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아우성치며 계단 쪽으로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비좁은 계단으로 너도나도 밀치면서 붐비는 탓에 서로 마구 짓밟히고 넘어지면서 백화점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저 멀리서부터 허겁지겁 달려오는 덩치 큰 남자의 손엔 시뻘겋게 피로 물든 날카로운 긴 칼이 손끝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묻지 마, 살인이다.
이때 화장실 쪽에서 너무 놀라 겁에 질린 20대여성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저 멀리서부터 허둥지둥 뛰쳐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칼을 든 남자는 입술에 독을 물고 눈을 번뜩이며 흰자위를 드러내더니 다시 달려가서 그녀의 배의 정중앙과 옆구리를 힘껏 찌르고 처참하게 또 찔렀다.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며 광기를 부렸다. 순간 여자의 피는 소름끼치는 비명과 함께 하늘을 솟구치며 도처에 뿜어져 나왔다.
현실 속의 공포에 찔린 사람들은 살벌한 공기를 뚫고 미친 듯이 도망가려고 발버둥질 쳤다. 그 순간, 나와 함께 있던 문방구가게의 나이 많은 사장님은 후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면서 경찰에게 신고버튼을 누르고 있었고 가게 안의 나이 어린 직원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끔찍한 장면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바지에 오줌을 질질 갈겼다. 매 1분1초가 긴급한 순간이다. 가게 사장님은 놀란 직원의 입을 틀어막고 매장 뒤에 있는 탁자 밑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몸을 숨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 정신을 못 차린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선 채로 멍하니 다음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빨리 움직여 이곳을 탈출해야 정상인데 악마의 주술이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얼음으로 꽁꽁 굳어져 버린 육체와 정신은 전혀 움직여지질 않았다.
칼을 든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향해 돌아서려는 찰나,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큰 그림자가 내 손을 덥석 잡고 정신없이 달렸다. 재빨리 우회전하고 또 좌회전하여 옷 무더기 위에 있는 조그마한 탈의실에 몸을 숨겼다. 긴장한 공기를 마시며 숨을 죽이고 있는 동안 심장이 너무 갑갑하여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캄캄하고 비좁은 공간에 서로 맞대어 있는 동안 우리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조금씩 떨리는 낯모를 그의 숨소리도 긴장과 함께 얕게 들려왔다.
칼을 든 남자는 어느 새,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쫓아왔다. 문틈으로 보이는 흉악범의 얼굴과 옷가지들에는 튕겨진 핏자국들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여기저기 얼룩져있었다. 헉헉거리며 내 쉬는 숨소리에서는 살을 도려내는 듯 한 살기가 퍼져 나와 온 몸을 마구 찔러놓듯이 소름 돋았다. 숨 막히는 공포에 휩쓸려 더는 참을 수가 없게 된 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칼을 든 남자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가지들을 칼로 마구 헤집어 놓다가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 우리가 숨어있는 옷장을 향해 돌아서더니 조금씩 가까이에 다가왔다. 내 몸 안의 세포들이 어쩔 바를 몰라 미쳐 날 뛰듯이 피부 속을 꿰뚫고 나와 비명을 질러댔다. 더 이상 참을 수가, 견딜 수가 없는 나는 두 손을 귀에 갖다 대고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조용하던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엎친 데 덮친데 격으로 갈피를 잡지 못한 팔다리가 허공을 허덕이다가 위에 걸려있던 옷걸이와 부딪쳐 “탁~”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린 우리는 순간도, 시간도, 심장도, 호흡도 정지되고 멈춰져 있는 것 같았다. 식은땀도 공포 속에서 벗어나려고 온 몸을 비집고 나왔다. 칼을 든 남자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기웃거리더니 그렇게 땅에서 한 발 두 발의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우리가 있는 쪽으로 향해 걸음을 옮겨왔다. 그리고 그때, 옷장의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으려는 순간, 저 멀리 바깥에서부터 들려오는 경찰 사이렌소리가 온 백화점을 향해 삼켜오듯이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흉악범은 몸을 멈칫하였다. 시퍼런 분노로 씩씩거리는 두 눈에서는 폭발할 것 같은 핏줄이 이글거리더니 방향을 틀어 계단 쪽을 향해 다시 뛰어갔다.
