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후회 없이 비행했습니다

< 스물네 살, 2011. 8. 12. 금요일 >

by 장난감공장

< 스물네 살, 2011. 8. 12. 금요일 >

#꿈 #실패 #극복

#간절히 원하던 것에서 실패했을 때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작은 행사가 있었다. 공군 사관학교에 진학한 선배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 모교에 찾아온 것이다. 어린 고등학생들은 반듯한 제복을 입고 서 있는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내내 하고 싶은 일이 수 없이 바뀌는 동안에도 마음 한가운데에서 전투기 조종사를 지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꿈을 굳히고 사관학교에 도전했다.



간절히 원했던 덕분에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했다. 조종사라는 꿈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선배 조종사들의 축하비행과 함께 입학식을 마치고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늘을 가르는 그 웅장한 소리는 학교생활 중 항상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공부를 할 때도, 군사 훈련을 할 때도, 심지어는 운동을 할 때도 모든 것을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연관 지었다. 매년 받는 조종사 신체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자기 관리에도 소홀할 수 없었다.



사관학교 4학년 마지막 시험이 끝난 크리스마스이브 날, 비행교육이 시작되는 곳으로 이사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종사가 되고 싶어 겨울방학도 마다하고 훈련을 시작했다. 추운 겨울 시작된 비행 훈련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이 항상 들뜨게 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 준비에 썼고, 잠들기 전까지도 머릿속으로 다음 날의 비행을 그려보았다.






초등 비행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입과 하기 위해 남쪽의 비행기지로 옮겨갔다. 전투기의 굉음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제법 힘이 느껴지는 터보프롭(Turboprop) 엔진을 달고 있는 비행기가 연이어 이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도 긴장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비행교육 중간에는 수많은 평가를 거쳐야 하는데, 그중 하나라도 두 번 이상 통과하지 못할 경우 비행 교육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비행을 즐기지 못하고 매사에 예민해졌다.



비행훈련이 한창이던 7월부터는 날씨가 자주 흐렸다. 그리고 첫 번째 평가에서 불합격했다. 날씨 탓을 해보며 다음 평가를 준비했다. 다음 평가에서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간절히 원하던 꿈이었고, 어느 순간 나태하게 보낸 적이 없었다. 나를 처음 담당했던 비행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나"하는 대담한 마음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마지막 평가 당일, 호랑이 같이 무서운 교관은 뒷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게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비행을 마치고 디브리핑을 기다리고 있을 때, 평가를 담당했던 교관은 브리핑룸이 아닌 휴게 공간으로 나를 불렀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디브리핑의 첫마디는 “너는 더 이상 우리와 함께 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정신이 멍해졌고 몇 가지 과실에 대해 설명해주는 소리가 귓등으로 흘러갔다. 인생에서 마지막 비행이었는데, 후회 없었느냐고 묻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네, 후회 없이 비행했습니다.”라고 무기력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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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6년 동안 달려오던 사람이 그 길에서 실패하게 된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 제복을 입은 선배의 모습에 반해 가졌던 꿈은 스물네 살이 되던 해 끝이 났다. 돌이켜 보면 이 시기만큼 무언가에 간절했던 적이 있나 싶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별똥별이 떨어질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비는 소원이 '어?'라는 준비되지 않은 감탄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우연히 밤하늘의 별똥별을 보게 되면 망설임 없이 '조종사'를 외칠 수 있었다.



가끔 이 시기의 일들을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럴 때면 저마다 실패 경험담을 하나씩 꺼내는 바람에 금세 '실패 자랑대회'가 열린다. 누가 더 꿈을 오래 간직했는지, 누구의 꿈이 더 그럴싸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세상 유치해진다. 조종사가 되지 못한 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를 실패한 것보다 대단한 경험도 아니고, 일 년짜리 노력이라고 10년짜리 정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결심을 하고, 원하고, 가끔 그것에서 실패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될 뿐이다.



조종사라는 길에서 멀어졌을 때, 그 이후의 생활에서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극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교관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기회를 달라고 했어야 하나 싶다가도, 지금 생활에 만족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그 두 가지 생각을 왔다 갔다 하며 산다.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에 대한 후회는 지금의 삶으로 덮여 점점 옅어진다는 것이다.



후회 없이 비행했다고 대답했지만 지금까지도 어떤 순간을 떠올리면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여우와 신포도'의 비유처럼 못 먹게 된 포도를 값어치 없다고 깎아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면 마음은 편했을지 몰라도 과거에 그걸 위해 쏟아부은 시간들이 부정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꿈은 그 꿈대로, 지금의 삶은 그 모습대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그날의 습관들을 기억하려 애쓴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에 그 노력보다 조금을 더해 다시 한번 도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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