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자 도둑 10

by 도라지

구한결이 먼저 내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말을 꺼냈다.


"이기자님, 내가 뉴욕에 가 있는 동안, 프리테오스 아트센터에서 성은희 작가 전시 오픈이 있었다던데~ 무슨 일이 또 있었나 봐요~"


구교수는 연배가 어린 사람들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교묘히 섞어가며, 본인의 친근함과 우월함을 과시하는 화법을 구사하곤 한다. 학교에선 나이 어린 학생들과 조교에게뿐만 아니라, 나이가 아래인 동료 교수들이나 작가들에게도 반반 화법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구교수에겐 특별히 적도 없고, 내게 있는 정일우나 권현같은 우정 또한 없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그때그때 목적에 따라 표정과 동작뿐만 아니라 언어까지 능수능란하게 조작이 가능하다.


"작가님들한테 무슨 말씀이라도 들으셨어요?"


나는 전지수 작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권현은 지나간 일이나 남의 일에 대해서 구교수와 말을 섞을 사람이 아니었다.


"전작가가 그러더라고~ 성은희 작가가 모자를 잃어버려서 한바탕 소동이 났었다고 말이에요~"


소동은 무슨~ 그냥 잠깐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다. 조우진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당신 구교수처럼 말이다.


"소동까진 아니었고요, 지난번에 구스토 개관 행사 때랑 비슷했어요. 성작가님이 그날도 프리테오스에서 와인을 좀 많이 드셨나 봐요."


"이기자는 궁금하지 않아요? 모자를 누가 훔쳐가는 건지, 아니면 술 먹고 벗어놨다가 잃어버리는 건지~"


"관장님, 구스토 오픈 행사 다음에 미술관에서 모자 발견된 건 없었나요?"


"없었어~ 이기자도 알다시피 나도 한 호기심 하잖아요. 다음날 내가 주차장까지 샅샅이 뒤졌잖아?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프리테오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거에 대해서, 이기자는 어떻게 생각해요?"


구관장도 이 사건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의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눈에 불을 켜고 모자를 찾았을 구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그는 화이트색 바지에 베이지색 중절모를 쓰고 있다. 그의 패션감각은 미술계에선 그림만큼이나 유명했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스스로도 패션 디자이너가 됐을 거라고 말할 정도다.


"관장님은 성작가님에 대한 정보를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학회나 매거진에 특별하게 소개된 적도 없는 거 같던데요."


구한결의 눈빛이 나를 만만치 않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성은희 작가 남편이 정부 고위 공무원이에요. 부군이 성작가 위해서 애를 많이 쓰고 있어요. 성작가 작품 소재도 신선하고..."


고위 공무원이라는 성은희의 남편이 구스토 개관에도 모종의 힘을 실어준 게 분명하다. 성은희의 남편은 프리테오스 조우진과도 매우 친분이 있다고도 했었다. 구스토 개관 기념 전시 첫 날, 성은희의 작품을 보며 의아스러웠던 나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새로운 소재의 조형물이라 해서, 작품성이 좋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 소재의 특성 때문에 작품 아이디어에 한계가 있는 걸로 보였어요. 소재에 아이디어를 맞추고 있는 건, 작가에겐 커다란 데미지가 아닐까 싶어요."


아이디어란 말 그대로 현실 세계의 모든 불가능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것이어야 한다. 기존의 질서가 질서가 맞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 아이디어다. 인간 조건을 규정짓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에 대한 저항을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


성은희의 작품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마추어 수준이다. 작가는 사물을 그의 아이디어와 철학을 구현하는 하나의 세계로서 다루어야 한다. 트렌드에 부합하는 소재를 우선 정해놓고,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억지로 생성해내려는 시도는 그저 유명해지려는 탐욕일 뿐이다.


구관장이 나를 예리하게 바라보며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구한결도, 기하학적 패턴 하나로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미술계에서 버티고 있는 기존 세력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은 지, 이십년이 넘었다는 소리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환희 대신에, 교수라는 직함과 관장이라는 직함을 얻어냈다.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걸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 이 지역 안에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는 걸 반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한쪽 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영영 다른 한쪽 문을 열어보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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