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으로서의 도
논리와 직관은 우리가 사고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논리는 다루려는 문제를 언어로 표현하고 추론을 통해 결론을 내린다. 직관은 인식하기 어려운 중간단계들을 빠르게 통과해 결론에 도달한다.
두 가지 방식의 경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논리적 추론을 무의식적으로 매우 빠르게 진행하면 직관에 가까와진다. 또한 논리적 사고 역시 엄밀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직관에 따른 가정과 비약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의 모든 사고 활동을 논리와 직관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이 중 몇 가지를 다루어 보자.
먼저 감정은 그 자체가 사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곤경을 겪는 것을 보고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연민에 의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사람을 돕는 행위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취할 행동을 선택하는 직관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에만 주목해 본다면 감정은 직관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인지는 어떨까? 우리는 어떤 대상을 살펴 보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당장 특별한 행동은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대상을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데, 어떤 대상의 색깔, 무게 등을 판별하는 일은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 직관의 방식에 가깝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화가 나서 책상을 내리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추론하거나 그에 대한 자신의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들은 무의식적으로, 즉 직관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언어를 통한 표현과 추론 과정을 의식적으로 거치는 논리의 방식이 더해질 수도 있다.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대안을 떠올리는 창의적 사고의 경우는 어떨까? 만약 문제를 생각하는 와중에 여러 정보와 지식이 결합해 새로운 통찰이 떠오른다면 직관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떠오른 생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검증하는 데에는 논리가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도 단지 영감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원인을 찾고 원인에 따른 해결방안을 구상하는 과정들이 논리와 언어적 표현에 의존할 수 있다. 아마 창의적 과정이란 논리와 직관이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진행되어 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가 상황에 대처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선택을 하려 할 때 논리와 직관은 우리가 취하는 기본적인 두 가지 도구이며, 이 두 가지를 결합해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직관은 입력값이 주어지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을 거쳐 빠르게 결론을 산출해 낸다. 반면 논리는 절차와 규칙에 따라 신중하게 사고를 진행하며 의심을 품고 검증하고 힘을 들여 한 단계씩 나아간다.
하지만 논리와 직관이 서로 꼭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에 고통 받는 논리적 사고과정에 직관적 판단을 적절히 제공하면 논리는 훨씬 더 원활하게 진행된다. 무모하게 나아가는 직관에 논리가 방향과 틀을 제시해 준다면 직관은 더 안전하고 일관되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논리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차별화된 장점이며, 현대 문명을 구축해 온 초석이다. 과학과 공학을 비롯해 우리 문명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은 대부분 논리를 통해 구축되어 왔다. 정부와 기업의 결정들은 합리성을 요구받고 상호 검증이 가능하도록 언어와 논리로 표현되어야 한다.
논리는 직관으로는 불가능한 광대한 지식 체계를 갖추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직관은 논리가 피할 수 있는 편향성을 갖고 일관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논리적 검토를 통해 직관만으로 갖기 어려운 확신을 가질 수도 있고, 논리적 선택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향후 선택의 근거를 되돌아 보며 새로운 교훈을 얻기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논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과 노력을 많이 소모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이 충분하고 전제가 잘 갖추어져 있다면 논리가 잘 작동할 것이나, 선택이 어려운 경우란 논리가 의존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경우이다. 우리의 선택이 ‘좋음’과 ‘옳음’을 지향한다면 그 좋음과 옳음의 기준이 무엇인지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논리의 항목들을 이루는 개념들은 정의가 불명확하고 논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전제들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 개연성에 대한 믿음일 뿐이다. 논리적 사고는 행동과 병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판단하는 단계와 행동하는 단계가 분리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행동을 하면서 변화하는 상황이나 새롭게 주어지는 정보를 활용해 판단을 바꾸기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논리의 장점 못지 않게 그 단점도 막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논리는 직관이 주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다. 논리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직관 대신 논리에 의존하는 것의 효과와 비용을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직관은 에너지가 쓰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때나 활용할 수 있지만 논리는 우리가 상시적으로 장착하고 있을 수 없는 도구이다. 특히 미묘함과 신속함, 유연함이 필요한 상황에서 논리는 직관처럼 자연스럽게 작동하지 못한다.
또한 직관에는 즐거움이 있지만 논리는 고통을 안겨준다. 논리적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기쁨도 어느 정도는 새로운 직관에 도달하게 된 것에 따르는 기쁨이다. 직관은 상황에의 몰입을 가능하게 하고 주어지는 자극들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풍부함과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직관은 쓰면 쓸수록 나아지는 경향을 갖는다. 훈련과 경험을 통한 학습은 직관의 향상을 가져 온다. 직관의 발휘는 자기의 역량을 동원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과 자신감을 가져다 준다.
합리성이 우대를 받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직관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일상 생활의 기본 모드에서 논리보다 직관의 비중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직관에 따르는 삶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편안하고 유연하고 자유롭다. 직관을 따른다는 것은 노자나 장자에서 도를 따른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논리와 개념으로 아름다움과 선함을 규정짓지 않고 서로 다른 것 사이에 우열을 판단하기보다 다양한 것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날카롭고 예리하고 경계를 짓지 않고 무디고 둔하게 머무른다.
이를 위해서는 사소한 선택들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고자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고, 직관에 의존하는 습관을 붙여야 한다. 논리에 의존하는 습관이 강하면 검증되지 않은 직관에 따라 결정하는 일이 불안하고 좀처럼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습관은 실행의 반복으로 달라진다. 좀 불안하더라도 자기의 직관을 믿고 따르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진다. 수영을 배우면서 물에 자연스럽게 뜨는 연습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결정을 전적으로 직관에 맡기지 않더라도, 논리가 모든 단계를 빈틈 없이 메꿀 수 없음을 인지하면서 논리와 직관을 적절히 섞어 판단하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하게 놓인 논리의 징검다리 사이를 직관의 힘을 빌어 도약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육감이 발달한 탐정처럼 스스로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미세한 신호들을 포착하면서 우리 직관의 미묘한 변화들을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직관은 정보와 지식, 평소 갖추어둔 논리와 믿음들의 도움을 받아 더 효과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 즉각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삶의 순간순간에는 직관을 발휘하고, 여유가 있는 시간에는 생각하고 배우면서 더 나은 직관이 가능한 토대를 구축해 둘 수 있다.
논리와 직관이라는 두 도구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삶의 배움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