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둘째가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부스스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지금껏 아이들을 위해 사는 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아이가 알고 있던 터라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만약에 내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엄마는 어땠을까?”
다른 때 같으면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지.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라는 행복한 말로 마무리를 지었을 텐데, 하루 종일 일이 힘들고, 피곤이 쌓이고, 마음이 지친 탓에, 마음 따로, 생각 따로 분리되면서 아무렇게나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러면 편하겠지.”
“뭐라고? 엄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언제는 내가 있으니까 살 것 같다며. 내가 있어서 엄마를 안아주고, 안마해주고, 엄마가 뚱뚱하면 보기 좋다고 말해주고, 엄마를 도와 청소도 해 주는 뎅. 다윤이 삐졌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순간 나는 엎질러진 말들을 다시 주어 담느라 머릿속의 문자들을 모아 퍼즐을 맞춘답시고 갑자기 바빠졌다.
“아니야, 네가 잘못들은 거 맞아. 네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엄마편이 없는 거지. 엄마편이 없으면, 나는 항상 외롭고, 힘들고, 사는 게 재미가 없단다. 고마워.”
“뭐가?”
“항상 엄마편이 되어주어서.”
“당연하지. 다윤이는 언제나 엄마편이고 나중에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내가 키워줄게.”
그랬다. 내게는 항상 한편이 되어주는 아이가 있어서 행복했고, 언제나 든든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음으로 하여 삶이 더 한층 밝고 충만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달고 살던 터라, 힘들 때마다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너희들이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거야. 엄마가 없으면, 그 동안 내가 너희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고 에너지를 빼앗겼는지 느끼게 될 거야.”
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딸의 충격적인 한마디가, 무지한 내가 함부로 내뱉는 말의 심각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뭐라고 했냐면,
“엄마, 그러면 다윤이가 없어져 줄까?”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엄마,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마. 그리고 입장 바꿔 생각해봐. 다윤이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만약 내가 없어지면 엄마도 후회하잖아.”
“...............................” 한참의 침묵 끝에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제부터 아무리 화가 나고 힘들어도 그런 말은 다시 하지 않을게. 미안해.”
“응, 엄마.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자기 잘못을 제때에 인정하고 고치는 사람이 제일 착하다고 했어.”
“네~.”
항상 머리로는 절대 안 된다고 이해하면서, 가끔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함부로 상처를 줄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거울이 되어야 할 부모가, 고단한 삶을 바쁘게 산답시고, 얼룩진 생각으로 조그마한 마음에 사랑대신, 아픔을 얹어 줄 때가 많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처럼, 순수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삶을 되 물림 받고 복제 하면서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독서와의 만남으로 내 몸의 독소를 가셔내면서 나를 조금씩 변화하고 바꿔나갔다. 그러면서 ‘고마워, 미안해, 잘못했어. 감사해, 힘내.’ 라는 작은 한마디의 말을 자주하면서 아이들과 더욱 가깝게 소통하기도 하였다. 이 한마디의 말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안겨주었고, 일상에 치우치며 힘들거나 필요한 누군가에겐 따뜻한 위로의 말이 되어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도 갖게 해주었다. 때로는 화려한 선물보다 이 작은 한마디의 소중한 말이, 삶에 큰 힘이 되어주고 울림을 주는 아름다운 언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혀가 칼보다 더 예리한 것처럼, 내가 함부로 내 뱉은 언어가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가 되어 곪기 시작하면, 삶의 가시가 된다. 그전에 우리는 마음안의 조그마한 심장에 묻어 있는 삶의 찌꺼기들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씻어내고, 바깥에 털어놓고, 상담이란 햇빛을 쪼이면서 마음의 공기를 자주 환기시켜주는 게 삶의 현명한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나와 내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