대해 모르니까… 혹시 따돌림이라도 당하면 어쩌죠?” 그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말하지 않아도 ‘통합’은 이상적이지만 ‘두려운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수현이는 말이 거의 없고, 새로운 환경에 특히 예민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 적응해 친구와 놀기 시작해도, 수현이는 한쪽 빈백에 조용히 앉아 손을 흔들거나 자신만의 노래를 반복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수현이는 ‘다른 아이’로 인식되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다가와서 “선생님, 수현이는 왜 맨날 안 놀아요?”라고 물었다. 그 물음은 우리 반에게 통합이라는 큰 주제를 풀어낼 기회였다.
“수현이는 말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몸짓이나 노래로 마음을 표현해. 우리 반에 있는 모든 친구는 서로 다르게 느끼고, 표현하고, 놀 수 있어. ”
그날 이후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해 보기’ 활동을 시작했다.
말이 아닌 몸짓으로, 표정으로, 색깔로 감정을 나타내 보는 놀이였다.
역할놀이 시간에는 다양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했고, 수현이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몸으로 말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은 점점 다름을 낯설어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다양한 표현 방식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주 조용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 블록 놀이 시간이었다. 하영이가 무심코 수현이 옆에 앉아 블록을 쌓기 시작했다. 수현이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블록 하나를 쥐었다.
그리고 그 블록을 하영이의 구조물 옆에 올려놓았다. 둘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장면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통합은 이렇게 말없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수현이는 점점 교실 속에 자리를 잡아갔다.
아침에 울지 않고 들어오기도 하고, 그림책을 넘기며 친구 옆에 앉기도 했다.
아이들도 수현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 역시 아이들을 보며 기다림의 의미,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교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배워갔다.
느리게 걸어가는 친구의 손을 기다려 잡아주는 일. 다르다는 이유로 선을 긋는 대신, 다름 속에서 배움을 찾고 이해하는 마음을 키우는 연습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통합학급 안에서 우리 모두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자라는 중이다.
다름은 결핍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 캐럴 블랙 (Carol Black), 교육작가
수현이는 여전히 말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우리 반을 가장 깊이 변화시킨 친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교사로서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교사로서 보냈던 삶은 아이보다 내가 먼저 변해야 했음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