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의 결론 : 일단락

우리의 유일한 과제는 선택하는 것, 그 외에서는 자유로울 것

by 황인석

지금까지 여러 주제로 했던 이야기들에 대해 일단락을 지어 보려고 한다.


먼저 한 가지 결론은, 우리의 핵심적인 과제가 선택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적절한 선택을 하기 위해 갖추어진 도구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인식, 논리, 직관, 감정의 기반은 그렇게 진화의 산물로서 구축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생존과 번식을 인생의 근본적인 의미로서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본성에 따라 이기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시험관 시술 업체에 제공할 정자를 제공하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가 의미를 정의하고 추구하는 방식은 진화에 의해 형성된 우리 본성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감정들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그 자체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즐거움과 기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슬픔과 고통, 질투와 분노 등 여러 감정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지만 어떤 경험으로 인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결과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이 감정들이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 생존의 도구로 채택되어 온 것으로 본다면 이 감정들에 거리를 두고서 제3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후회는 우리가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시행착오의 반복을 피하게 만들고, 질투와 부러움은 우리가 간과했던 기회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 분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이런 감정들의 의미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의미에 도움이 되는지의 관점에서 재평가를 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긍정과 부정의 감정은 우리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평가를 내리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선택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대상이 부정적 감정을 반복해 일으킨다면 그 대상을 피해야 하고, 반대의 경우라면 그 대상에게 더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런 평가와 그에서 비롯된 선택들이 우리의 선조들이 처한 환경에서 그들의 생존 확률을 높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감정들은 우리의 인식과 상호작용을 갖는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 예를 들어 우리가 가진 목표에 도움이 되거나 가치관에 부합한다는 등의 판단을 내리면 긍정적 감정이 일어나고, 반복되는 긍정적 감정은 긍정적 인식을 형성한다. 어떤 대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가 판단했던 기억을 상기해 저 대상을 피해야 한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부정적 감정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대상을 피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인식과 감정과 직관은 함께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의 선택을 결정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 대상이 나쁘다고 하는 판단, 또는 그 대상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은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한 지식이라기보다 그 대상이 자신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추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추정은 유전자의 기반 위에 학습이 형성한 우리의 인지 모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이거나 열등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인지 모델에 기반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 방식으로 내린 일종의 가설인 것이지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다. 그 판단의 대상이 우리 스스로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더 확대해 이야기하자면, 세계는 우리가 느끼고 판단하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그 너머의 어떤 실체이지만, 그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아무 형체도 없는 것이고 우리가 직접 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뇌가 갖추고 있는 모델에 따라 실체를 인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뇌 안에 가져와 다룰 수 있을 뿐이며, 그 대상에 대한 정신적 작업의 결과로 여러 판단이나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선택과 행동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인지적 모델의 수정과 발전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판단이나 감정의 궁극적 효용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게 되는 경험들에 거리를 두면서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경험들은 나에게 무엇을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 외에는 우리가 집착할 질문은 따로 없다.

슬픔, 열등감, 상실감, 불안, 두려움, 질투, 미움 등 여러 부정적 감정들이나 그런 감정들을 일으키는 생각들 앞에서 우리는 그 감정과 생각들을 우리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한 신호로 간주하면서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만약에 그 질문에 지금 당장 답하기 어렵다면 먼저 잠을 푹 자고 몸 상태를 좋게 만든 다음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럼 이제 남는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 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답을 찾는 데 있어 몇 가지 확인할 부분들이 있다.

먼저, 우리가 온전히 직관과 충동과 우연에 의존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지 않는다면, 의식적인 목표와 가치들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믿음이 없다면 죽음으로 끝나는 삶에 절대적인 목적이나 가치는 없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기준이 되어줄 목표와 가치가 필요하다는 인간의 상황은 부조리로 이어진다. 부조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은 믿음과 비일관성이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목적이나 가치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떤 목적이나 가치에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우리 삶의 선택에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 건강, 행복과 즐거움, 성공, 명예, 특정한 성취 등에 가치를 둘 수 있고,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여 그런 목표와 가치들을 더 구체적인 것들로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기준점들이 있으면 우리의 선택은 훨씬 쉬워진다.

