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아픔은 벌이 아니라 신호였다

by 조수란

오늘도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딸이 다니는 학교 보건실에서 전화가 왔다. 딸이 갑자기 열이 나니 병원으로 데려가보라는 연락이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지만, 약을 먹고 잠시 열이 내려가는 듯하더니 다시 금세 뜨겁게 올라갔다.


첫날 밤, 딸은 계속 열에 시달렸고 나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아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다윤아, 엄마가 책에서 배우고 강의에서 들은 내용인데 한번 잘 들어봐.

우리 몸의 70%는 물이고, 나머지 30%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으로 만들어져. 만약 물 70%를 모두 없애면 뼈와 살만 남겠지? 그리고 그 30%마저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그래서 사실 ‘몸’은 진짜 ‘나’가 아니야. 그렇다면 아픈 것도, 열이 나는 것도 결국 ‘나’가 아닌 거지.”


나는 아이의 이마와 목, 팔을 차례로 만져보았다. 열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었고, 해열제를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딸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나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우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봐.

피곤해도 잠자기 싫어서 버틴 적은 없는지, 추운데도 얇게 입고 다닌 적은 없는지, 배고픈데도 대충 넘긴 적은 없는지…

몸이 힘들다고 보내는 신호들을 우리가 무시하면, 그 피로들이 쌓여 독소가 되고 결국 아픔으로 나타나는 거야.


그럴 땐 몸에게 ‘고마워’라고 말해줘.

아픔과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거야. 아픔도 나도 흘러가는 존재일 뿐이거든.


열에게도, 아픔에게도 말해보는 거야.

‘나를 일깨워줘서 고마워. 이제는 가도 돼. 잘 가.’

그리고 아픔이 검은 연기처럼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상상을 해보는 거야. 건강해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딸은 몇 번을 되뇌이더니 깊은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나는 살며시 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놀랍게도, 정말 신기하게도 열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약도 먹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열이 오르지 않았다. 딸은 몸이 가벼워졌다며 웃었고, 온 가족이 마치 작은 기적을 경험한 듯 신기해했다.


몸이 피곤하면 마음도 힘들어지고, 마음이 지치면 몸도 무너진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요즘 직장인들의 현대병인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매일이 버겁고 불안하고 우울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생각의 감옥’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색안경을 벗으면, 우리는 원래의 ‘진짜 나’로 돌아갈 수 있다.

원래의 나는 사랑과 풍요로 가득 찬 순수한 존재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육체’라는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왔다.


그렇기에 우리 몸을 잘 돌보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때로는 인스턴트 음식에 마음이 흔들리고, 때로는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시고, 자극적인 음식으로 감정을 달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몸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신호를 보내준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전에 먼저 몸이 보내는 작은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어쩌면 아픔은 나를 벌주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살리려 애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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