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받아들였던 순간
아이들이 자유 놀이에 흠뻑 빠진 오후 시간, 교실 한쪽에서 ‘탁’ 하고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준호가 두 손을 주먹 쥔 채 서 있고, 그 앞엔 크레파스가 흩어져 있었다.
아이들 몇 명은 멈칫하다가 나를 쳐다봤다.
“선생님, 준호가 또 던졌어요.”
“쟤랑 놀지 않을 거예요, 무서워요.”
교실 안 공기가 순간적으로 무거워졌다.
나는 준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당장 무슨 말을 하기보다, 그가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을 꺼내 그의 손 가까이에 놓아주었다.
준호는 내 손끝을 힐끗 보더니,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다섯 살 준호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다.
첫 등원을 하던 날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채 교실 문턱에서 낯선 공간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엄마가 집으로 간 뒤에도 다른 아이들처럼 ‘안녕!’ 인사도 하지 않았고, 내 손을 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손에 꼭 쥐고 온 작은 자동차 장난감을 테이블 모서리에 톡톡 부딪히며, 일정한 리듬을 만들었다.
그게 준호가 세상을 탐색하는 방식이었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놀이’였다.
그날 자폐성 장애아를 실제로 마주하니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준호는 우리랑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갑자기 누가 다가오면 놀라요. 우리도 무서우면 소리 지를 때 있지?”
“맞아! 나도 어두울 때 무서워!”
“그러니까 준호가 편안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우리는 작은 약속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준호의 자리에 작은 표시를 붙였고, 사용 중인 물건에는 “준호표” 스티커를 붙였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놀이 시간에는 준호가 앉아 있는 공간을 자연스럽게 비워두었고, 누군가 준호의 장난감을 건드리면 “그건 준호 거야. 아직 쓰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아이도 생겼다.
그날 준호는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작게 웃었다.
짧고 조용한 웃음이었지만, 그건 우리 반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준호도 달라졌다.
활동 시작 전에 교사와 함께 그림카드로 일정을 확인하고, 자기 자리에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소리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이 줄어들었다.
말은 없지만, 자기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짓기도 했다.
준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통합학급 교사로 있다.
그동안 수많은 준호들을 만났고, 그만큼 다양한 '다름'과 마주했다.
그 아이들 모두가 내게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이해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가르쳐주었다.
준호의 그 조용한 웃음은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그건 다름을 마주한 순간, 우리가 함께 만든 다리가 놓였다는 신호였다.
지금도 여전히 매년, 매 순간 아이들 각자의 다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 다름이 모여 얼마나 넓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를 처음처럼 배우고 있다. 다름을 받아들였던 순간이 나를 통합 교사로서 지금까지 걷게 한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