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주는줄 알았는데 두시간 뛰게 한 피클행사

잘 치는 사람보다 재밌게 치는 사람들을 위한 피클볼 입문기

by 페트라


= 덜 힘들어 보이는 운동을 하고 싶었어 =


현대인들은 수많은 구독경제와 공유 플랫폼 속에서 삽니다.

저 또한 피클볼을 처음 접하게 된 곳은 <당근>입니다.


저는 정년퇴직 이후 제 집인 용인 수지에 거주하면서 손주 케어를 위해 세종, 92세 어머님 봉양차 제 고향인 전주, 장모님 케어를 위해 처가인 김제 4곳을 오가며 소위 <백수 과로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35년 공무원 봉직을 떠나 지금은 길거리에 기름을 뿌리며 나름대로 국가 재정에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신인류로 살기 위해 얼마 전 설치한 <당근> 앱을 통해 처가인 김제에서 피클볼을 시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뉴스를 통해 피클볼 동영상을 시청한 뒤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던 차에 <당근>에 올라온 소개를 보고 즉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회전근개 수술을 한 뒤로 퇴직 이후 꿈꾸었던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의 삶을 접게 되어 낙심하게 되던 차에 피클볼 동호회 모집은 제게 큰 동기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덜 힘들어 보이는 운동’을 찾다가 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처음으로 피클볼을 친 날 저는 ‘훌륭한 선택이었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왜냐하면 어깨질환 수술자는 팔을 위로 하여 ‘내리꽂는’ 동작을 하면 안됩니다.

테니스가, 배드민턴이, 탁구가 불가한 이유가 이것이었는데 피클볼은 서브부터 허리 아래에서 넣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어깨질환을 앓으시는 분들은 운동종목 선택이 많이 제약을 받습니다.

그러니 피클볼은 어쩌면 이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경기인지도 모릅니다.

= 테니스와 탁구가 사고 쳐서 나왔다는 샌드위치 속 오이절임 같은 경기 =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이게 뭐지?” 싶은 선택을 합니다.

저에게 그 순간은 바로 피클볼이었습니다.

우스개로 한마디 하자면 제목에 쓴 그대로 ‘한입 주는줄 알았는데 두시간 뛰게 한 운동’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뭔가 샌드위치 속 오이 절임이 튀어나올 것 같지만, 사실은 라켓을 들고 뛰어다니는 스포츠입니다.


“브런치 알아?”

“응. 그거 아침과 점심사이에 먹는 것 말이쟎아?”

브런치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5년전쯤 제가 친구에게 소개했을 때 들었던 내용입니다.

그렇듯이 피클볼 또한 그렇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듣는다면 “그거 먹는 거야? 치는 거야?”라고 헛갈릴 수도 있습니다.


스포츠계의 오이피클 같이 상큼한 이 운동!


그 아삭한 타격감을 맛보시면 빠져들에 됩니다.

오이맛 고추랄까, 아삭이 고추랄까.


인생이 팍팍하고 답답하다면 그리고 노잼이라면 운동으로 건너십시오.

그 중에서 피클볼로 건너시게 되면 퍽퍽팍팍한 통밀 샌드위치가 오디잼과 땅콩크림 그리고 피클이 곁들여진 상큼한 먹거리가 됩니다.


= 빌 게이츠도 했던 운동 나도 한번 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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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부자, 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50년 넘게 피클볼을 즐겨왔다고 합니다.


‘내가 피클볼을 시작하면 나랑 빌 게이츠의 공통점이 드디어 하나 생기는 건가?’

어느새 빌은 저의 친구가 됩니다.

그와 나의 자산 규모는 지구를 1바퀴 뛰고 나서 따라가야 잡을 정도로 떨어져 있을지 몰라도, 피클볼 코트 위에서는 놀랍도록 평등해집니다.


아무리 빌 게이츠가 휘두르는 패들일지라도 황금으로 만들어지진 않았겠지요.

그가 잡은 패들이나 제가 잡은 패들은 거의 비슷한 것이고, 공이 구멍 뚫린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이도 있겠지요.

물론 그는 전용기를 타고 경기장에 가겠지만, 나는 주차 자리를 찾느라 경기장을 세 바퀴 정도 도는 차이는 있습니다.


