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사결정과 최대화의 함정
앞의 글들에서도 언급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선택이다. 삶의 의미, 우주의 의미, 나라는 인간의 가치, 이런 여러 질문들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의 문제와의 관련 하에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선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여지가 없다고 하면 우리가 갖는 많은 질문과 답변들의 의미는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남은 삶이 앞으로 오년이라는 통보를 받는다고 하자. 이 새로운 뉴스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수십년의 삶이 남았다고 생각해 온 당신에게 이 뉴스는 충격을 줄 것이고 슬픔과 절망, 분노 등 여러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질문은, 남은 삶의 길이에 맞추어 당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 당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스스로가 부끄럽고 무가치한 인간으로 여겨진다고 하자. 이 경우에 중요한 질문은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인간인가 아니면 무가치한 인간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질문이란 객관적인 답변이 어렵고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질문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 지식들을 참고하여 그런 자신에 적합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하는 생각들 중 많은 부분들은 마음을 번잡하게 만들 뿐 정작 중요한 질문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후회, 자책, 열등감, 분노, 억울함, 의구심, 비관, 슬픔 등 여러 정서를 일으키거나 그에서 비롯된 여러 생각들은 큰 의미가 없음에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 쉽다. 그러한 정서들이 왜 일어나는지 무엇을 시사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해를 포함해서 우리의 노력은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지향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하는 불필요하고 번잡한 생각들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부정적 정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우리 뇌가 진화의 산물이며, 환경에의 적응을 위한 계산이 본연의 역할이라는 사실과도 잘 어울린다. 우리의 신체기관이 원래 담당하기로 되어 있는 역할을 할 때 그 기관의 역량은 원활하게 발휘되기가 쉽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우리가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다른 여러 가지 불필요한 부담들을 덜어낸 후에도 여전히 선택의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거의 항상 선택의 기회를 갖기 때문에, 선택의 부담은 우리의 시간 거의 대부분 동안 함께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더 이상 읽는 것을 멈추고 더 의미가 있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선택의 기회를 의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를 다르게 해 볼 여지는 거의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을 하는 방식은 우리가 사는 방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선 우리가 떠올리기 쉬운 일반적인 선택의 방법에서 시작을 해 보자. 즉, 경제학이나 경영학 원론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의 방식이다. 합리적 의사결정은 우리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최대한의 효용을 얻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대화 또는 최적화, 목표함수 또는 효용함수, 제약조건, 기회비용 같은 개념들이 관련된다. 효용은 우리가 주관적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며, 공리주의에서 지향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행복’에 해당한다. 우리는 선택의 대안을 식별하고, 각 대안별로 선택의 결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효용과 시간, 노력, 돈 등의 비용을 비교해 그 차이가 가장 큰 대안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짜장면과 짬뽕 중에 선택하기 위해선 각 메뉴의 가격, 영양 상의 효과, 식사 중의 즐거움 등을 고려한다. 식사 시간 동안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영양 상의 효과는 건강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인 즐거움과 고통을 초래한다. 이렇게 우리는 단기적 즐거움과 장기적 즐거움, 이전에 한 결심을 지킨다는 만족감,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 미치는 평판적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효용을 산정하고, 이를 비용과 비교해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선택 방식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우리는 이런 계산을 제대로 해 낼 수 없다. 기업 경영처럼 객관적인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합리적 의사결정 방식이 어느 정도 적용 가능하지만, 우리가 개인적 삶에서 맞이하는 선택들은 대부분 측정이 어려운 주관적 가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발생한다.
우선 어떤 대안을 선택했을 때 일어날 일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지 않은 경험에 대한 가치 평가를 포함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부정확하다. 어떤 경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 경험을 하는 순간에 알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상상하는 방식으로는 그 경험이 얼마나 좋을지 혹은 나쁠지 알 수 없다. 더군다나 한 번에 하나씩의 경험 밖에 할 수 없다면 두 개 이상의 다른 경험을 비교하여 평가하는 것 역시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더군다나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면서 그것이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또는 그에 수반되는 부정적 경험이나 다른 대안으로 가능했던 경험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한 일에 속할 것이다.
