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 세상을 대하는 기운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by 황인석

결국 우리 삶의 문제의 핵심은 선택이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이 대사는 원래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떠나서 여러 맥락에서 수없이 인용되는데, 그것은 아마 선택을 앞에 둔 사람의 심정을 인상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도, 부정의도, 부조리도, 그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선택으로 뭔가를 바꿀 여지가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해야 하는 선택이 분명하거나 어떤 선택으로도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해방의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노예라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감수할 뿐, 풀어야 할 문제는 갖지 않는다. (조금 더 명확히 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선택은 한정된 대안 중에서 무엇을 고를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황 뿐 아니라, 내가 판단과 행동을 통해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일반적 상황들도 포함한다. 예를 들자면,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휴일의 아침, 지금 이 상태로 계속 지내는 것이 최선일지를 의심하면서 살아가는 일상, 막연한 꿈을 꾸며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상황 등이 포함될 것이다.)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함에 따라 감정이 뒤따르고 그 감정에 따라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우리의 욕구와 상황이 만나 풀어야 할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일부로서 감정이 생겨나게 된다. 즉, 경험 ⇒ 감정 ⇒ 선택이 아니라 욕구+상황 ⇒ 문제 ⇒ 해결 방안 ⇒ 그 일부로서의 감정이라는 연결 관계다.

이는 우리의 감정이 경험에서 발생하는 수동적인 현상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보다 우리는 욕구와 상황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구성하게 되며 그 일부로서 감정이 자리한다.

예를 들어 보면, 두려움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상을 향한 감정이다. 위험한 동물을 갑자기 마주친다면 우리는 본능적은 두려움을 느끼면서 대상에 집중하고, 그 동물의 자세와 움직임 등을 살피면서 의도를 짐작하고, 자신이 취할 조치를 판단한다. 위험한 동물이 초래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직관과 추론, 배우거나 경험한 지식, 실시간으로 추가되는 정보 등이 종합되어 구성되며 감정적 반응 역시 그런 해결 과정을 만드는 과정에 개입하는 요소로서 역할을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이런 방식으로 진화해 온 존재이다. 우리의 감정, 욕구, 이성, 직관은 상황에 대한 적정한 대응을 선택하기 위한 도구로서 진화해 온 것이다. 유전자가 목적으로 삼는 생존과 번식을 우리가 인생의 지상 목표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위들을 하는 데에서 기쁨을 얻고 그에 부정적인 상황에 처할 때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행위를 하기 위한 동기로서 부정적 감정들을 느낀다. 우리의 본성은 진화의 산물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을 이어 나가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선택이 중요한 것은 좋은 선택을 하거나 나쁜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선택이라는 의미이다.

이 생각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왜 불행한지, 나라는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등등 여러 가지 질문들에 답하는 하나의 공통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 즉 여러 질문들의 의미는 내가 해야 하는 선택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불필요하게 이어지는 불행한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멈추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열등감을 자극하는 어떤 경험을 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 자신보다 훨씬 멋있게 보이는 사람이 자기가 꿈꾸던 이성 상대를 만나 함께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라고 해 보자. 이런 경우 마음은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상상과 비탄, 그것을 가질 만한 자격이 없는 자신에 대한 원망과 열등감 등 부정적 감정과 그에 이어지는 온갖 생각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감정과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그 감정과 생각들이 평소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진실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처럼 여겨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감정과 생각을 떨쳐버리는 대신 더 파고들게 된다. 하지만 그런 진실이란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기가 쉽고 그것의 진실 여부가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다. 결국 의미가 있는 질문은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뿐이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진리라 여기는 것들은, 인간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진화가 만들어낸 도구들이 기반이 되어 구성된 인식 모델일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모델을 검토하고 조정하고 활용해서 우리가 적절하다고 믿는 행동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좋지 않은 여건이나 우리가 가진 결점이 아니다. 이런 문제들은 진정한 문제에 주어진 조건들일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선택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불행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에 혼란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음을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의 불행은 상당 부분 사라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전환된다. 즉 주어진 바를 변화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는 일만 남게 된다. 그 주어진 바가 끔찍하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운명은 감내할 만하며 우리는 그 운명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갖는 대신 우리 운명 안에 포함된 긍정적 요소에 집중하며 그것을 누리는 데에 관심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우리는 선택을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거나, 적어도 그런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 상태에 만족하는 대신 불만의 부분을 찾아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 그렇지만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 결과가 정말 좋은 것인지, 아니 어느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불안하고 해소되기 어려운 불만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우리는 선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선택은 어렵고 힘이 들고 삶 전체의 자연스러움을 방해한다. 선택에는 비용과 효과가 따르는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

