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아침은 거의 매일 어머니, 아버지의 싸우는 소리에 눈을 뜨며 어쩔 수 없는 하루를 시작하였다. 두 사람의 다툼이 심할 때에는 커다란 가마 솥뚜껑이 두 동강이 나고 깨진 그릇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살림살이라고 온전한 것 하나 없는 초가집에 살면서 어른들의 잦은 다툼이 나의 어리고 조그마한 마음에 무거운 그늘을 덮어놓았다.
시골에서도 제일로 가난한 농민으로 살다보니 4살 난 나는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나면 어른 진통제를 먹어야만 했다. 혹시라도 치아가 너무 아파 한쪽 볼이 부어오르면 엄마는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퉁퉁 부어올라온 얼굴에 바르고 그 위에 비닐을 씌우고 끈으로 주위를 동였다. 치통이 자주 덮치는 탓에 초롱초롱한 두 눈에선 눈물방울이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치통이 빨리 가라앉길 바라면서 간절히 잠을 청했다. 한잠자고 일어나면 아픔이 어서 빨리 없어지길, 그리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면서... 깊은 잠속으로 서서히 미끄러져갔다.
목과 발목에 누룽지처럼 까맣게 들어앉은 묵은 때는 씻은 지 언제쯤이었는지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게 만들었다. 코를 질질 흘리며 닦아온 양쪽 옷소매는 반질반질 윤기 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가끔은 잠자리를 잡아서 몸통을 떼 내어 성냥불에 구워먹기도 하고 운이 좋을 때면 강 옆 풀숲에서 발견한 오리 알들을 치마폭에 담아 엄마들의 흉내를 본 따기도 하였다. 그리고 오리 알을 돌멩이에 대고 하나씩 탁탁 깨트려가면서 흙에 반죽을 만드는 소꿉놀이도 신나게 하였다. 어둠이 마을에 내려앉기 시작하면 동네엄마들은 자신이 품어 낳아 키운 씨앗들의 이름을 불러 각자 자기보금자리에 불러들였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집집마다 켜져 있는 전등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창문을 통해 환하게 뿜어져 나왔다. 어둠속을 뚫고 나오는 불빛이 창문사이로 비춰지면서 여러 가족이 오붓하게 모여앉아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집집마다에서 들려오는 행복한 웃음소리와 함께 수저가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가 뒤엉키면서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의 냄새를 사방에 퍼뜨렸다. 그때마다 어둠 속에 홀로 남은 나는 부러운 시선을 뒤로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사는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전등이 꺼져있는 스산하고 텅 빈 초가집이 어둠의 적막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을 턱에 고이고 부뚜막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어둠이 대지를 완전히 삼키지 않길 바라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이며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언제나 늘 항상 그래왔듯이. 어둠이 짙어질수록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사방에 더욱 세차게 울려 퍼졌고 스산한 초가집에 열려있는 너덜너덜한 문짝은 어둠을 삼킬 듯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때 저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들릴 듯 말듯 한 익숙한 목소리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보았다. 기분이 들뜬 나는 다가오는 희망과 기쁨을 끌어안은 채 온 힘을 다해 어둠속을 파헤치며 뛰어갔다. 그리나 그 기쁨은 잠시.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집에 들어서면서 또 다시 싸웠다. 비교적 작은 체구인 엄마는 순수한 외모에 밝은 성격을 갖추었고 처녀시절 때 대학을 졸업하고 잘 나가는 어느 병원의 간호사로 일했다고 하였다. 적어도 이 가난한 시골 청년한테 시집을 오기 전까지는.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의 모습은 밝고 건강했으며 옷차림도 단정했지만 별 볼 일없는 농촌으로 시집을 와서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한다. 힘들고 지친 농사일에 그녀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마저 무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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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는 항상 낡은 운동화에 펄럭이는 몸 베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편안한 복장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오늘 엄마는 몹시 화가 난 얼굴로 마음이 불안정하였고 온 몸의 세포들이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쏟아 부을수록 가라앉지 않은 화풀이로 저녁밥을 지었다. 그러는 동안 온갖 그릇들이 짜증스러운 그녀의 손에 맡겨지면서 두려움에 떨었고 서로 딸그락거리며 부딪치는 소리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집안 공기는 숨쉬기 힘들 정도로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짓눌러 놓았다.
한편으로 잘 다듬어 지지 않은 콧수염이 달린 남자는 얼룩진 흰 와이셔츠에 편안한 바지와 안전화를 신은 아빠였다. 그는 잘생긴 얼굴을 한 키 큰 청년이었다. 시골에서도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은 아빠는 가끔씩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잘생긴 외모 하나를 보고 자신의 평생을 가난한 시골에 바친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힘들고 지친 농사일 때문에 억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몇 번이고 이곳을, 가난한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매번 그녀는 조그마한 나를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참고 견뎠다고 반복해 말했다.
도박은 질색이지만 술과 여자와 책을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아버지는 종종 엄마와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는 삶은 살았다. 다른 때 같으면 아버지는 언성을 높이고, 그릇을 부수고 화를 맞받아가면서 한바탕 크게 싸웠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소리를 질렀다가 몸을 잠시 움츠리더니 꼼짝을 하지 않았고 무슨 잘못이라도 크게 저질러서 스스로 반성하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그는 고집스러운 여자의 높은 언성에 주눅이 들면서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부뚜막의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상황을 조심스레 살펴가면서 한편으로 불쏘시개에 불을 지피고 저녁밥을 도와주는 눈치였다.
다툼이 멈출 때까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커튼을 친 것처럼 아름답고 환한 밤하늘의 별들을 세여 보았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4살이 넘은 나의 셈 세기는 거기까지였다. 한참을 열심히 세고 있는데 집안으로부터 어머니의 반가운 부름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