제게 부심 하나가 생겼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 저의 근황을 묻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있어보이려) “화요일 마감일에 맞추어 삽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제 누가 “요즘 무슨 운동 하세요?”라고 물으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요즘 빌 게이츠랑 같은 운동 좀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도 구력이 꽤 되더라고요”


물론 그와 저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마는 뭐 어떻습니까?

운동장에서는 누구나 친구 아닙니까.

통장 잔고까지 그를 닮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것만으로도 동격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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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뒤집개를 잡다 =


피클볼 코트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내 손에 쥐어진 '패들'을 보고 저는 느꼈습니다..

스포츠 용품이라기보다는, 명절날 종갓집 며느리들이 전 500장을 부칠 때 쓰는 특대형 뒤집개라는 사실을요.


이 패들의 짝꿍인 공은 또 어떻습니까.

노란 플라스틱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골프공과 세탁기 거름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구멍 난 알’을 ‘거대 뒤집개’로 때릴 때 나는 소리는 테니스 같이 ‘팽’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똑’ 어떤 때는 ‘딱’

이 경쾌한 소리는 마치 주방에서 마늘을 찧거나 오이를 다지는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제가 연습을 하는 한 초등학교 체육관은 3개 코트에 12명이 동시에 경기를 합니다.

수많은 ‘똑’과 ‘딱’치 겹치면서 코트 전체가 거대한 ‘오이무침 공장’이나 ‘전 뒤집는 철판 요리집’이 됩니다.

이 뒤집개의 묘미는 이렇습니다.


흡사 타기 직전의 생선구이를 조심스럽게 뒤집거나, 덜 익은 계란 후라이의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살포시 옮기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힘조절을 해야 합니다.


저는 처음 연습할 때 한 열 개정도는 서브 폴트를 한 듯 합니다.

반대편 서비스 에어리어에 넣어야 되는데 그걸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파워풀한 뒤집개질은 곧장 아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코트 위에서 다짐합니다.

빌 게이츠도 이 뒤집개의 손맛에 반해 50년을 보냈다는데, 나라고 이 맛있는 '스포츠 요리'를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하고 말이죠.


인생도 피클볼 같은 것 아닐까요.

가끔은 우아한 라켓 대신 투박한 뒤집개를 잡아야 할 때가 있지만, 중요한 건 타지 않게 제때 뒤집어주는 센스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힘 내!’ 보다는 ‘힘 빼!’라고 파이팅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 잘 치는 사람보다 재밌게 치는 사람들을 위한 경기 =


잘 치는 사람 위에 '재밌게 치는 분' 계십니다.


저희 동호회 창단식에서 사소한 이견이 있었습니다.

우리 동호회가 거의 초보자로 구성된만큼 이웃 큰 동호회에 소속되어 그 분들로부터 코칭을 받으면서 실력도 키워나가자는 건이었습니다.

이 건에 대해 우리 동호회 독립성에 관한 것부터 여러 가지 이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치면 좋겠지만, 대회에 나갈 목적도 아니고 즐기기 위해 치는 운동”이라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가끔 유경험자를 초빙하여 원포인트 레슨을 받자고 제안했습니다.


100점짜리 스윙보다는 100데시벨의 웃음소리가 필요합니다.

승부근성을 가지고 임하는 진지파들은 각도와 파워를 계산하느라 미간에 주름이 가시지 않겠지요.

하지만 우리 풍류파들은 좀 다를 것입니다.

그저 즐기면서 몸을 단련하고 스트레스를 날리고 흡족한 마음을 얻어갈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완벽한 스윙을 하려고 온몸에 힘을 주면 공은 여지없이 라인 밖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조금 못 치면 어떻습니까.

공 소리가 이렇게 경쾌한데 말이죠.


잘 치는 사람은 공을 지배하려 하지만, 재밌게 치는 사람은 공과 함께 놀다 갑니다.


제가 생각하는 고수는 창을 부를 때 북을 치는 사람일뿐입니다.

고수는 공을 잘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공이 돌아오는 순간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인생이라는 코트에서도 우리는 너무 자주 '승점'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우리가 피클볼 패들을 잡은 건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아삭하고 짭조름하게 ‘피클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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