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고 하는 환상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관련된 논리들을 다시 정리하고자 한다. 행복의 최대화라는 가치관은 삶을 대하는 기본 자세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 중 하나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관의 영향력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 인생의 의미이고 목적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삶의 매우 광범위한 측면에서 그런 믿음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한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대안적 태도들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전제가 될 수 있다.
행복 최대화의 가치관은 궁극적 의미가 경험에 있으며, 그 경험이 행복(효용)이라는 단일한 척도의 무엇인가를 생산해 낸다고 믿는다. 여러 경험의 의미들은 행복이라는 이 하나의 척도로 통합되어 측정하고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삶의 목표는 이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 살면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런 이론이 경제학에서는 효용곡선, 한계체감의 법칙, 자원의 제약 내에서의 효용 최대화, 최적의 균형, 기회비용과 같은 개념들을 통해 설명된다. 모든 것은 효용으로 환원된다.
경제학 이론에서는 효용과 돈이 서로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돈과 효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돈보다는 효용이 더 본질적인 개념이다. 여가와 소득, 임금과 노동 조건, 현재의 소비와 미래의 소비의 가치도 효용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평가되고 비교된다. 경제학은 이런 전제 하에서 임금과 가격과 이자율이 결정되는 방식을 구성해낸다.
이러한 경제학적 이론은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비슷하게 반영이 된다. 선택의 목적은 효용을 최대화하는 것이고, 그러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 삶에서 최대한의 효용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시간과 열정 등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여 최적의 균형을 통해 행복의 최대화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행복 최대화 가치관의 전제들은 그럴 듯하지만 비합리적이다.
먼저, 서로 다른 경험의 가치가 효용이라는 단일한 척도로 통합될 수 있을까? 경제학에선 어떤 사람이 두 가지 가능한 경험 중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보이지 않는 효용을 드러내 보인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어진 대안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한다는 것이 그 대안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는가? 이것은 일종의 동어반복이 아닐까? 우리는 더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지만,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현실은 우리에게 가치의 우열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경험을 공통의 척도로 비교하여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다. 행복감이나 즐거움 등 긍정적 감정의 양을 측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단맛이 즐거우니 가장 단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각각의 경험은 저마다 특별하고 복잡하며 서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다른 경험보다 선호한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확정하여 단언할 수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여행을 갔는데 그 중 하루를 보낼 곳으로 아름다운 해안의 휴양 도시와 고대 로마의 유적지 중에서 선택한다고 하자. 어떤 선택이 옳은지에 대한 정답이 있을까?
당신은 즐거운 여행과 그렇지 않은 여행의 차이가 있고 우열도 있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즐거움의 양을 측정하는 것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떠나서 경험의 가치를 즐거움 만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해변의 아름다움과 오래된 역사적 건물들이 주는 감흥은 본질적으로 서로 비교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두 가지를 동시에 선택할 수밖에 없으니 어떤 하나를 선택한 것을 두고 그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가 흔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감정들이라고 해서 즐거움보다 못한 것일까?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느끼는 희열이 그 과정의 고통과 떼어낼 수 없는 것처럼, 여행에 따르는 여러 난관, 피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 우연한 사건들은 그 여행이라는 경험 전체에서 빼낼 수 없는 것, 그것을 빼낸다면 뭔가 다른 종류의 경험으로 바뀌게 되는 요소들이 아닐까?
더군다나, 지금 우리는 두 가지 대안 모두 경험을 해보지 못한 상태이다. 경험을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경험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까?
