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나에게

위로받고 싶은 날

by 다움


<따로 또 같이 쓰는 첫 문장>

돌아보면 참 무지했다. ~ 에서


출처 <다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84쪽


돌아보면 참 무지했다. 나를 잘 안다고 여겼는데 부족한 나를 발견할 때면 나조차도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조금씩 흩뿌리던 빗줄기가 굵어지고 바람마저 불었다.

비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마시는 차는 더욱 향기롭고 달콤했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니 거실 가득 평온함이 넘쳤다.


평소라면 지하철에서 졸거나 눈을 부릅뜨고 책장을 넘기고 있을 시각이었다. 휴가 중이라 티셔츠랑 핫팬츠 차림으로,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달콤한 상상에 빠졌다. 하지만 온몸에 찌릿한 통증이 시작되고 현실을 깨닫게 됐었다. 전날 그 일만 없었다면 비 오는 숲 속을 걸었을 테지만, 당분간 꼼짝없이 집에서 보내야 할 운명이었다. 무릎이며 팔꿈치, 손바닥, 손가락까지 너무나 아프고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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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첫날 새벽 산행을 하고 활기차게 하루를 열었다.

점심도 야무지게 챙겨 먹고, 영화를 보면서 평화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꽤 그럴싸하게 즐기는 중에 갑자기 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응? “이 시간에 어쩐 일로?” 갑작스러운 출현에 마음의 소리가 나와버렸다.

“공부하다가 화장실 가려고 나왔는데 핸드폰을 두고 와서 재입실 때문에 엄마 핸드폰이 필요해!”

평소 건망증을 보일 때마다 딸의 잔소리를 들었다.

이때다 싶어서 냉큼 “아니 젊은 애가 웬일이니?” 하고 말꼬리를 잡았다.

순간 가뜩이나 짜증 난 아이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아차 싶어서 얼른 갈비탕을 데워서 밥상을 차렸다.

음식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먹는 걸 보니 틀림없는 내 딸이었다.

게 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먹어 치우고 다시 나갈 채비 중이었다.

아쉽지만 재미있게 감상하던 영화도 끄고 딸이랑 집을 나섰다.

자기도 어이가 없었던지 투덜이 스머프처럼 쫑알대는 아이에게 위로를 건넸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저녁 미리 먹고 잠시 쉰 거로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재미있게 보다가 중단한 영화가 생각나고 괜히 시간을 낭비했단 생각이 들자, 조바심이 일었다.

서둘러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건널목을 달리다가 그만 앞으로 철퍼덕!

만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넘어져 버렸다.

넘어지는 찰나에도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보행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없었고, 운동화를 신어서 너무나 안전한 상태였다.

다만 급하게 뛰느라 내 발에 걸려서 넘어진 것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얼굴을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손에 들었던 우산은 망가지고 무릎에선 피가 뚝뚝 흘렀다.

너무 아팠지만 마냥 엎드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초록불이 깜빡거리고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이 사방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절뚝거리면서 건널목을 건넜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통증보다 부끄러움이 더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아는 얼굴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생중계를 지켜본 수많은 눈들이 있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겠지만, 온몸을 던져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들의 저녁 안주가 되거나 심심풀이 땅콩이 된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서둘러서 그 자리를 벗어나는 수밖에....

집으로 오자마자 상처에 소독액을 붓는데 영혼이 가출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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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상처를 본 남편은 운동신경이 둔해졌다며 놀려댔다.

“뭐라고요?” 발끈했지만, 남편의 표정은 진지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더니 “ 다 나을 때까지 꼼짝 말고 집에 있어”라는 말만 남기고 출근해 버렸다.

다치는 걸 보더니 숫제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취급이다.


‘아! 나는 언제 즈음 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어쩌면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어렵겠다.’라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누구나 약점을 안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사람도 신이 아닌 이상 자기만의 아킬레스건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날은 끝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을 붙들고 나를 구하는 주문이 필요했었다.

기껏 머리를 쥐어짜며 내게 던진 위로는...

‘그냥 생긴 대로 살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였다.

멋지지 않은 말이라도 괜찮았다.

자책대신 위로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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