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나를 향해

by 조수란

어느 날, 무심코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보만 스님의 말씀이 흘러나왔다.

“나는 나가 아니다.”

그 한 문장이 내 가슴 한가운데를 조용히 울렸다. 우리가 늘 ‘이 몸이 곧 나’라고 믿고 살아온 삶이 잠시 멈춰 섰다.


사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웃고 울며 살아갈 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음식을 먹어 생긴 이 몸이 곧 ‘나’일까? 물로 이루어진 몸이 ‘나’라면, 물 한 잔이 빠져나간 순간 나는 나를 잃는 걸까?


정신은 또 어떤가. 오감이 만든 기억, 스쳐가는 생각, 불쑥 치밀어 오르는 감정들…

그 모든 것이 모여 나라는 존재가 된다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생각은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질 뿐, 붙잡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아, 나는 내가 붙잡아온 그 모든 것이 아니었구나.’


회사에서 관리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던 날이 있었다. 나만 혼난 게 아니라는 알 수 없는 안도감에 작게 “반사~” 하고 웃어 넘겼지만, 만약 그 화살이 온전히 나에게만 향했다면?


그 순간 관리자의 분노는 어릴 적 아버지의 얼굴과 겹쳐 보였고, 두려움과 분노가 내 안에서 뒤엉켜 솟구쳤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었다.


감정은 원래 90초를 넘기지 않는다지만 우리는 종종 그 감정을 붙잡아 독으로 바꾸어버린다. 흘려보냈다면 금세 사라질 것을 내가 붙들었기에 상처가 된다.


생각해보면 우주는 늘 완벽하게 움직인다. 심장은 내가 시키지 않아도 뛴다. 피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낮과 밤은 잊지 않고 찾아온다.


문제를 만드는 건 언제나 ‘생각’이다. 몸에 좋지 않은 선택들, 감정에 휘둘린 결정들…

우주가 흐르는 길 위에 생각이라는 돌멩이를 올려놓는 건 언제나 나였다.


스물한 살,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다른 미래는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양팔이 없는 여성이 발로 아이에게 양말을 신겨주고 발로 운전해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서 ‘감사’라는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없어진 것만 바라보느라 내가 가진 것들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었다. 그렇게 다시 피어난 재능들은 예전 직장보다 몇 배나 많은 수입과 몇 배나 넓은 세상을 선물해주었다.


한쪽 팔을 잃었다고 해서 정신까지 함께 잘려나간 건 아니었다. 정신은 여전히 완전했고, 가능성은 여전히 무한했다.


우리는 때때로 육신 속에 갇혀 살아간다. 상처 난 과거에 갇히고, 흩어지는 생각에 갇히고, 세상의 기준에 갇혀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


하지만 스님이 말했듯,

“나는 나가 아니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나’보다 더 큰 존재가 내 안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몸도, 생각도, 감정도 그저 잠시 빌려 쓰는 것뿐.


진짜 나는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더 큰 나’였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나는 무한하다.

나는 갇혀 있지 않다.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우리가 텅 빈 곳에서 와서 다시 텅 빈 곳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 사이의 ‘나’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믿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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