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마음안의 물 펌프가 온 몸의 수분을 끌어당겨 감정의 마중물과 마구 펌프질을 해댔다. 감동으로 왈칵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끝내 참지 못하고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우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지금 나와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토록 그립고 보고 싶었던 고등학교시절 매일과 같이 함께한 단짝친구 연화였다.
연화는 준비해온 모두부를 내 입가에 갖다 댔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과 함께 눈물과 억울함을 삼키면서 흰 두부를 한입, 두입 크게 떼어먹었다. 울면서 먹고 울면서 삼켰다.
몸에 거친 옷가지들은 때에 찌들어 진채 꼬질꼬질해졌고 머리는 질서 없이 제멋대로 흐트러졌다. 찢겨진 운동화엔 어느새 작은 애벌레와 거미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자 태양이 환하게 비추어주면서 아름다운 대지 속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있는 초라하고 망가진 모습의 나를 더욱더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주는 것 같았다.
연화는 그런 내 손을 덥석 잡고 목욕탕을 향했다. 여탕에 들어서자마자 연화는 그 동안 내가 입고 있었던 옷가지들을 전부 갖다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이 상황이 어리둥절해진 나는 그저 멍하니 서서 구경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라서 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갈 때 홀라당 벗고 갈까?”
“ㅋㅋㅋ 그러면 삽시간에 교통이 혼잡해진다니까. TV 봤지? 지나가다가 남자가 여자한테 반해 전봇대에 부딪치거나, 지나가는 앞차와 차들끼리 뽀뽀를 한다거나, 길 가던 아저씨가 안경을 내리면서 침을 흘린다거나, 앞을 보지 않아 돌에 걸려 넘어진다거나, 물에 빠지기도 하는 걸.”
우리는 되지도 않는 상상을 해가면서 깔깔깔 웃어댔다.
연화는 옷에 남아 있는 안 좋은 기운과 재수 없는 기억들을 머릿속에서 싹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라고 응원해주었다. 기억 속에 고무지우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연화의 말처럼, 그 동안 모든 기억이 나지 않도록 영영 사라지고 잃어버려졌으면 좋겠다. 다시는 재생 하는 일이 없도록.
나는 그 동안 쌓아왔던 불행과 절망과 근심과 걱정을 물과 함께 깨끗이 오래오래 씻어버리고 흘러버렸다. 그렇게 모든 괴로움과 묵은 때를 깨끗이 씻은 뒤 거울 안에 비춰진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 영혼이 어째서인지 주인을 잘못 만난 육체를 들여다보고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해하는 것 같았다.
그 동안 무거운 마음을 가벼운 육체에 싣고 다니면서 이리 끌고 저리 휘청거리며 다녔던 흔적들이 상처로 남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보이는 상처자리에는 밴드를 붙였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자리에 여기저기 곪아 있었지만 연화의 따뜻한 관심과 두터운 우정이란 파스를 붙여주니 그 자리가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길 간절히 바랐다.
연화는 상처들로 가득한 내 몸과 마음을 살피면서 선물이라며 미리 사놓은 옷과 신발을 내밀었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컸는지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 지를 고민하다가 자신보다 조금 작은 치수를 구입을 하였다고 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어떻게 고마워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 순간이 포근하고 행복했고, 위로와 감동이 주위의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고 모든 것이 필요 할 때, 내 앞에 천사처럼 나타나서 구원해주는 친구가 나타날 때, 진심으로 담긴 마음과 우정이 변치 않을 때 이런 감정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순간 두 눈에서 주체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 동안 메말랐던 감정도, 결핍했던 사랑도, 찌들었던 영혼의 묵은 때도 사랑이란 파도위에 철렁이며, 이 모든 것들이 눈물로 변해 깨끗이 씻어 내려는 듯, 가라앉았던 감정들이 촉촉해 지면서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어느새 연화의 눈시울도 붉어지더니 우리는 그렇게 소리 없이 울었다.
목욕탕을 나오자 어둠이 도처에 슬슬 기어들기 시작하였다. 교도소에서부터 이미 빈털터리가 된 나는 몸에 동전 한 푼 없었다. 아까 교도소에서 나오기 전 몸에 지닌 돈을 탈북자들에게 전부다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탈북자 한명은 출산한지 얼마 안 되는 몸으로 영양이 필요했다. 어쩌다 붙잡혔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낳은 아기를 가슴 아프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야 돈은 또 벌면 되지만 핏줄을 떼어놓고 갇힌 그 심정은 누구도 대신 아파해줄 수 가 없었다.
연화는 오늘 내 언니에게 허락을 구했으니 자신이 사는 집에서 밥 먹고 자고 내일 가도 된다고 했다. 다시 태어났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새 사람이 된 나는 연화와 오랜만에 팔짱을 끼고 밤길을 천천히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산들거리며 날아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저 하늘의 아름다운 별빛도 깜빡거리며 인사를 건네 왔다. 큰 길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이따금씩 우리를 비추었다. 길옆의 잡초들의 싱그러운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자연의 향기를 뿜어주었다.
