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는 사람, 기차를 타는 사람

< 스물일곱 살, 2014. 11. 29. 토요일 >

by 장난감공장

< 스물일곱 살, 2014. 11. 29. 토요일 >

#월급쟁이 #창업 #퇴사 고민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될 때



사관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훈련을 받을 때가 아니라 싸이월드에 접속할 때였다. 그곳에는 대학에 간 친구들의 사진이 빼곡했는데, 반복적인 사관학교 생활과는 다르게 누구 하나 지루할 틈이 없어 보였다. 여행을 하고, 콘서트에 가고, 그럴싸한 취미 활동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게 즐거워 보였다. 간혹 친구들끼리 모여 찍은 사진을 발견할 때면 그 자리에 내가 없는 것에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다. 보람차게 마무리되던 하루는 싸이월드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



그런 날이면 잠자리에 들기 전 동기생들과 한참을 떠들었다. 사관학교가 특수목적 대학교라는 것을 모르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 특수한 목적이 우리를 고민하게 했다. 졸업하자마자 정해진 모습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앞섰다. '선택지가 없는 생활'은 하고 싶은 게 많은 이십 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대화 중에는 꼭 '기차를 타는 사람'이라는 비유가 등장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처럼 자유로울 순 없지만 레일 위를 똑바로 달리는 기차 같은 삶도 의미가 있지 않냐는 의견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약속된 장소로 향하는 모습은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우리가 하는 일을 조금은 특별한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싸이월드 때문에 상해버린 마음을 조금 달래 보았다.






일이 손에 꽤 익었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지치는 순간이 찾아왔다. 직장인 사춘기였다. 일을 하기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나에게 맞는 일이 따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때면 자연스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떠올랐다. 여의도에서 일하는 친구, 선생님이 된 친구, 일찌감치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친구. 모두가 그럴싸해 보였다. 사관학교 시절 친구들의 미니홈피 속 사진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레 묵혀 두었던 '기차 이야기'가 생각났다. 수년 전 이야기 한대로 나는 기차에 올라타 있었지만, 자동차를 타는 삶을 여전히 부러워하고 있었다.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월급을 주는 사람이고, 기차를 타는 사람은 월급을 받는 사람 같다.



자동차를 타는 삶은 왠지 멋져 보인다. 집 앞에 주차된 차를 타고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지 향할 수 있다.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기도 하고, 국도를 이용하기도 한다. 가는 길에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면 잠시 멈춰 쉬었다 간다. 혼자 하는 여행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 가는 여행도 즐겁다.



기차를 타는 사람에게는 가는 길이 정해져 있다.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고 레일 위를 벗어날 수 없다. 같은 칸 안에서 불편한 일이 일어난다면 목적지까지 꾹 참아야 한다. 혹시 중간에 내리더라도 다음 기차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다시 올라 탄 기차가 더 좋을지,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sports-car-4815234_1920.jpg
train-3714601_1920.jpg



내가 겪은 직장인 사춘기는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 스스로 운전대를 잡아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조직이 정한 목표대로 움직이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그것을 결정하고 싶었다. 마음에 맞는 팀을 꾸려 일을 시작한다면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월급을 주어야 할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럴싸한 퇴사 이유가 정리되었을 때, 스타트업을 시작한 친구 Y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계획을 확인받고 싶었다. Y는 이미 규모가 큰 투자를 여러 건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기에 나를 응원해줄 것 같았다. 자신 있게 자동차와 기차 이야기를 한참 설명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자동차로 갈아타 볼까 해" 하고 말했는데, 친구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내가 말한 비유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자동차를 탄다고 항상 쉬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차보다 더 치열하게, 멈추지 못한 채 달리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의 월급을 줘야 하고, 임대료를 내려다보면 주변을 바라볼 새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슈퍼카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저 그런 차를 운전하며 꽉 막힌 길에서 헤매고 있다.



기차를 타는 게 꼭 답답한 일만은 아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아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점에서 편리하다. 객실 어딘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달린다. 쉬어가고 싶으면 잠시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거나 휴게실이 있는 칸으로 갈 수 있다. 그 사이에도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traffic-jam-4522805_1920.jpg
ktx-3668473_1920.jpg





친구의 말에 반발감이 들었다. 그렇게 직장생활이 좋으면 계속 회사에 다니지 왜 창업을 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충동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하려던 말은 '창업보다는 안전한 직장생활이 최고'라는 게 아니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균형 있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남의 탈 것을 부러워만 하던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탈 것이 정해진 건 아니다. 누구나 자동차를 탈지, 기차를 탈지 결정할 수 있고 심지어는 비행기를 타는 꿈을 가져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이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진지한 고민 없이 정하곤 한다. 사업을 하면 망하기 십상이라는 주변의 조언에 취업을 준비한다. 반대로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지만 공무원이 되겠다고 도서관으로 간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생각할 기회를 갖지 않고 우리는 이런 결정을 너무도 쉽게 내린다.



그리고 우리는 도로 위를, 레일 위를 달리면서 쉽게 갈아타기를 희망한다. 어느 길에서 출발을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지금 삶에 불만족하는 경우, 흔히 말하는 직장인 사춘기가 오면 스스로를 자동차를 탔어야 하는 사람, 기차를 탔어야 하는 사람으로 정의 내린다. 하지만 일단 출발하면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건 쉽지 않다. 나아가 갈아타기를 결정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에게 정말 어울리는 모습을 알지 못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고, 새롭게 도전해볼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그렇지만 모든 길을 다 가보기에 우리가 가진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취업 시장으로 돌아와야 할 이유는 없다. 본인의 성향에 맞는 탈 것을 선택했다면 그것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고차를 타고 막히는 길 위에서 시간을 허비한 경험을 한 사람은 그것을 활용해 슈퍼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꿈을 가져볼 수 있다. 또 느리게 움직이는 무궁화호가 답답했던 직장인이라면 KTX나 SRT로 환승해보면 어떨까 싶다. 혹시 아는가. 열심히 달리다 보면 어느덧 공항에 도착해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전용기를 타고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을지.


airport-5387490_1920.jpg
shelby-cobra-2140558_1920.jpg
airplane-3702676_1920.jpg
keyword
이전 06화모두 현장으로 모이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