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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괜찮나요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by 다움

“선생님, 우리 아이… 괜찮은 걸까요?”

교실 문을 조심스레 열며 들어선 어머니의 말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수십 차례 반복해서 돌아 오지만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아이가 모두 다르고, 그 다름을 수치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를 가진 아이 부모의 질문은 더 깊고 날카롭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기에, 부모는 늘 걱정을 품고 살아간다.

혹시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 아닐까, 속상했는데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건 아닐까.

아이가 말 대신 울음이나 행동으로 신호를 보내는데 제대로 이해받고 보살핌을 받는지 부모는 불안하다.

“우리 아이, 괜찮은 걸까요?”

그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럼요, 아이는 잘 자라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말 안에는 단순한 위로 이상의 의미다. 나는 정말로, 아이가 괜찮다고 믿는다. 다만, ‘남들과 똑같이’ 괜찮은 건 아닐 수 있다.

그 아이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건 조금 느릴 수도 있고, 전혀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건 기다림이고, 관심이다.


장애통합교사로 산다는 것은, 매일같이 질문 앞에 서는 일이다.

‘이건 정말 이 아이에게 맞는 방식일까?’, ‘내가 도와준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늘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전문가로 불리지만, 아이들 앞에서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다.

말 한마디, 눈길 한 번에 숨겨진 아이의 메시지를 읽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기록하고, 동료 교사들과 나누며 답을 찾아간다.

통합은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때로는 일반 아동의 부모들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기도 하고, 교실의 분위기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운이 빠지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요즘은 오히려 달라서 더 많이 배우고 있는 장면들을 교실에서 종종 보게 된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너 달이 지나면 말이 느린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의 손을 잡고, 감각에 민감한 아이가 조심스레 친구와 퍼즐을 맞추며 웃는다. 시간이 필요했을 뿐 누구나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누는 장면을 볼 때마다 이 길이 옳았다고 믿게 된다.


그렇지만 가끔은 내 마음도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는 듯한 하루, 수없이 반복되는 문제 행동, 부모님의 눈물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었을까’라는 자책에 불안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드는 건 아이들의 눈이다.

말보다 더 많은 걸 말하는 그 눈동자에서 두려움과 기대를 발겨한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그 마음이 나를 다시 일으킨다.


“선생님, 우리 아이… 괜찮은 걸까요?”

오늘도 같은 질문이 날아오고 내 대답은 조금 더 길어진다.

“ 괜찮지 않은 날이 있어도 괜찮아요. 우리는 함께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그 길은 빠르지 않다.

때로는 넘어지고 멈춰 서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나는 수많은 아이들의 손을 잡았고, 부모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14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모든 아이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그 속에는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까지 들으려는 노력’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니 다시 말한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우리 아이는 오늘도 자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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