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마케터 머리 위로 똥글뱅이~
한 주간 열 받음의 정도가 지나쳐서 글을 쓸 수 없었다. 이제 한 숨 돌리고 글을 쓰려고 하니 다시 전투력이 상승한다. 그래서 이번 글의 제목은 조금 호기롭다.
가장 최근에 재직한 회사들에서 내가 맡은 주 업무는 마케팅이었다. 참고로 나의 대학 전공은 마케팅이 아니다. 그동안 여러 곳의 회사를 다닌 만큼 많은 업무 분야를 맡았고, 언뜻 보기엔 지독하게 연속성이 없어 보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모두 마케팅과 연관된 업무들이었다.
비록 전공과목은 아니었으나 대학교 때 어찌어찌 마케팅 이론을 배웠었고 관련 대외활동 경험도 있었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마케팅 나라에 입국한 뒤 정착하기까지 꽤나 도움이 되었다. 과거의 나, 칭찬해.
아무튼 각설하고. 나는 마케팅 전공자도 아니고 첫 사회생활을 일명 ‘마케터’로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그만큼 내가 해야 하는 것에 무게를 느끼고 일을 맡았다.
(물론 아직까지도 ‘마케터’라고 불리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실력이기에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지만, 이 글에서는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편의상 쓰도록 하겠다.)
그간의 업무 경험에 어깨너머 배운 실무지식을 더하고, 이론적인 공부도 겸해가며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대하고 거대한 실용학문이 던져주는 여러 가지 좌절과 고난들은 내 온몸을 향해 부딪쳐댔다.
그런데, 참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마케팅 업무에는 유독 첨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 나는 주로 작은 조직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거의 1인 마케터로 일했다.
처음에는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원래 마케팅은 누구 하나의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각기 다른 업무의 담당자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모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니까!
근데 솔직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고 느꼈다.
모두가 참석한 미팅에서 결정된 사항들로 작업물을 만들어내면, 여기저기서 피드백을 빙자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쏟아진다. 모든 피드백을 수렴하려면 기존 작업물을 다 갈아엎어야 할 판이다.
아니 이제 와서 왜 딴소리들이세요 진짜,
피드백을 걸러서 듣는 데도 한계가 있지
이 사태에 대해 나름 생각해본 원인은 아래와 같았다.
원인 1.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작업물 치고는 너무 단순해 보여서?
보통 몇 시간의 지독한 두뇌 활용 끝에 페이지 하나, 심지어는 문구 하나가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작업물이 간단하다고 과정까지 간단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제발요….
원인 2. 아니면 제가 별로 일을 안 하는 것 같아 보이나요?
나는 칼퇴를 지향한다. 업무 시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밥 먹고 돌아와서는 양치 후 바로 다시 일을 한다. 가능한 약속된 시간 내에 충실하게 업무를 끝마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필수불가결할 시에는 당연히 야근을 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업무라면 챙겨가서 반드시 기한 내에 마무리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나?
원인 3. 마케팅이... 만만하다.
마케팅 직무라 함은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 올 수록 각 업무별 구분은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다. 아주 환장할 정도로.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객, 소비자를 향해 기획되는 업무 특성답게 우리 삶에 밀접하게 다가와있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전혀 관련 없는 업무의 담당자도 마케팅 얘기가 나오면 꼭 한 마디를 거든다.
아, 맨 뒤에 이 말을 붙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아니 아니 전 잘 모르지만~ 그렇게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어서요.
이직요괴: … (나쁜 말)
이런 식으로 첨언하는 사람이 대표님 혹은 임원진이 된다면 더더욱 골치 아파진다. 이 때는 멘트가 조금 다르다.
대표님 및 임원진:
제가 이번에 어디 어디 회사에 누구누구님을 만났는데요, 그분이 저희 마케팅한 걸 보시더니 이건 어쩌고 저건 저쩌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는데 듣다 보니 맞는 말 같아서요~ 저희도 그렇게 바꾸는 게 어때요?
=싹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해라
혹은,
대표님 및 임원진:
이번에 어디 어디 회사에서 마케팅한 걸 봤는데 그거 참 괜찮더라고요?
=기획 회의할 때 분명 보고했던 케이스. 그리고 그땐 별로라고 피드백하거나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혹은,
대표님 및 임원진:
이 글 좀 한 번 보세요. 여기서 이런 마케팅 이론이 나오는데 우리도 이 이론을 이렇게 적용해서 전략 새로 짜보는 건 어때요?
=우리 사업이랑 안 맞는 이론
이래서 문과생이 사회에서 힘들다고 하는 건가.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업무(실제로 해보면 그렇지 않다)를 하게 되면 으레 겪는 고충인가.
나의 부족한 전문성을 탓하기도 해 봤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런 상황에 급기야 바꿀 수 없는 과거마저 원망하기 시작했다.
아, 차라리 마케팅을 전공해서 찍 소리도 못하게 이론으로 눌러볼 걸(불가능)
아니다. 애초에 교차지원을 해서 이공계열을 전공해야 했어 (불가능)
하… 공부 열심히 해서 과고 갈 걸 (불가능)
지난주에 로또 1등이 됐어야 했는데 (불가능)
게다가 작은 조직의 1인 마케터는 보통 마케팅 업무만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1인 다역을 하느라 버거워 죽겠는데,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두루뭉술하고 근거 없이 직관만 가득한 피드백들은 나를 더 힘 빠지게 만든다.
뭘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상황에 벌써부터 나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마케팅이 만만하세요?
그럼 이젠 마케터 뽑지 말고 알아서들 하십시다!
아. 속 시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