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직요괴 Mar 12. 2024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의 만남

12.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는 퇴사자의 마음

직장 생활 속에서 공과 사의 구분이 더욱 뚜렷했던 건 오히려 사회 초년생 시절이다. 팀원들과 가깝고 친하게 지내긴 했으나, 따로 연락을 한다거나 쉬는 날 만나서 논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회사 사람들에겐 SNS 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조직에선 어떤 일이든 워낙 소문이 빠르다 보니 괜히 회사 밖의 내 생활을 알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회사와 그 외의 삶을 구분하는 게 어려워졌고, 무엇보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어지면서 직장 동료와 일반 지인 간의 경계가 허무할 정도로 허물어져버렸다. 네트워킹에 열심인 직장인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다리만 건너면 온통 아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좁은 세상도 제대로 한 몫하긴 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또렷해져서, 인간관계에 쓸 에너지가 부족해져서와 같은 이유로 어렸을 때에 비해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아 질 수는 있지만 그게 '친구가 될 수 없다'라는 말로 결론 나는 것도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라는 공통점은 꽤 강력하다. 마치 학교와 같다. 원치 않아도 일정 시간 동안 특정한 공간에서 붙어있어야 하고, 일상의 에피소드 역시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그러니 함께 나눌 이야기가 늘 화수분처럼 쏟아질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마음 맞고 성격 맞는 동료들을 만난다는 건 나의 주변 세계가 다시 한번 넓어진다는 것과 같았다. 


퇴사 후의 관계는 또 조금 달라진다. 단순한 '전 직장동료/지인' 정도가 될 수도 있고, 그걸 넘어 '친한 사람/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 구분에 대한 내 나름의 정리는 이렇다. 


서로의 대화 주제가 계속 회사, 업무, 혹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에만 한정된다면 친밀했던 관계는 퇴사 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각자의 삶이 다르게 업데이트되면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내용은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걸 넘어 개인적인 취미나 생활에 대한 주제까지 공유하고 있다면 그 관계는 퇴사 후에도 충분히 지속될 수 있다. 




어제는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의 팀 동료들을 만나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운 내가 그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로 찾아가기로 한 터라 할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6시였는데 야근을 숨 쉬듯이 하는 조직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과연 약속 시간에 모두 모이는 게 가능할까 싶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 맞춰 도착해 연락을 해보니 단 한 명도 제시간에 끝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무실로 올라오라는 말에 잠시 가서 인사를 나눈 뒤 무작정 팀원들의 퇴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물론 예상했던 기다림이었지만 점심을 건너뛴 내 배는 사실 조금 괜찮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렴 월요일 저녁부터 정시에 퇴근 못하는 직장인 마음만 할까 싶었지만.


약 20분의 기다림 끝에 그나마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 팀원 한 명과 가기로 했던 식당에 가서 앉아 음식을 시키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회사 근처에서 만나다 보니 회사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말은 근황토크였지만 업무와 커리어에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퇴사 후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을 보며 여러 마음이 들었다. 한 때는 같은 이유와 상황으로 함께 힘들어했고, 결국엔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그저 선택이 다른 것뿐이지만 힘든 상황에도 포기 않고 묵묵히 제 몫을 해나가는 그들을 보며 때론 내가 도망쳐 나온 사람이라는 패배감에 젖어 왠지 우울해진 적도 많았다. 연이은 일폭탄에 무척이나 지친 기색에도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니 우울했던 심정이 일부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남아있었더라도 그들처럼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받으며 끊임없는 야근을 불사하는 삶을 살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내 선택에 대한 변호라고 이야기하더라도 그게 사실인 걸 어쩔 수 있나. 당시의 내게는 맡은 업무도, 회사의 네임벨류도(안 큼), 심지어 월급조차도 회사에 남아있을 만큼의 강한 연결고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순간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버텨가고 있을 뿐인 삶이 지나치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었기에 나라는 사람은 아마도, 필연적으로 그곳에서 오래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어제 모임의 참석 예정자 중 1/3은 1시간가량 늦었고, 1/3은 야근으로 인해 끝내 오지 못했다.)


대신 난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퇴사 이후 내가 얻은 삶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보았다. 고정된 시간대에서 벗어나며 누릴 수 있었던 낮 시간의 행복, 사랑하는 가족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순간들, 감히 엄두 내지 못하던 것들에 도전하게 된 용기, 나만의 루틴으로 채워가는 하루에서 오는 충만함... 떠올려보니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앞선 글에서도 한번 얘기한 적 있지만 퇴사를 했다고 항상 행복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종류만 다르지 회사를 다닐 때와 똑같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두 일어난다. 현재의 나에게는 어떤 종류의 행복과 어려움이 좀 더 견디기 수월한 것인지 그걸 잘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슬슬 백수의 삶이 익숙해지면서 그새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이 얼마나 필요했고 감사한 일인지 조금 잊고 지냈었는데 어제의 만남 덕분에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상기되었다. 


얻은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게 있는 이 당연한 법칙을 잊지 말고 살아야지.




사진: UnsplashGiovanna Gom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