범인이 뛰어가는 소리가 저만치 멀어져가자 나를 구해준 남자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 쉬더니 안쪽으로 잠그었던 탈의실문을 살며시 열면서 바깥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커다란 눈빛을 보여주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암시를 해주었다.
불그스레하고 아물거리는 불빛들은 참혹한 현장을 애도하는 듯 슬프게 비춰주었다. 그는 또다시 내 손목을 꼭 잡고 범인과 반대방향인 비상계단을 향해 뛰었다.
그런데 이때, 저 멀리 아래층으로부터 또 다른 한명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조용해진 백화점 안의 공기를 뚫고 아프게 울려 퍼졌다. 우리는 달리던 속도를 멈추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잡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는 길게 마시고 내뱉는 심호흡과 함께 또 다시 뛰었다. 한 순간이라도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미끄러지듯이 계단을 너무 빨리 달려 내려오는 탓에 넘어지고 엎질러지고 벽에 부딪치기도 하였다. 그는 있는 힘껏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벗겨진 내 신발을 다른 한 손에 쥐고 손을 덥석 잡더니 또 다시 달렸다.
간신히 바깥으로 빠져나온 우리는 그렇게 멍하니 서로를 향해 마주보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밖에는 시민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경찰은 칼을 든 남자를 체포하려고 시민들의 근처에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고 총을 들고 대문을 포위하고 있었다.
내 앞에 나타난 기적 같은 남자를, 구사일생으로 내 목숨을 구해준 이 낯선 사람에게,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나는 그렇게 흐트러짐 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잘생긴 외모에 짙은 눈썹과 오뚝한 코는 그를 더욱 독특하게 드러내 주었다. 순간 우리는 어색한 눈빛으로 쑥스럽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마주보며 웃었다.
그런데 이때, 그의 등 뒤로부터 피로 물든 기다란 칼날이 머리를 향해 위로 번뜩였다.
“안 돼!” 나는 양손으로 그의 옷깃을 꽉 잡고 내 쪽으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 힘에 우리는 부둥켜안은 채 저 멀리 뒹굴어 떨어져 나갔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뒤 범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뒤에 나타났던 정체는 바로 아까 온 몸이 핏자국으로 뒤덮었던 칼을 든 흉악범이었다.
범인은 우리 쪽을 향해 찌르려고 했던, 높이 쳐든 칼과 양쪽 팔이 이미 정지되고 마비된 사람처럼 꼼짝 않고 서있었다. 왜냐하면, 그 뒤에는 경찰이 범인의 태양열 정중앙에 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일순간 얼어붙은 몸을 떨리는 손으로 툭툭 털어내면서 재빨리 일어났다.
범인이 체포되자 그제야 안심한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귀한 자식이나, 한 집안의 가장이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새 신부를 잃은 유가족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분노한 시민들이 범인을 향해 다닥다닥 몰려와 난투극을 벌이는 탓에 우리는 인산인해가 된 사람들 속에 파묻혀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가고 헤어지면서 저만치 떨어져 나갔다. 감사하다는 인사도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서로를 놓치고 말았다.
경찰들은 난장판이 된 현장을 보호하려고 시민들을 막고 현장을 봉쇄하고 수습에 나섰다. 이 모든 것이 길고도 짧은 몇 분 안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이 사고로 사상자가 12명이나 넘게 나왔다. 상처가 깊은 사람들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에 안타깝게 숨을 거두었다.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온 시민을 불안에 빠트린 이번 사건은 이성을 잃은 분노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진 한 청년의 짧고 어리석은 생각의 결과가 낳은 참사였다.
이처럼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분노조절이 안 되는 상황이 여러 명의 신성한 생명을 빼앗아가고 한 가족의 행복을 빼앗아가고 한 학생의 꿈과 미래를 빼앗아가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남겨놓았다.
한 사회를 충격으로 빠트린 이번 사건을 통해 지구위의 안전하고 평안한 곳이란 어디에 존재하는지, 어떤 곳에 있기나 한 건지, 나는 알고 싶었고 찾고 싶었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하여. 그 날 이후, 불안한 생각과 죽음의 그림자들이 여기저기에서 기웃거렸다. 연 며칠 악몽에 시달리던 나는 꿈과 같은 현실, 현실과 같은 꿈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