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란 무엇인가?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라고 하는 지식의 표준적 정의에 대한 이의

by 황인석

지식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는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다. 플라톤에서 유래한 이 정의는 20세기 초반까지도 지식의 표준적인 정의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 정의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유명해진 것이 바로 ‘게티어 문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정의는 애초부터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지식’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 정의는 그것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나는 A를 사랑한다” 혹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있다. 이것을 과연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플라톤식 기준에 따르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사람의 마음은 바뀌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은 A를 사랑한다고 느끼지만, 내일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어떤 객관적 방식으로 ‘정당화’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이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하기도 쉽지 않다. 사랑이란 개념 자체가 명확히 규정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개념을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을 만큼 뚜렷하게 정의하려 들면 오히려 그 개념이 지닌 풍부한 함의들을 잃게 된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개념은 어느 정도의 모호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그 개념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 참과 거짓 사이의 회색지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A를 사랑한다”는 믿음 역시 지식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믿음은 나의 판단과 행동에 실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믿는다면, 나는 그 사람과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할 것이고, 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행동을 하려 할 것이다. 반대로 그 믿음에 의심이 생기면, 내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설령 이 믿음을 객관적으로 참·거짓으로 판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러 방식으로 그 타당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가 보이는 태도,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조언 같은 다양한 단서들을 종합해 보는 것이다. 이런 검토 과정은 논리적 사고와 직관 양쪽 모두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검토와 정당화의 시도를 유도하는 믿음을 지식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지식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이런 예는 더 많이 들 수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암묵지’라고 부르는 지식들 — 걷는 법, 자전거 타는 법, 골프 치는 법, 노래를 잘 부르는 법 등 — 은 지식이 아닌가? 지식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사실이나 명제를 아는 것을 넘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역량까지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참과 거짓으로 확정할 수 없는 수많은 지식들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또한 우리는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판단과 행동을 유보하는 대신, 직관적으로 판단한 개연성에 따라 행동의 기반으로 삼는다. 참과 거짓으로 확정지을 수 없는 명제들에 대해 우리는 확신과 의심 사이 다양한 가중치를 부여하고 그에 맞게 활용한다. 때로는 의심의 여지가 많더라도 가설처럼 전제하고 일단 행동을 시작해 놓고 추가적인 지식을 얻어 가며 조정해 가기도 한다.


물론 참과 거짓이 명확히 구분되는 명제들만을 지식의 범주로 삼는 것이 유용한 영역도 있다. 수학이나 공학이 그런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우리가 수학이나 공학 지식만으로 인생을 살아가거나, 공공의 토론을 하거나, 학문 전체를 구성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지식은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라고 하는 정의의 범위를 훨씬 넘어간다. 참과 거짓이 명확하지 않은 어중간한 지식들이 우리의 삶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지식들을 모두 개념화하여 명확한 참과 거짓으로 구분짓는 것은 불가능하고 반드시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런 지식들의 타당성 수준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것은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 노력에는 개념 정의를 분명히 하고 논리적 연결을 정제하는 작업도 포함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비유와 상상과 훈련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직관을 점차적으로 세련되게 만들고, 풍부하게 확장해 가는 과정 역시 그러한 노력에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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