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진이 물었다.
"이기자님은 애인 없지요?"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조우진의 나를 향한 야릇한 시선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있다고 해야 하나, 사실대로 없다고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몇 달 전, 지역 문화축제 예술 총감독과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조우진은 아리송한 말을 흘린 적이 있었다. 이기자님은 결혼하고 싶은 상대이기보다, 몰래 숨겨놓은 애인이면 더 좋겠다고 했었다.
"없어요."
정공법이다. 전술상 피해 가는 것보다 이 편이 나을 거 같았다.
"만약에 내가 기혼남이 아니었다면, 이기자님이 나를 남자로 만났을까요?"
그가 소주잔을 들던 손을 잠시 멈추고,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오."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는 듯이,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 왜요?"
"정치적 성향이 달라서요."
"정말 그게 이유예요?"
"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최종 목적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조우진은 보수 쪽이다. 그는 더 갖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고, 지금 가지고 있는 걸 지키고 싶은 사람이다. 그의 주변인들은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나는 조우진의 주변인들을 싫어하게 될 거다. 나는 그와 마찰이 생길 거고, 끝내 서로의 길이 다름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민현기와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정치적 성향이란 그가 세계를 바라보고 구성하는 시선이다. 그는 오른쪽을 바라보는데 나는 왼쪽을 바라보았다. 민현기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둘이었다. 그는 스물아홉이었다. 삼 년을 만나다가 헤어질 때, 우리는 오히려 편안하고 평화로웠다. 전투적일 필요도 촌스러울 필요도 없었다. 내가 지금 기억하는 건, 그가 내 몸 위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뿐이다. 그의 냄새도, 그의 웃는 모습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는 것은 단순히 몸의 합일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몸과 몸의 만남은 신체적 동기일 뿐이다. 그 위에 눈과 눈의 만남이 있었다. 거기에서 신화적 동기가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민현기를 통해 알았다. 다른 영장류에게서 교미는 후위로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상태로 관계한다. 두 개의 몸이 하나가 되어 있을 때, 교감하는 눈빛을 통하여 서로의 영혼이 사로잡히게 된다.
에드가 모랭은 그의 책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특징짓는 결정적인 요소는 성교의 강렬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강렬함은 눈빛에서 완성된다. 나는 어쩌면 민현기의 눈빛을 잊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강렬함을 잊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성은희는 그런 신비한 눈빛을 경험한 적이 있을까? 내 머릿속에서 문득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조우진이 지나가듯이 다시 말했다.
"그러면 내가 당을 바꾸면 되겠네요~"
입가에 미소도 없이 밥을 먹으며 무심코 흘리듯 내뱉은 그의 말이, 갑자기 내 심장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조우진의 아내는 국제선 스튜어디스였다. 나는 숨어서 하는 뒷거래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 내 심장에 남겨진 조우진의 발자국을 얼른 지워내야 한다. 이런 상황일수록 침착해야 하는데,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진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서며, 이사회 발언권이라도 낚아채듯이 서둘러 내가 말했다.
"저는 택시 타고 집에 갈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에게 뒤통수를 보이며, 나는 저만치 택시가 다니는 길가로 뛰어갔다. 우스워보여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