하지만 최상위의 목적이나 가치들에서 파생되는 하위의 목표들이 피라미드처럼 쌓인 일관된 체계에 따라 사는 일은 쉽지 않을 뿐더러 아마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행복과 같은 주관적 가치들은 정의하기가 어렵고, 객관적 가치들은 주관적 가치와 제대로 연관되지 않는다면 허망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계속 변화하는 존재이고 경험에서 배우기 때문에 고정된 가치체계에 따라 사는 삶은 경직된 것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여러 목적과 가치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흔하고, 가장 최상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더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최선의 가능한 삶과 비교할 때 항상 불완전하고 불만스러운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다시 딜레마가 생겨난다. 우리가 삶을 어느 정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선택의 기준이 되어 줄 가치에 대한 믿음과 일관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우리는 우리의 삶과 우리 자신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기회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좋은 선택을 내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좋게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좋은 선택을 내리려고 하는 마음이나 가치의 실현 여부에 연연해 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하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 기대하지 않았던 것, 있는지 여부도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것, 어쩌면 편안한 마음으로 누리기만 하면 되었던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러한 딜레마들을 고려하면서 삶을 구성하는 선택들을 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선택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핵심적인 과제이다.


여기까지가 실용철학이 제공할 수 있는 원론적인 결론이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성격과 상황에 맞춰 다음 단계로 나아가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구성해야 한다. 이 전략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적과 가치가 어떤 것들인지, 얼마나 명확한지, 성격이 지나치게 과감한지 아니면 우유부단한지, 나이나 경력 상 위치로 볼 때 남아 있는 삶에서 변화의 폭이 얼마나 크다고 생각되는지, 현재의 상황이 어느 정도로 불만스러운지, 문제가 주로 객관적 환경의 제약에서 비롯되는지 자기 자신의 혼란에서 비롯되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나의 전략을 예시로 간단히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내 전략은 세 가지이다. 먼저 내 일상의 틀을 정해 놓고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안정적 일상 속에서 나는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의구심을 품지 않으며 마음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고자 한다. 거리낌이 없는 마음은 세상을 더 깊고 새롭게 볼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나는 믿는다.

두번째 전략은 일상 속에서 떠오른는 비교적 사소한 결정들을 최대한 쉽고 편한 마음으로 내리고, 결정한 바를 미루지 않고 두려움 없이 실천하는 것이다. 아울러 나를 경험 속에 내 던지는 결정들을 과감하게 내리고, 그러기 위해 틀린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최대한 떨쳐 내는 것이다. 그 경험의 양에 집착할 필요는 없겠지만 내 마음이 끌리는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것과 여러 가지 부작용이나 위험 때문에 그 경험을 포기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면, 가급적 전자를 선택하는 용기를 내는 것을 방침으로 삼는다.

세번째 전략은 내 삶을 큰 폭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의 가능성을 놓지 않되, 그런 종류의 생각들은 특정 빈도로 정해 놓은 한정된 시간 동안에만 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하게 되는 생각들이 그런 큰 변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 보이면서 내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온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 중에 이미 한번씩 다루어 본 것들을 제외시킨다면 새로운 영감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영감들은 제대로 다룰 시간이 당장에 없다면 할 일 목록에 과제로 등록할 수 있다. 아무튼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영감을 만나게 되는 경우란 드물기 때문에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은 일상에의 집중과 작고 새로운 시도들을 위한 추진력을 흐트러뜨리지 못하도록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전까지 가두어 둘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전략들을 통해 일상 속에서 긍정과 몰입과 발견과 경탄의 기회를 더 많이 만나기 바라고, 의구심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정과 작지만 새로운 변화들, 그리고 내 삶에 대한 근본적 차원의 반성과 새로운 관점에서의 모색이 균형을 이루기를 바란다.


내가 다루고자 했던 실용철학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지금까지의 글들로 일단락을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과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철학적인 주제에 관한 독립된 글들을 목차의 흐름에 큰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덧붙여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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