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음, 지켜주는 사랑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복도를 타고 흐른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그 소리는 언제 들어도 반갑다.
장애통합교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의 다름을 ‘함께함’으로 바꾸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다르다’는 말 대신, ‘괜찮은가’만을 반복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요즘 어린이집은 평가인증 준비로 분주하다.
문서 하나, 활동사진 하나에도 꼼꼼한 설명이 필요하고, 작년과는 다른 기준에 맞추기 위해 팀원들과 밤늦게까지 회의가 이어진다.
일에선 단단해졌지만, 집에 돌아오면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딸아이는 삼수 중이다.
어제부턴가 수다가 줄어들고 그저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아들은 올해 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이다.
취업 정보 카페를 들락거리고, 자소서를 쓰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가끔 아이들 방문 앞에서 서성인다.
‘괜찮아. 지금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혹시 부담이 될까 봐 문을 두드리는 대신
국을 데우고 반찬을 만드는 것으로 아이들을 응원한다.
며칠 전엔 학부모 상담 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스럽게 대해요? 저는 제 아이 하나도 버거운데.”
나는 웃었다.
"저도 집에서는 그래요. 제 아이들에게 제대로 해주고 있는 건지 늘 헷갈려요."
아이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데는 관대하면서,
정작 내 아이들에겐 실수 하나에도 숨이 막힌다.
엄마이기에, 교사이기에,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불안을 부풀린다.
그날, 수업이 끝난 오후, 한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나는 선생님 있으면 안 무서워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그래, 선생님도 네가 있어서 안 무서워.”라고 말했지만,
문득 떠오른 얼굴은 딸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나를 그렇게 느꼈던 적이 있었을까?
아들도, 내가 곁에 있어서 덜 외로웠던 순간이 있었을까?
그날 밤, 식탁에 셋이 마주 앉았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는 표정들.
그저 서로를 향해 조심스레 숟가락을 움직일 뿐이었다.
침묵이 답답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너희들, 요즘 나 때문에 힘든 건 없니?”
딸이 고개를 들었다.
“왜 엄마 때문이야? 엄마는 늘 우리 생각만 하잖아.”
“아니야. 엄마가 도와준다고 하면서, 사실은 엄마가 더 불안했던 것 같아.
너희가 잘되기를 바란다면서, 너희보다 내가 더 걱정이 앞섰던 거야.
혹시… 그 불안이 너희한테 부담이었을까 봐.”
한참을 침묵하던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그 불안도 사랑이었잖아, 엄마.”
순간 눈물이 솟았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수많은 밤이, 입술에 맺혔다.
매일이 전쟁 같았고, 혼자 버티는 줄 알았지만,
아이들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견디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딸아이가 작은 쪽지를 책상 위에 두고 갔다.
“엄마, 이번 시험엔 나를 믿어볼게.
그리고 엄마도… 엄마 자신을 조금만 믿어줘.”
나는 그 쪽지를 손에 쥔 채,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졌다.
평가인증도, 취업도, 입시도 아직 결과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불안 속에 있지만,
불안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조용히 우리를 앞으로 이끌고 있다.
어쩌면, 모정은 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프게 걱정하고, 조용히 견디고, 때론 아무 말 없이 기다리는 것.
불안은 사랑의 그림자였고,
사랑은 결국, 그 불안을 감당해 내려는 마음이었다.
오늘도 서툰 손길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불안을 품고
아이들의 하루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 불안 끝에 도달할 작은 평온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