연화는 집에 있는 맛있는 음식을 한상가득 차려놓았다. 풍성한 식탁을 보면서 교도소안의 한 끼 식사를 떠올렸다. 돌처럼 딱딱한 한줌 되는 밥에 한 쪼가리의 미역이 둥둥 떠다니는 스산한 국물이 전부였다. 이처럼 두 세계에서 공존하는 음식을 먹어보면서 누구나 이 세상이던 저 세상이던 죄를 짓고는 절대로 살수 없음을 한층 깨달았다. 그 동안 잊고 지내오며 살았던 소소한 모든 것들이 행복이고 사랑이고 자유이고 아름다운 인생임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이다.
오랜만에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이불 속에 우리는 애벌레처럼 착 들어붙어 편안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창문너머로 반짝이는 별들을 눈에 담았다. 부드러운 살결에 닿는 폭신폭신한 이불이 몸을 포근하게 해주자 마치 달나라에 사는 토끼가 예쁜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우리는 잠시만이라고 그렇게 상상의 나라에 빠져들었다.
만나서부터 우리는 할 말이 어찌나 많은지 이제야 서로가 그 동안 지내온 상황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연화는 그 동안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수진아, 사실은 네가 차사고 나던 날, 만약에 내가 ‘멈춰’하고 소리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네가 달리던 길을 계속 앞으로 나아갔더라면, 어쩌면 그날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땐 어둠이 짙은 밤인데다가 멀리서부터 너를 향해 달려오는 자동차가 보이자 순간 깜짝 놀라 다급히 소리쳤어. 정말, 미안하다.”
몇 년이 지난 오늘 처음 듣는 얘기지만 그날 일은 내 머리와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날 어떤 차에 부딪치는 지도 몰랐고 기억 속의 필름엔 그 장면이 담겨있지 않았다. 기억장치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생각은 눈을 떠보니 한 잠을 푹 자고 일어난 느낌이었다. 연화는 어쨌든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앞뒤를 살피지 않고 허둥지둥 큰길을 향해 달린 내 잘못이야. 어릴 때부터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자라다보니 나쁜 기운만 끌어 모아서 운이 조금 나빴던 것뿐이야. 그 운을 바꾸려면 내 마음가짐과 생각부터 바꿔야 해. 그러면 행운도 같이 따라온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제부터 머리에 좋은 기운들만 끌어당기는 안테나를 설치해서 두 팔을 쭉 벌려 우주의 모든 행운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지.
이런 말이 있잖아.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그 동안 뭘 해도 나는 뒤로 자빠지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뒤로 수없이 넘어지고 코가 깨졌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2배속........
아무튼 많은 일이 생기고 나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정리해보았다.
인생이 자뻑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처럼 나는 그것이 좀 과했다.
그래서 자빠를 많이 했다.
이루고 싶은 소원을 그려나가는 것은 생각의 차이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것은 행동의 차이다.
꽃은 계절을 앞당겨 피지 않고
새싹은 봄을 앞당겨 나지 않는다.
땅속에서 있는 씨앗도 때가 되여야 세상밖에 고개를 내민다.
모든 것에는 때가 존재한다.
성공이라는 결말에 연연하기보다 성공을 위해 달리는 과정과 태도가 중요한 것처럼.
아름다운 내일을 꿈꾸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듯이.
꾸준한 기도보다 꾸준한 노력으로 온 열정을 다 하는 게 최선인 것처럼.”
연화는 “오~~.”하면서 감탄을 했다. ‘어딘가 갔다 오더니 깨달음이 절실했던 모양이다.’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리고 하던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어느 날, 화단에 있는 쓰레기들을 줍고 청소를 끝마치면서 교실에 들어가려는데 등록금 독촉을 받고 있는 나를 보면서 죄책감이 밀려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거기에다 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더 안 좋아지자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을 하였다고 하였다.
연화의 아버지는 병마와 싸우시다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찢어질듯이 아팠다. 나도 이렇게 슬픈데 연화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고통과 아픔을 서로 보듬어주고 다독여주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다.
연화는 다니던 회사의 동료와 행복한 사랑에 빠졌고 오빠는 다니던 대학을 끝까지 마치고 새로 취직하여 안정된 생활을 찾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안정 되자 수소문하여 나를 찾기로 하였다고 했다.
연화는 학교 때 내가 자신의 입학금을 대신 내어준 나의 대단함과 용기에 감동하여 울컥하였고 이 은혜를 꼭 갚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수소문하던 중에 나에게 언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언니한테 찾아갔다고 했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나의 안 좋은 소식에 많이 놀랐고 마음이 아팠다고 하였다.
“연화야, 고마워. 은혜라는 말이 나한테는 과분한 언어야. 이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부족한 나한테는 행운이고 기적이야. 은혜라고 한다면 너는 오늘 나한테 넘쳐날 정도로 과분한 행복과 관심과 우정과 사랑으로 충분히 갚았어.”
우리는 이 소중한 우정을 영원히 함께 하기로 꼭꼭 약속했다.
이튿날 아침, 교도소 앞에 기적처럼 나타나 포근함과 따뜻한 감동을 선물해준 유일하고 소중한 친구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마움을 남기고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