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의 허세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한 것들

by 싱긋


<따로 또 같이 쓰는 첫 문장>

돌아보면 참 무지했다.


출처: <다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84쪽



돌아보면 참 무지했다.

스스로가 관대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정작 나는 나를 품을 줄 몰랐다.




요즘도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

현재 출연진들의 마지막 라이브 방송 소식을 접했다. 그중, 특히 이슈가 되는 발언이 있었다.


"우리 기수가 허세 특집이어서 나는 어떤 허세를 부렸는지 되돌아봤다. "관용의 허세"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상대를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졌다."


서로를 믿는다면 남사친을 만나는 것도 괜찮다던 자신의 말을 반성한다는 뜻이었다.



"관용의 허세."

짧은 단어로 복잡한 상황과 숨은 진심을 이렇게나 선명하게 압축하다니, 그분의 자기성찰과 표현력에 깜짝 놀랐다.





문득 깨달았다.

나 역시, 내가 관대하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



나에게 관용이란, 남의 다름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이해하는 일이었다. 내 안에 불편한 감정이 올라와도, 상대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짐작해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갈등을 싫어하는 성향 탓에, 이런 일은 종종 벌어졌다.



서운하고 불편해져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감정 먼저 억눌렀다. 상황을 나름대로 분해하고 조립하며 이해하려 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알 수 없는 사정을 이리저리 상상하다, 공감이랍시고 결국은 보기 좋게 덮어버렸다. 때로는 아무리 품으려 해도, 도저히 품지 못할 사람도 있었다.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갈등에 얽매이는 것도, 마음이 곤란해지는 것도 싫어 서둘러 무마하고, 혼자 결론지어버렸다. 스트레스는 가라앉은 듯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나를 잃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우아한 척, 너그러운 척.

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이해를 가장한 회피였다.



실상은 이랬다.

상대를 이해하느라 정작 내 감정을 모른 척했다. 아프고 상처받은 나를 알아주지 않고 무시했다. 나는 괜찮다고 속였다.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버리고 있었다.



쓸쓸함은 점점 짙어졌고,

나는 점점 흐려졌다.



관용은 먼저 나를 품는 것이다. 나의 감정을 직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넉넉해진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진정으로 남을 품을 수 있는 거였다.



관용은 감정을 억눌러 얻는 미덕이 아니라

못난 내 감정까지 마주하는 용기다.



"나와 다른 당신의 이런 점이 불편해요. 그래도 당신을 존중해요."

나의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것.

아무렇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려 애쓰는 것.

그것이 나와 타인의 경계 사이에서, 건강하게 나를 지키고 남을 존중할 수 있는 진짜 관용이다.



관용을 말하기 전에, 나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나를 품지 못한 관용은 결국 아무도 품지 못한다. 나를 뒤로 밀어둔 채 바깥으로만 쌓이는 관용은 언젠가 무너진다. 관용을 잔뜩 누려본 주체로서 내가 먼저 든든히 설 때, 관용은 자연스레 세상에 닿을 것이다.



이제는 알겠다.

관용은 나를 지키면서도

인을 존중하려는 경계 위의 용기라는 걸.



관용의 허세라는

착각의 반복 끝에,

서툴지만 관용을 배기 시작했다.



허세도 가끔은 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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