물론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지를 계산하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선택에는 선택의 결과로 인한 비용이나 부작용 외에 선택을 위해 고심하는 데 따르는 비용도 존재한다. 결정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과 고통, 제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 마음에 남게 되는 부담감, 자아효능감의 감소 등이다. 이런 비용에 대한 측정 또한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어렵지만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걸 생각하면 합리적 의사결정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은 매우 드문 경우이며, 선택의 결과가 아주 중요한 차이를 가져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최대한의 효과를 얻어 내기 위한 집착은 그에 따른 비용보다 나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보통 그처럼 의식적인 계산을 통해 선택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의사결정 방식은 어떤 이상적이고 표준적인 모델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선택의 목적은 효용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전제는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여러 가지 상충되는 가치와 부작용이 있을 경우 그것을 조합한 최적의 조합이 존재하고 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사고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모델에 습관화되어 있으면 우리의 삶은 최대한의 효용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갇혀 자유를 거의 갖지 못하게 된다. 항상 지금 머무르고 있는 대안보다 더 나은 선택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우리가 더 나은 기회를 찾고 있는 한 우리가 이미 내린 선택의 결과로 함께 있는 대상들에 온전히 충실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더 이끌어낸 소위 효용이라고 하는 것의 양이 늘어난들 그것이 우리 삶의 참된 의미와 얼마나 관련된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실체가 분명치 않은 효용을 추구하는 데 집착하게 만드는 합리적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우리가 도인이라면, 장자처럼 마음이 가는 대로 순리에 따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최대화를 지향하는 번잡한 계산이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는 삶에 대한 동경을 갖는다. 의심과 망설임을 버리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기사,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밟아 질주하는 자전거 탄 소년, 돛을 올리고 열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선장. 하지만 우리는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무언가를 더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미련으로 논리와 계산을 버리지 못한다.
차선으로 우리는 선택의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그 책임의 중압감이 삶의 원활함을 지나치게 방해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몇 가지 도움되는 방법들이 있다.
먼저 인생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선택을 하는 습관을 갖출 수 있다. 사소한 결정을 과감하게 내리는 일을 반복해 습관화가 되면 삶 전반에 있어서 선택의 부담이 줄어든다. 과감한 선택을 위해서는 마음의 소리, 즉 직관에 귀를 기울이거나, 평소 준비해 둔 단순하고 명확한 원칙에 의존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결정에 관계되는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는 대신 가장 중요한 한두가지만 선택해 그 기준에 따라 선택하는 방식 등 최선을 포기하는 대신 선택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배리 슈워츠가 <선택의 패러독스>에서 제안한 것처럼, 최대화의 기준을 버리고 어떤 기준에 부합하는 대안이 발견되면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그 대안을 선택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성비가 가장 높은 물건을 고르려고 애쓰는 대신 가지고 있는 예산 범위 내에서 물건을 사려 하는 기본적 동기를 만족시키는 물건이 발견되면 구매를 결정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떤 대안을 선택했을 때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보고 그 최악의 경우를 감당할 수 있다면 크게 고심하지 않고 선택하는 방식도 도움이 된다.
아주 사소하지는 않고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가진 선택의 경우엔 논리와 계산의 도움을 더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한 가지 도움이 되는 방법은 결정의 준비 단계와 결정 단계를 구분하는 것이다. 준비 단계에선 선택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수집하거나 객관적인 고려 사항들을 확인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이런 작업들은 선택의 대안들 앞에서 우유부단하게 고심하는 일과 달리 보람도 있고 자신감도 키워 준다. 이렇게 준비단계에서 불확실성을 줄여 놓고 확실하거나 어느 정도 확실하다고 여길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경계를 지어 놓으면 선택이 훨씬 쉬워진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은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최대화에 대한 강박, 정말 소중한 어떤 것에 대한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잘못된 선택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걱정이나 어떤 선택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는 생각 등이 두려움을 갖게 한다.
조셉 비카르트의 <결정수업>에서는 재즈 연주의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의 말을 인용하는데, 재즈 연주에서 그 자체로 잘못된 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잘못된 음인지 여부는 그 뒤에 이어지는 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같은 책에서는 개별적인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들이 연결되어 이어지는 실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어떤 선택이 설령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하나의 경험이며,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변화하고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그 바탕 위에서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새로운 잘못으로, 새로운 경험으로,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선택의 기회로 이어진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하지만 좋은 선택만이 좋은 삶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