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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Nov 26. 2021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필라테스

필라테스 최고!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00. 나의 첫 운동


회사에 다니면서 살기 위해 본격적인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자명한 사실이자 진리다. 어떻게 아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충분치 않은 체력은 정신력을 받쳐주지 못한단 걸 몸소 깨달은 후로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운동을 하려 했다. 아무래도 제일 만만했던 건 헬스장이었다. 잦은 야근으로 아예 회사 근처에서 다닐까도 고민했었지만, 왕복 2시간 이상의 거리를 출퇴근하면서 운동복까지 챙겨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집 근처로 등록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까 가까이 두었는데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떼는 게 도통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돈을 더 들이는 초강수를 두었다. PT 수업을 등록한 것이다.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4개월 정도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돈은 나를 움직였다. 이미 완료된 결제를 무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꾸역꾸역이라도 다녔다. 게다가 첫 수업 때 잰 인바디에서 상하체 불균형과 복부 집중형 마른 비만이라는 슬픈 결과가 나온 게 오히려 자극이 됐다. 회사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열정으로 체지방 태우기와 근육 늘리기에 집중했다.


인바디를 새로 잴 때마다 점점 달라지는 그래프 모양을 보며 난생처음 운동에 재미를 느꼈다. 결제한 PT가 모두 끝난 후에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루틴을 되새기며 체력을 다졌다. 한참 쇠질을 하던 시기 내 허벅지 둘레는 아빠 허벅지보다도 굵었다.


하지만 돈이 빠지고 나니 역시나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하필 회사 일까지 매우 바빠지면서 헬스장을 방문하는 횟수는 점차 줄었다. 아빠보다 굵던 허벅지도, 빛을 잘 조절하면 보이던 11자 복근도 점차 원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회귀본능에 충실한 몸을 보며 재미도 잃어버렸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떨어지는 체력과 흐려지는 정신력이 느껴질 때면 한 번씩 헬스장을 열심히 다니며 웨이트 수련을 일삼았다. 반짝 수련 이후엔 다시 운동과 족히 1000km는 멀어진 삶을 살곤 했지만...! 해마다 운동 구력이 늘어남에 따라 근육을 쓰는 방법에도 차차 익숙해져 갔다.




01. 재밌는 운동을 찾아


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알면서도 헬스장을 가는 게 힘들었던 건 단순히 귀찮아서만은 아니었다.(맞다) 매번 비슷한 운동 루틴에 적응해버려서 그런지 흥미가 살짝 떨어진 상태였다. 다른 운동을 해볼까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어릴 때 오랫동안 하다 그보다 더 길게 쉰 발레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입을 발레복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첫 발레 수업. 내가 들었던 초보반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수강생들이 있었다. 웜업부터 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매트에 앉아 스트레칭을 시작하는데 나 혼자 허우적대고 있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어렸을 땐 굉장히 유연했다. 다리를 앞뒤 양옆으로 찢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고, 딱히 아픔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다리를 옆으로 들어 올려 귀에 닿게 할 수도, 앞으로 들어 올려 코에 닿게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물론 발레를 그만둔 뒤로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지 않은 관계로 현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수업을 앞두고 내심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8년을 한 운동인데 몸이 어느 정도는 기억하겠지 싶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건 오판이었다. 내 몸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특히 유연성은 아주 기억상실 수준이었다. 첫 수업이 끝난 후 우주 끝까지 빨개진 몸뚱이와 처절한 땀방울이 고통을 증명할 뿐이었다.


