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의 역할

모드 전환의 중요성

by 황인석

필 로젠츠바이크가 지은 “올바른 결정은 어떻게 하는가”라는 책에서는 일반적인 인지심리학의 명제와는 다른 관점에서 적절한 선택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예측과 의사결절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편향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대니얼 카너먼이 대표하는 행동경제학에서는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제적 인간’과 다르게 현실의 인간은 여러 가지 편향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이익보다는 손실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예측 능력을 과신한다는 등이다.

그런데 로젠츠바이크는 이러한 이론들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의사결정과 다른 상황을 전제로 구축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론들은 주로 실험실에서의 상황, 즉 자신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추측이나 예측을 하는 경우를 다루는 반면, 현실에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에서는 많은 경우 예측의 결과를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주가가 미래에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예측은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객관적 대상에 대한 예측이지만, 내가 어떤 일에 성공할지 여부에 대한 예측은 그 예측이 맞는지 여부에 스스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보통 심리학 이론들은 과도한 자신감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측을 하고 그 예측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이야기한다. 주식이 오를 거라는 기대로 투자를 하다 손실을 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은 이런 이론이 맞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에는 자신감이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반드시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사람의 성과는, 그렇지 않고 ‘현실적인’ 예측을 하면서 자신감을 갖지 않는 사람의 성과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자신감이 성과를 실제로 향상시킨다는 것은 여러 실험으로 증명되고 일상의 경험과도 부합한다. 더군다나 낙관적 예측과 비관적 예측은 자기실현적 예언 효과로 인해 자신의 원래 예측이 맞았다는 믿음을 강화시키게 된다.


물론 지나친 낙관주의과 자신감으로 인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거나, 무모한 투자나 비현실적인 프로젝트 계획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중용이 필요한 것일까? 지나친 것도 아니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자신감?

상반되는 가치가 충돌할 때 중용과 균형이 해법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용기가 지나치면 무모함이 되고, 신중함이 지나치면 우유부단함이 되니 용기와 신중함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법은 적절한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따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로렌츠바이크가 지적하듯이, 어떤 수준이 적절한 자신감인지를 판단하기란 어렵다. 누군가가 과감한 시도로 성공을 거두면 사람들은 그의 낙관적 비전과 그에 대한 신념이 성공을 이루었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결과가 실패로 끝나면 지나친 자신감에 원인을 돌린다. 사후 약방문인 셈이다.

이런 경우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침은 자신감을 우선시해야 할 상황과 객관성과 신중함을 우선시해야 할 상황을 구분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객관적인 대상들에 대한 예측을 할 때는 인지심리학자들이 보통 권고하는 대로 심리적 편향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자신감, 다시 말하면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근거로 정당화를 할 수 있는 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자신감을 갖는 것이 더 낫다.

더군다나 승패의 여부에 따라 보상의 크기가 막대한 차이를 갖게 되는 경쟁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십 명의 경쟁자 중 상위권 일부에게만 보상이 돌아가는 승자독식의 상황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나친 자신감으로 잘못된 시도를 해서 잃게 되는 손실보다 지나친 소극성으로 기회를 놓치게 되어 얻게 되는 손실이 더 클 수 있다. 잘못이라는 점에서는 같더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실패하는 편이 시도를 하지 않고 기회를 잃는 것보다 보상 측면에서 더 나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는데 집중해야 할 상황편향을 경계하며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데에 집중해야 할 상황을 구분하고 각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로렌츠바이크는 골프의 예를 들고 있는데, 골프에서 홀까지 접근하기 위한 전략을 세울 때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가늠하고 바람과 잔디의 상태와 그날의 컨디션 등 살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살피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타수를 줄이는 시도를 할지 무난한 전략을 취할지 선택을 해야 한다. 이때 지나친 낙관으로 무모한 시도를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계산과 선택을 마치고 골프채를 잡는 순간에는 확률에 대한 생각을 내려 놓고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공을 쳐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건 객관성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여러 스포츠 종목들 중에서도 골프는 객관적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모드와 자신감을 갖고 행동에 몰입해야 하는 모드의 대비가 뚜렷하고, 한 경기를 치르는 동안 반복적으로 두 가지 모드를 오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정신력 훈련에 유리한 스포츠다.


로렌츠바이크의 조언은 지혜의 한 속성을 보여 준다. 지혜는 단지 두 가지 상반되는 지침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지혜 역시 하나의 지침만을 추종하고 다른 측면을 무시하는 것에 비한다면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균형 감각에 의존하라는 것 이상의 지침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지침들이 각각 어떤 상황에서 더 유효한지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선택을 돕는 지침으로서의 유용성이 더 큰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골프의 예는 모드 전환의 유용성을 보여 준다. 중용과 균형은 동시에 여러 가지 미덕을 섞어서 혼합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하나의 미덕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모드들 사이를 오고 가는 방식으로 중용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전략을 세울 때 다양한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면, 어떤 구체적인 목적이 정해졌을 때는 그 목적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은 잊어버리고 목적의 달성에 집중해야 한다. 선택을 할 때는 여러 가능성을 비교하면서 불확실성을 인식해야 하지만, 일단 선택을 내린 다음에는 모든 의심을 잊어버리고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


합리성의 관점에 집착하면, 지나친 자신감은 미덕이 될 수 없다. 또한 불확실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어떤 믿음에 확신을 갖는 것 역시 합리성의 미덕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지혜는 제한된 합리성을 넘어선 더 포괄적인 합리성에 부합하는 지침들을 제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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