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

버트란드 러셀의 행복론 업그레이드

by 황인석

버트란트 러셀이 지은 ‘행복의 정복’은 많이 읽혀온 행복론의 고전이지만, 최근에는 그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러셀이 58세 나이였던 1930년, 꽤 오래 된 책이긴 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 무렵이고 그 이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 책은 행복에 관련한 새로운 관점을 접하게 해 주었고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몇몇 주제들은 오랜 동안 마음에 남아 삶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에 영향을 주었고, 내 삶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진화해 나가기도 했다.

‘행복의 정복’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불행의 원인을, 2부는 행복을 얻기 위한 방법을 다룬다. 나는 책 전체 내용을 포괄적으로 요약하기보다(이런 일은 아마 챗GPT로도 가능할 것이다), 오랜 기간 내 마음에 인상적으로 남아 영향력을 발휘했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 생각을 덧붙여 보려고 한다.

책의 앞부분에서 러셀은 먼저 자신이 겪었던 우울함과 불행에 대해 고백한다. 이런 솔직한 고백 덕분에 나는 불행이라는 것이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는 것, 러셀처럼 현명한 사람도 젊은 시절엔 불행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행복의 지혜를 갖추어갈 수 있었다는 것에 위안과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물론 러셀이 말하는 불행의 원인들은 가난이나 소외, 지루한 직업 같은 외적 조건들이 아니다. 그런 조건들을 무시하고 불행한 사람이 마음가짐을 달리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치게 교만한 주장일 것이다. 러셀의 불행은 가진 것에 부족함이 없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 우울해 하는 지식인의 불행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러셀과 같은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그가 다루는 허무주의, 경쟁, 권태,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증, 여론에 대한 공포 등은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행복과 불행은 소득과 지위를 비롯한 객관적인 요인들의 영향을 받지만, 상당 부분은 마음가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러셀처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들과 행복을 가져오는 요소들에 대해 나열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그 목록은 사람마다 다르게 작성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특히 내 생각엔 불행의 요인들을 다루는 것이 비교적 더 쉽고 우선시될 필요가 있다. 행복의 요소는 사람마다, 인생의 시기마다 다르기 때문에 고정된 지침을 마련하기가 더 어렵고, 불행의 요인들에 지속적인 방해를 받는 상태에서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불행의 요인을 다루는 방법으로 러셀의 책에서 ‘질투’와 관련한 장을 예로 들어 보자. 러셀은 먼저 질투라는 감정이 얼마나 불행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먼저 언급한 다음 그에 대한 치료법을 몇 가지 제안한다. 우선, 질투가 치명적인 악습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질투의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당연한 반응으로 생각하는 대신 잘못된 감정으로 인식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질투라는 감정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복인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더 낫다거나 못하다는 이유로 행복의 감정이 달라진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더군다나 비교의 대상에 한정을 둘 이유가 없기 때문에, 특정 대상과만 비교해 질투를 느끼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교 대상을 늘려나가면 자신이 가진 것은 상대적으로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러셀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여러분이 영예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나폴레옹을 부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시저를 부러워하고, 시저는 알렉산드로스를 선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알렉산드로스는 헤라클레스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더욱이 헤라클레스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령 성공을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질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 러셀은 이렇게 제안한다. “여러분이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자기 눈앞에 있는 즐거움을 즐기고,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기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멋대로 상상하는 - 아마도 완전한 착각일 것이다 - 사람과의 무익한 비교를 안 하는 일이다.”

불행을 가져오는 다른 감정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접근 방식을 취할 수 있다. 즉, 그 감정의 해악을 인지하고, 그 불합리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습관화되면 불행한 감정이 생길 때 그 감정을 단호하게 떨쳐버리는 것이 가능해지고, 나중에는 굳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런 감정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 접근 방법의 난점은, 불행한 감정들에는 나름대로의 긍정적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들 역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 과정의 산물이고, 이런 감정들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떤 문제를 겪게 되거나 인간성의 일부를 잃게 될 수도 있다. 불행한 감정을 떨쳐 버리는 데에는 반대급부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질투라는 감정은 우리가 비교 대상으로 삼는 이들을 기준으로 삼아 분발하게끔 만들 수도 있고, 부당하고 불평등한 대우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항의하게 할 수도 있다. 러셀은 영예를 바라는 사람의 질투 대상의 범위가 존재하지 않는 헤라클레스까지 넓혀지지 않을 이유는 없다면서 그 불합리성을 지적하지만, 사람들은 무한히 많은 비교 대상 중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 선택해 질투를 느낀다. 이런 대상의 판별은 보통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논리적으로는 불합리해 보일지 몰라도 적절한 비교대상을 골라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상황을 평가하고 분발하거나 항의하게 만든다는 질투라는 감정의 역할에는 적합한 방식이다.

