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이유

밑줄긋는 문장

by 다움


멈추는 건

문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날의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날 그 문장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읽고, 속도를 늦추고,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마음에 남는 문장은 늘 다르다.

어제는 아무렇지 않던 말이 오늘은 오래 머문다.

잘 알려진 말이라고 해서 더 가까운 것도 아니고, 평범한 문장이라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순간의 감정과 닿아 있을 때, 문장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기억에 남을 말을 찾지 않는다.

완성된 문장보다 망설임이 남아 있는 문장을, 다듬어진 말보다 숨을 고른 흔적이 보이는 문장을 오래 바라본다.

글 속에서만 그럴듯한 말은 쉽게 지나가지만, 삶의 결이 묻어 있는 문장은 남는다.


내가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은 대체로 이럴 때다.

글쓴이가 설명하려 들지 않을 때,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을 때,

그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놓아둘 때.


그래서 독자인 나는 글쓴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억에 남기 위한 말을 쓰지 않아도 된다.

잘 보이려는 문장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써 내려간 글이면 충분하다.

멈추는 일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이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나는 다시 글쓴이의 자리에 서 있다.

나는 얼마나 멈춤을 의식하며 문장을 써 왔는지,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다는 이유로

정작 나의 말을 미뤄 두고 있었는지 돌아본다.


어쩌면 내가 써야 할 문장은

끝내 지우지 못하고 남겨진 문장일지도 모른다.


잘 쓰이지 않아도 좋고,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날의 나에게서

도망치지 않은 말이라면.


그리고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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