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고열로 입원하고, 남편은 출장 중이었으며, 병원비 정산과 다음 날 출근 걱정까지 한꺼번에 몰려온 그 밤, 나는 처음으로 ‘어른’이라는 무게가 내 어깨 위에 올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참아야 했던 순간은 그 이후에도 수도 없이 많았다.
아이들 앞에서는 슬픔을 숨겨야 했고, 직장에서는 억울한 말을 들어도 참고 지나가야 했다. 통합 교사로 일하면서 맞닥뜨린 오해와 편견 앞에서 침묵해야 했다.
"선생님이니까 이해해 주셔야죠", "아직도 그 아이랑 수업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감정은 작게 접혀 가방에 들어가듯 감춰졌다.
아이의 문제행동으로 보호자와 면담하던 날이었다.
그 아이는 말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아동이었고, 여러 차례 소리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일이 반복됐다.
아이의 신호를 먼저 알아채기 위해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보호자는 오히려 "선생님 관리가 부족한 거 아니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 말에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눌렀던 감정이 쌓여서 결국 어깨가 굳고,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위염, 불면, 그리고 공황 증상 초기라고 했다.
참는 일이 익숙해진 어른은 그저 다음 날을 준비할 뿐이었다.
울고 싶은 날에도 아이 도시락을 싸고, 억울한 날에도 미소로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모두 무기력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어느 날,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화날 때 어떻게 해?” 그 질문에 나는 솔직해지고 싶었다. “화나고, 속상하고, 울고 싶을 때는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글을 써.”
그날 이후로 감정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말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조용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통해서 곪았던 마음의 생채기가 조금씩 회복 중이다.
지금도 문제를 만나지만, 예전과는 달라졌다 무작정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스스로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불같이 날뛰던 마음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아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힘. 그게 나에게 남은 ‘어른’의 흔적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픔을 감추는 법을 배우고 슬픔과 공존하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다양한 감정들을 끌어안고 하루를 살아간다. 말하지 못한 감정도, 책임의 무게도, 이제는 내 안에서 의미가 되어 흐르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무게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