만약 두 가지 대안 모두 작년 여행 때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선택이 더 쉬워질지 모른다. 하지만, 작년의 경험과 올해의 경험이 같을 수 없고, 올해의 나는 작년과 다르며, 기억은 불완전하고, 같은 곳을 두 번 여행하는 것은 한 번 여행하는 것과 다를 것이며, 날씨나 우연히 마주칠 사람들 등 수많은 요소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떤 풍경, 늦은 오후의 햇살과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와 당신이 마침 마음에 품고 있던 상념들과 하루 종일 걸으면서 지친 몸이 어울려 이 그 여행의 가장 특별했던 기억으로 평생 남을 수도 있다. 당신이 가장 의미있게 여기는 경험들은 그 경험으로 이어지는 선택을 할 때 당신이 의도하고 기대했던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에게 가치관이 갖는 효용은 우리가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택은 별 어려움 없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선호하는 대안이 분명히 드러나거나 의식적인 고민을 할 만한 모호함이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식적인 고민을 하며 선택을 하려고 하는 상황은 어떤 대안이 우리의 선호에 맞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택의 결과를 제대로 상상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 있는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도 없다. 그럴 때 행복 최대화의 가치관은 선택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처럼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일은 본질적인 차원에서 비합리적이고 선택에 현실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반면,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먼저, 행복을 최대화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힘든 과제이기 때문에 마음에 항상 떠나지 않는 부담을 지운다. 소박한 사람들이 만족해 할 만한 순간에도 행복에 대한 야심을 가진 사람은 지금이 최선인지를 묻는다. 최선을 기준으로 한다면 현재보다 더 나을 수 있는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현재의 경험에 집중하지 못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거나 가능할 수도 있었던 다른 기회와 비교하는 일을 그만 두지 못한다. 우리는 저마다 특별한 경험들 그 자체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대신, 행복의 하위 가치로서 경험을 대한다. 그런 마음가짐은 접하는 모든 경험이 전달해 주는 것들의 태반을 잃어버린다. 우리가 만나고 대면하는 대상들은 상대적인 가치로 평가 받고 대체 가능한 것으로 격하된다. 우리는 마음의 그러한 움직임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 불안과 죄책감과 수치심을 겪는다.
최대화 방식의 접근이 유용한 영역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기본 원리는 효용 최대화에 기대고 있다. 기업들은 최적화된 생산을 추구하고, 공적 영역도 공익을 최대화한다는 원칙 하에 설계되고 운영된다. 하지만 이때 효용은 돈이라는 매개로 대체되어 최대화의 대상이 된다. 돈은 객관적으로 측정과 비교가 가능하다. 행복 같은 추상적 가치에 비해 돈과 같은 객관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최대화 기준을 적용하면 경험의 주관적 가치를 평가하고 비교하려는 데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점과 어려움이 줄어든다.
개인적 삶에 있어서도 행복 같은 추상적 가치 대신 객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는 몇 가지의 중요한 목표들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낫다. 건강, 돈, 직업적 성공, 특정 능력의 획득, 다른 사람의 행복(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때와는 다르다)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목표들을 추구하는 데에는 추상적인 “좋은 경험”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목표가 서로 상충될 때 문제가 생기지만 그런 문제는 의외로 자주 발생하지 않을 수 있고, 상충되는 경우에도 우리가 그 목표들을 통합한 더 높은 가치의 최대화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조정이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만, 이러한 목표들은 삶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지침과 촉매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삶의 의미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삶에서 누리는 것들은 우리의 추구와 알 수 없는 우연들이 만나 이루어지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우리의 의지를 소재로 활용하지만 우리의 의도와 예측을 넘어서는 운명의 축복이다.
요약하자면, 구체적인 경험의 의미를 넘어서서 추상적인 행복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부작용이 많은 과제이다. 그와 같은 과제에 집착하면 다른 가능성들이 막힌다.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과제에서 단호하게 벗어나는 것은 삶에 대한 대안적 자세들을 구성하기 위한 전제이다.
그 출발점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대상과 경험들이 행복과 같은 더 큰 가치에 종속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다른 것들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의미들을 갖는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과 하나가 되어 우리 자신을 잊고 경험만이 남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원할 가치가 있는 행복의 가능성은 우리가 그에 대한 자기중심적 집착을 단호하게 그만 둘 때에만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