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여행
<따로 또 같이 쓰는 첫 문장>
모퉁이를 돌았더니 운동기구며 지압 길까지 잘 갖춰진 공원이다.
출처 : <당신의 여행은 어느 쪽인가요> 31쪽,
모퉁이를 돌았더니 운동기구며 지압 길까지 잘 갖춰진 공원이다. 저녁에는 인적이 드물고 고요한데 아침에는 걷거나 달리는 이들과 운동하는 이들로 활기차다. 덩달아 걸음에도 생기가 실린다.
걷기를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자연을 만난다.
4월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하지만 눈을 돌리면 어디든 고운 빛을 뽐내는 꽃 천지라 황홀하다.
연한 잎사귀가 초록을 더 해가는 모습도 기특하다.
길가에 납작 엎드린 채로 피어있는 작고 앙증맞은 꽃송이도 갖출 것은 다 갖췄다.
절로 나고 자란 생명력도 부럽고 고운 자태에 ‘아! 예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갖고 싶지만 차마 꺾을 수 없어서 휴대전화기에 담는다.
쭈그리고 앉아서 향기를 맡고 꽃잎을 들여다보느라 출근길임을 잊었다.
시간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걸음을 재촉한다.
아름다움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유혹에 특히 약한 나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매일 눈을 뜨자마자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열면 한눈에 들어오는 하늘은 시시각각 다른 빛이다.
뭉게구름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내 마음도 덩달아 몽글몽글해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경비실이다.
부지런한 경비원 아저씨는 재활용품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잘 다녀오세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마주치는 이들에게 웃으면서 건네는 인사는 나에게 보내는 응원이며 열심을 내고 안전하게 돌아오겠다는 다짐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진다.’라는 말처럼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아파트를 가로질러 중문으로 나오면 신호등을 만난다.
잰걸음도 멈추게 되는 구간이다.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주변을 둘러본다.
왼쪽에는 마트가 있고 오른쪽에는 분식 가게가 있다
평소에는 북적이지만 이른 시간이라 문은 굳게 닫혀있다.
신호를 건너 골목길에 접어들면 파닭치킨이 맛있는 호프집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방문 요양센터가 있다.
불 꺼진 상가는 회색 어둠을 닮았다.
걸음을 재촉해서 교회를 지나고 우측 골목에 접어들면 이삿짐센터가 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인부들은 커피를 마시며 일을 준비하는데.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50대 전후의 레깅스 차림의 사내인데 형광색 긴 티셔츠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너무 말라서 이삿짐센터 일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늘 함께 있는 걸 보면 이삿짐 일은 힘보다 요령으로 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아침마다 보게 되니 익숙해져서 하마터면 인사를 건넬 뻔했다.
이른 아침 골목은 한적하고 고요하지만 구석구석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커튼이 아름다운 찻집,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전시된 공방, 동화나 만화 영화 주인공이 그려진 벽화를 볼 때마다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장미를 사랑하는 어린 왕자가 다시 자기 별로 돌아가는 장면과 빨간 머리 앤의 웃는 얼굴은 볼 때마다 설렌다.
일어나라고 소리 지르는 안주인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 담장 너머 삐죽 얼굴을 내민 올망졸망한 꽃들과 귀여운 초록 잎사귀들은 눈과 귀를 간질인다.
깨닫지 못할 뿐, 우리는 매일 새날을 맞이한다.
절기는 반복되지만, 어떤 날도 같은 날은 없다.
매 일을 특별하게 맞아야 할 이유다.
성큼 와버린 봄을 즐기는 호사는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더구나 짧은 봄날이니 더욱 애틋하다.
풍경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지하철역이다.
걷기가 끝나고 지하철에 오른다.
콧등에 땀방울이 맺히고 기분 좋은 온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걷기로 시작하는 하루는 일과를 거뜬히 견딜 힘을 준다.
그 힘으로 오늘도 내일도 열심을 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