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직요괴 Mar 18. 2024

어른만 되면 시험 같은 건 안 봐도 될 줄 알았는데

13. 퇴사자의 자격증 시험 도전기

어렸을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교복이 아닌 이쁜 옷들이 입고 싶었고, 힐도 신고 화장도 맘껏 하고 싶었고, 직접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걸 맘껏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도 꽤 크게 작용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릴 때의 바람은 하나도 맞아떨어진 게 없다.

교복은  입지 않지만 내가 생각했던 이쁜 옷은 온데간데없이 늘 편한 옷차림만 추구하고 있고, 발이 아파 힐은 벗어던진 지 오래, 평소 화장은 선크림으로 대신한다. 돈은 벌었지만 하고 싶은 걸 맘껏 하지도 못하며, 무엇보다 시험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우측 사진 바로 나야 나... (출처: 인터넷 짤)


엄마는 분명 어른되면 시험 안 봐도 돼서 좋다고 했는데. 그저 날 달래기 위한 말일뿐이었던 걸까?

취준 때는 취직해야 하니까, 취업 후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심지어 백수 상태인 지금도 왠지 모르겠지만 계속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최근 내가 준비했던 시험은 데이터 관련 자격증인 ADsP(데이터분석 준전문가)와 SQLD(SQL 개발자)로, 이미 지난 2월 말과 3월 초에 시험을 모두 마치고 현재는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시험이 끝난 대신 이제는 곧 다가올 과제철을 대비하기 위해 학과 공부에 매진하고 있으니 결국 계속해서 공부와 사투 중인 셈이다.


시험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근본적인 궁금증이 들었다.


시험은 왜 보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먼저 아래와 같은 이유들이 떠오른다. 

학습 과정 중 습득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의 시험: 중간고사, 기말고사, 쪽지시험 등

어떠한 자격을 얻기 위한 관문으로서의 시험: 수능, 공채 인적성 검사, 자격증 시험 등

자신의 지식 혹은 능력을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하기 위한 시험: 어학 및 자격증 시험 등


일부 겹치는 카테고리가 있긴 하지만 그동안 살면서 경험했던 시험들은 모두 위의 세 가지 범주에 속해있다. 이번에 준비했던 시험들은 굳이 따지자면 3번째 이유에 가장 가깝지 않았나 싶다. 시험을 통과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대단한 파장과 변화가 있을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다.




난 이번 시험공부를 요령 없는 정공법으로 접근했다. 


두 시험 모두 해당 분야에서는 아주 기초적인 시험이기 때문에 전공자, 비전공자, 현업 실무자 할 것 없이 1일, 2일, 1주일 등 단기간의 공부로 합격하는 후기가 굉장히 많았다. 그런 후기들을 보면 대부분 기출문제를 포함해서 유명한 문제집을 반복해서 여러 번 풀며 문제와 선지 자체를 몽땅 외우는 것을 추천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뭣도 모르고 무작정 공부를 시작했던 초반엔 나도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역시나 시험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게다가 난 옛날부터 달달 외는 데는 소질이 전혀 없는 인간이었는데 왜 그 사실을 잊고 있었는지! 인문계 전통 성골로서 온갖 수학적, 통계적 개념을 머리에 넣으려니 멘탈이 실시간으로 탈탈 털리는 상황이었다. 분명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는데 왜 머릿속에는 남은 게 하나도 없을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다.


사실은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너무 오래돼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때 문득 내가 옛날부터 오답노트를 만들어 공부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당연한 걸 어떻게 잊고 있었지 싶을 정도로 학생 때는 매일 하던 일이었다. 꼭 오답노트가 아니더라도 배운 내용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고, 정리 노트를 중심으로 시험 준비를 하곤 했다.


공부 스타일에 대한 감이 잡히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가장 먼저 개념 강의를 가볍게 1회독 한 뒤, 문제집을 한 권 골라 모두 풀되 헷갈렸던 문제와 틀린 문제를 모두 다 오답노트화했다. 지문과 보기뿐만 아니라 문제와 관련된 기초 이론에 대해서도 상세히 정리하면서 차곡차곡 노트를 작성해 나갔다.


이러한 오답노트가 한 시험 당 A4 기준 30여 페이지 정도로 나왔다.



정말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실제로 학생이 맞기도 하다) 머릿속에 이론이 정리되고 개념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문제도 처음보다 훨씬 수월하게 풀렸다. 오랜만에 공부의 재미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에서 오는 희열도 꽤 컸다. 이런 것들을 좀 더 진작에 알고 있었더라면 실무에서 더 나은 결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에 짧게는 2시간, 길게는 4~5시간. 연초부터 시험 전까지 적어도 주 4회는 그렇게 공부에 시간을 쏟았다. 누군가는 이런 기초적인 시험에 뭐 그리 많은 시간을 썼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마음껏 찬찬히 공부했던 것 같다. 


만약 통과 여부가 인생의 당락을 결정짓는 시험이었다면 어떻게든 시험의 커트라인을 통과하는 것만을 목표로 두고 요령껏 공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험들은 합격하면 기분이야 좀 좋겠지만, 떨어진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점수만 넘겨 통과하는 것이 되려 가장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30대 어른이 되어 접하는 시험은 확실히 예전과 느낌이 다르다. 물론 여전히 시험 점수를 기다리는 순간엔 떨리고 결과에 일희일비하지만, 시험을 치르는 목적이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자발적으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지 공부하는 과정 자체에서 얻는 것들이 많다. (이래놓고 머지않은 중간고사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언젠가 시험을 즐기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주객이 전도되는 공부는 하지 않는 학생이 되도록 늘 명심해야겠다는 것이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었다. 참, ADsP 시험의 사전 결과는 다행히도 '합격 예정'이다. 남은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결과 집착 안 하려면 한참 멀었다



사진: UnsplashJESHOOTS.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