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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주인 없는 집, 대답 없는 부탁

by 조수란

오전 10시 반쯤 되자, 시동을 걸고 교회로 향했다. 저번 주에 가겠다고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약속 하나만은 철썩 같이 잘 지키는 나이다. 항상 약속시간 10분에서 1시간 전에 도착하는 센스 쟁이다. 하하하. 물론 그렇게 일찍 와서 기다리다가 펑크 맞을 때도 있고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있지만 말이다.


교회에 도착하자, 친절한 아저씨가 주차장으로 안내해주셨다. 약속장소인 커피숍에 발을 들여놓으니 아무도 없었다. 너무 일찍 왔나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마당에 나오니 낯모를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교회에서는 누구나 자매사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분들은 신기하게도 나와 같은 원숭이띠였고 조금 나이 있으신 분은 띠 동갑이기도 하였다. 오잉? 오늘은 바나나라도 먹어야 한담? 서로의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시간에 맞춰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코로나 시국이라서 소심한 나는 마스크를 두 겹이나 끼고, 손 소독 하고, 열 체크를 마치고 맨 구석을 향해 앉았다. 천당을 연상케 하는 교회안의 모습은 지붕이 높다랗게 지어져 있었고, 시원하고 강당보다 넓은 곳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비록 거리두기는 실천하였지만 커다란 대문 옆 맨 구석에서 나는 마스크를 두 겹이나 쓰고 무슨 염탐하러 온 사람처럼 주위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때 찬송가가 교회 안에 울려 퍼지면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온 몸을 통과해 그 전율에 내 자신을 맡겼더니 고요한 물에 몸을 담그듯 피로했던 육체가 편안해지면서 감정 밑바닥까지 설레기 시작하였다. 어릴 때부터 무신론자의 나를 보고 교인들은 하나님이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럼 하남님 한분이서 어떻게 지구위의 70억 인구의 소원을 들어주느냐는 나만의 의문과 질문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오늘은 비록 주인 없는 집에 놀러 온 기분이지만 나쁘진 않았다. 나는 그저 속으로 대답 없는 부탁을 드리면서 아멘을 외쳤다.


‘하나님, 지구반대편의 가난한 친구들이 더 이상 배고프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코로나라는 전염병과 미얀마시민들의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 초면에 이렇게 부탁만 드려서 염치가 없고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간절하게 이렇게 부탁할게요. 제발요.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나도 아이한테서 배운 거라 쑥스럽지만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제가 비록 덩치가 커도 아는 것이 없는 한 사람이고 무지한 늪에서 허덕이다가 배움을 통해 희망을 잃지 않았고, 오늘 또 이렇게 따뜻한 분들을 만나 하나님을 만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주인 없는 집에서 대답 없는 기도를 하며 코로나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견뎌냈다. 목사님이, 다음 주에 또 뵙자고 하는 약속 앞에서 나는 그저 난감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나님, 코로나가 종료 될 때까지 거리두기를 해야 해서 잠시 만나지 맙시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믿지 않는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더군다나 의심이 많고 소심한 성격에 수많은 의문과 질문 앞에서 고민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는 내 자신도 믿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는 무능하고 나약한 인간이다. 이 불가사이하고 신비로운 세상에 살면서 진정한 배움과 열정과 노력과 간절함만이 내 몸의 세포들을 두들겨 깨우기 시작하면서 이제 막 삶에 눈을 뜨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비록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삶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하지만 커다란 무를 한 번에 삼킬 수 없듯이 마흔에 들어선 오늘 뒤늦게 삶을 조금씩 깨닫고 천천히 배우면서 익혀가는 중이다. 아직도 신에 대한 수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에 여기저기 굴러다니지만 그것들의 실마리가 다 풀리기 전까지는 내가 신에 대한 모든 것을 과연 다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오늘 비록 반신반의한 상태로 교회라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했지만 다시 가도 좋을 것 같고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믿음이 우리의 삶에 따뜻한 마음을 선물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칠 때, 높은 곳에서 아래로 추락할 때, 믿음이란 든든한 울타리가 있음으로 하여 다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게 받쳐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린 나름의 생각에서이다. 어쩌면 믿음과 사랑이 삶의 밑받침을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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