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꼰대가 되는 것을 조심하게 됩니다.
‘꼰대되지 않는 법’, ‘꼰대 탈출법’ 등을 책을 통해 읽거나 포털, 유튜브 등에서 검색하여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오늘 외우기도 쉽고 아주 딱 들어맞는 중요한 책과 유튜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정무부지사와 석탄공사 사장을 역임하신 조관일 님께서 펴내신 자기계발 서적 <오십의 말 품격 수업>을 읽고 관련 동영상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말씀하시는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외우기도 쉽습니다.
이 분 글을 듣기 전에는 ‘말수는 줄이고 지갑은 열라’는 중장년 철칙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마는 전혀 다른 얘기였습니다.
각각의 계명을 저에 대입하여 한 챕터씩으로 나열해 봅니다.
저를 돌아다 볼 때, 말수를 줄이려 노력합니다만 그게 그리 쉽진 않습니다.
특히, 저희 아이들과의 대화 때에는 제 경험을 들려준답시고 웃기지도 않은 유머를 써가며 참견하여 대화 분위기를 망친 적이 허다합니다.
산통을 깨는 것이지요.
제 의지를 못 이겨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려 듭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아이들이 모르는 사실이거나 의견을 구했을 때를 빼놓고는 나서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법을 찾아갑니다.
아무리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으려면서도 모두의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 뒷담화를 하고 맙니다.
이 때는 비판 정도에 머물러야 하지만 집단 성토의 열기가 더해질 때는 저도 모르게 과장된 표현까지 동원하며 그 비난에 참여합니다.
소속감과 일체감의 유혹때문이겠지요.
이럴 때는 저도 언제든지 모두에게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세대들에게 ‘나 때는’하면서 얘기를 하는 것이 꼰대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지불식간에 ‘나 때는’으로 끼어듭니다.
주절주절 말하지 말았어야 됐는데... 하고 후회하는 때가 많습니다.
친구간의 관계야 그렇다지만 특히, 아이들이나 후배들에겐 말이죠.
핵심은 몇 마디 안 되는데 서론이 길거나 한 얘기 또 하는 그런 말투는 정말이지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 않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귀가 약해집니다.
실내에서도 큰 소리로 소리쳐서 그 것이 내 귀로 들어와야 의사가 전달될 것으로 착각합니다.
카페에서 소리가 울리도록 대화하는 내 나이의 그룹! 정말 싫습니다.
저는 또래들과 당구장을 자주 갑니다. 그 것도 대학가 앞.
제 친구 중에는 고래고래 소리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습니다.
아마 그 친구들은 필시 저보다 청력이 먼저 손상된 것입니다.
앞으로는 대학가 당구장은 안 갈 것이며 그 친구들도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 않도록 단도리시킬 것입니다.
BBC에서 오늘의 단어로 선정되기까지 한 kkondae.
꼰대는 타인을, 특히 후세대를 괴롭게 하는 부정적인 인간관계에서 파생된 사회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사회 현상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조심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나이 듦이 꼰대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는 세상입니다.
꼰대를 에세이에서 다루다보니 오래 전 본 영화 ‘인턴’이 생각납니다.
이 이야기와 꼰대력을 약화시키려는 저의 노력은 <꼰대의 탄생Ⅱ>에서 이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