이처럼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떨쳐버리는 일 앞에서 머뭇거린다. 그 감정들이 각각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예를 들어 후회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만들거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고, 권태는 현재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과 기회를 찾아 나서게 만든다. 더 근본적으로 불행이라는 감정이 현재의 처지가 불만족스럽다는 평가라면, 그런 처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신호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 마음가짐의 변화를 통해 불행을 극복하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

러셀의 교훈이 오랜 시간 내게 충분한 확신을 주지 않았던 건 주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부정적 감정을 단호하게 떨쳐버리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를 느끼면서도 한편에선 그래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항상 함께 했던 것이다.

여기에 완벽한 정답은 구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몇 가지 염두에 둘 사항들이 있다.

먼저 부정적 감정의 효과에 비해 그 폐해가 매우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효과와 폐해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측정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들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둔하게 만들며 감사나 경탄, 몰입과 사랑 같은 의미 있는 감정들을 갖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우리의 성취를 방해하고 다른 사람의 호감을 잃게 만드는 등 많은 부작용이 있다. 생물학적 일차적인 반응으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들이 그 효과와 폐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적절한 강도로 일어난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러기엔 인류의 사회와 문화가 유전자가 진화하는 속도를 추월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에 우리의 일차적인 반응들은 이미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고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부정적 감정들이 어떤 역할이 있다고 해도 그 역할 때문에 꼭 그런 감정들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감정들이 적절한 판단과 행동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라면, 그 감정 속에 계속 머무르면서 폐해를 감수할 필요 없이 그 감정들을 일종의 신호로서 활용하면서 거리를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후회나 질투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이 들 때, 과연 그 감정들이 내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를 검토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감정 그 자체의 고통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이 어렵고 나의 행동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그런 감정들의 폐해가 크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과감히 감정들에서 벗어나는 태도가 필요하다.

마음을 바꿔먹는다고 해서 불행한 기분이 당장 행복한 기분으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이 들 때 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원인이 적절한지, 결과적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중점을 둔다면 감정 자체의 고통은 많이 줄어든다. 그리고 감정적 고통을 줄이는 일은 일시적인 행복과 불행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 측면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불필요한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며, 고통을 주는 감정들의 긍정적 효과가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이 감정에 종속될 필요가 없음을 단호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 감정들을 쉽게 극복하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해방적 효과는 기대했던 것보다 막대할 수 있다.

그러니, 러셀의 행복론을 업그레이드한 내 조언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신의 불행을 가져오는 부정적 감정들의 유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 경우엔 분노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후회와 질투가 고질적인 마음의 습관이었다. 후회는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고, 질투는 작년까지만 해도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곤 했으나 이제는 많이 약화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로 인해 잃게 된 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나는 그런 감정들의 빈자리가 더 나은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에는 그런 감정들이 들 때마다 주문처럼 불러올 수 있는 간결한 명제나 논리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러셀이 질투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기 위해 한 시저와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내 위에나 아래에나 한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유한한 삶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느냐가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 도달 가능한 목표를 세워 놓고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부러워 보이는 사람이 누리는 것도 내가 실제로 경험하면 지금 내가 보는 것과 같지는 않을 것이며 내가 동정하는 사람들의 고통 역시 그러할 것이라는 것, 남이 무엇을 누리느냐보다는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무엇보다도 질투는 마음을 해치는 독과 같으며 그 있을지도 모르는 효과는 그 폐해에 비하면 미미할 것이고 내게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 이런 명제들을 인식하고 있으면 그런 감정이 일어날 때 대응이 쉬워진다. 그러한 대응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그런 감정 자체가 가벼운 신호 정도의 역할로만 머물게 된다.

그렇게 마음에 빈 자리를 만들면, 그 자리에서 더 풍요로운 것들이 생겨날 기회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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