삶은 이와 같은 선택의 딜레마를 해결해가는 방식이 무엇인가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카페에 흐르는 음악이 그 카페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것처럼, 우리가 선택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은 우리 삶의 기본 모드를 바꾼다.

하나의 전략은 효용을 최대화하는 경제적 인간의 전략이다. 즉 돈과 시간 같은 한정된 자원 조건 내에서 자신의 효용을 최대한 만족시킨다는 기준 하에 모든 선택을 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여러 단점을 갖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자신의 효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효용은 쾌락이나 고통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즉 효용이란 우리가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것인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효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와 함께 변하는 것이다. 한때 절실하게 바라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퇴색하는가 하면 있는 줄도 몰랐던 기쁨을 경험하게도 된다. 한달 동안의 행복한 사랑이 돈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같은 문제에 정답은 없다. 이처럼 우리가 원하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원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이룰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은 잘 모르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도 있는 기회들까지 고려한다면 우리는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항상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 살아야 할 것이다.

반대편의 전략은 선택의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노자와 장자가 권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순리에 따라 무리를 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려운 선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의 가치나 무리해서 잡을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불교의 무욕과 해탈 개념도 그런 맥락을 담고 있다. 이들 방식과 전혀 달라 보일 수 있지만, 어떤 대의명분이나 목표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고 헌신하는 사람은 가장 높은 차원에서의 선택을 명확히 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바가 있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나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의 발전에 헌신하는 경영자, 평생의 연구과제를 파고드는 학자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비한다면 구체적인 목표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는 일은 훨씬 어려움이 덜하다.

우리 대부분은 절충의 길을 따른다. 그렇지만 양 극단의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사람마다 무척 다르다. 우유부단에 고통받으면서 삶에서 최대의 것을 얻어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결정을 시원스럽게 내리면서 삶의 활기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반면 선택에 들어가는 비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며 삶의 기본 모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우리는 우유부단을 벗어나야 하며, 우리의 삶이 선택의 무게에 짓눌려 지지부진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택의 중압감에 짓눌리면 마음은 중언부언한 백색소음으로 가득 차 어디에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고 무엇이라도 깊이 음미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을 통해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 한 온전히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선택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 주제는 다음 기회에 더 깊이 다루도록 하고, 여기에선 몇 가지 예시만 들어 보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효용을 최대화한다는 식의 경제학적 사고를 버릴 필요가 있다. 최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방식인데다,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다가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을 위험이 있다. 우리는 사소한 문제들은 직관과 단순한 원칙에 의존해 쉽게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잘못을 범할 가능성을 대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문제들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그런 문제들이 심사숙고만으로 가장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선택을 돕는 구체적인 원칙과 기준들을 미리 정해 놓는 것도 도움이 되고, 가장 중요한 가치들에 대한 믿음을 잘 갖추어두면 선택의 어려움이 줄여 준다. 하지만 그런 원칙과 기준들이 불충분한 상태에서라도 마음의 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자신을 믿고 맡기는 모험을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정도 지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선택의 중압에서 벗어난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식적인 갈등을 겪는 선택의 횟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선택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활기와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목표가 뚜렷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선택들을 해 나가는 일은 몰입과 자아실현의 느낌을 줄 수 있다. 선택의 빈도나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유부단하게 고통스러운 갈등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움을 안고서 직관과 추론과 우리 존재 전체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며 필요한 선택들을 해 나가는 원활함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원활함은 호연지기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 호연지기의 개념은 여러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나는 거침이 없고 자유롭고 당당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밝은 눈과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접하는 기운이라고 할 수도 있다. 호연지기를 품은 사람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그 배경음악이 다르다. 그 기운을 경험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일은 대부분의 사소한 선택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일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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