분명 재미는 있었다. 매번 다른 음악에 새로운 동작을 배우다 보면 힘은 들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점차 나아지는 유연성에 작은 희망이 생겼다. 열심히 해서 중급반, 고급반에도 들어가고 공연도 해야지. 토슈즈는 언제쯤 신을 수 있을까? 하는 망상을 하며 즐겁게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를 옆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하는데 맘처럼 되지 않았다. 원하는 높이까지 들어보자고 마음먹고 다리를 움직인 순간, 갑자기 엄청난 아픔이 느껴졌다. 걷는 게 불편해질 정도라 바로 병원을 가보니 왼쪽 뒷 허벅지에 있는 햄스트링이 찢어졌다고 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데 그걸 힘으로 올리려다 다친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도 잠시, 반년 이상은 운동을 쉬어야 회복된다는 이야기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실력이 늘고 재미를 붙이던 와중인데...! 다리 찢기도 전보다 많이 늘었는데! 근육이 스스로 붙어 회복할 때까지는 햄스트링을 자극하거나 늘리는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말에 집에 있는 발레복 생각부터 났다.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잠시 운동 휴식기를 가졌다.




02. 드디어 만난 필라테스


햄스트링 부상 이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회복의 기미가 안보였다. 아프다는 핑계로 잘 먹었더니 군살만 덕지덕지 붙어버렸다. 주변에서는 햄스트링을 다쳤다는 내 소식에 축구선수 말고 햄스트링 다쳤다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다.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시점부터는 운동을 하긴 해야겠다 싶었다. 사실 이때 필라테스를 하기 시작한 건 아니다. 웨이트로 돌아가 최대한 다친 곳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운동을 했다. 아직 고통이 남아있어 조심스러웠다. 심지어 갑자기 코로나19가 확산되며 다니던 헬스장에서 확진자가 여러 번 나온 탓에 꽤 오래 문을 닫아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흘러 올해 초여름, 주변 지인들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드디어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했다. 또 마음에서 멀어질까봐 집에서 횡단보도도 건널 필요없이 가까운 학원으로 결정했다. 필라테스도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라고 얘기를 들어 다칠까 봐 약간 무섭긴 했지만 더 이상 미룰 구석이 없었다. 기구 이름도 제대로 모른 채로 첫 수업을 신청해 들었는데, 끝난 후 소감은 아래와 같았다.


필라테스 하면 생각나는 인터넷의 유명한 짤


왜 아무도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첫 발레 수업이 생각났다. 또다시 우주 끝까지 새빨개진 몸뚱이와 처절한 땀방울이 함께했다. 추천해준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다.


"이거 원래 이렇게 힘든 거 맞아?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진짜 이게 가능한 거야? 어느 정도 하면 익숙해질 수 있는 거야? 아니, 익숙해질 수 있긴 한 거야??"


믿을 수 없는 난이도에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고, 다들 같은 대답을 해줬다.


"응, 그거 원래 그래~ 하다 보면 좀 익숙해져. 우선 한 달 정도만 해봐."


어차피 이미 낸 돈. 속는 셈 치고 참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이제 곧 반년이 되어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인들의 대답이 맞았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었다. 절대 안 될 것 같던 동작도, 죽을 것 같이 힘들던 자세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능해졌다. 물론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선생님들은 대체 어디서 그런 연구를 해오시는 건지 수업마다 늘 나를 인내심 파탄의 시험에 들게 해 주신다. 그래도 버티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젠 몸도 조금 덜 빨개지고 땀도 조금 덜 흘린다. 거북목 일자목으로 항상 어깨 통증에 시달리던 게 사라졌다. 코어 근육이 강해지면서 힘과 체력도 늘었다. 무엇보다 다친 햄스트링이 거의 완벽하게 회복됐다.


이래서 필라테스를 하는구나 할 정도로 좋은 효과란 효과는 다 누리고 있다. 지금까지 해본 운동 중에는 적성에 가장 잘 맞아 아마 앞으로 꾸준히 하게 될 것 같다. 사실 거대하고 사악한 필라테스 협회에 대한 의심은 아직 거두지 못했다. 그만큼 힘들긴 진짜 힘들다. 그래도 잠시 힘듦을 견디면 더 큰 보상이 따라온다는 걸 확실히 알았기에 이제는 정말 꾸준히 유지해봐야겠다.


이제 곧 신청해둔 필라테스 수업에 가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조금 귀찮긴 한데 막상 가면 또 뿌듯하겠지?

얼른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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