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로 가득했다. 현진네 일행들은 다들 숙취와 피곤이 조금씩은 있어 보인다. 우르르 줄지어 사람들이 배에 올라탔다. 다들 말이 없었다.
남이섬을 여전히 현진과 재영은 저만치 둘이 걷는다. 나머지 여자 셋과 동우가 뒤에서 서두르지 않고 걸었다. 지은은 동우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연과 수민 앞에서 동우와 대화를 길게 나누어봤자 건질 게 없다. 연애는 타이밍이다. 대전에 돌아가서 내일 당장 학원 세무일로 동우와 통화를 할 생각이다.
소연도 펜션에 두고 온 태환과 화요일에 만나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와 계획만 가득하다. 수민이 제일 말이 많았다. 주로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이야기였다.
현진은 재영과 밤에 걸었던 숲 속 산책길보다, 관광객 인파 속에서 재영과 나란히 웃으며 걷는 게 더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첫사랑은 몸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몸속 전체에 DNA로 새겨진 세포다. 재영과 손을 잡고 있지 않아도, 으슥한 곳에서 키스를 하지 않아도 충족되는 행복에 대한 기억이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의 기억은 몸으로 나눈 파트너에 대한 기억들보다 더 오래간다. 첫사랑의 기억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고 묻는다면, 재영은 '영원히'라고 대답할 것이다. 재영에게 첫사랑은 마지막 심연에서 떠오르는 언어이다.
지은은 이틀 동안 동우의 마음 안에 유지은 이름 석자를 새겨 놓느라 온 몸이 피곤하다. 계산적인 동우가 여자들의 움직임과 패턴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은은 동우의 생각의 패턴을 먼저 알고 움직였다. 귤 조각을 건네며, 아무도 모르게 지은의 손가락 끝이 동우의 입술 속으로 왕래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성과였다고 지은은 생각한다. 화학 공식보다도 더 깐깐한 동우의 세계 속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데 성공한 셈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충분했다.
동우는 어젯밤 진실게임에서 키스하고 싶은 상대 이름에 현진이 떠올랐던 것을 생각해본다. 대학 1학년 때 재영과 막걸리를 먹는 자리에서 현진을 처음 보았다. 그때 재영은 아직은 자기만 혼자 좋아하고 있는 여학생이 나올 거라고 했었다.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걸친 현진이 마르고 기다랗고 활기찬 모습으로 막걸리를 함께 마셨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현진의 목선이 건강해 보였다. 재영이 멋있는 여자애를 만났구나, 동우는 속으로 재영이 부러웠다.
동우와 교제 중인 한선영은 키도 체격도 보통이다. 선영과의 잠자리는 그저 그렇다. 그래도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안전하다. 다른 남자들을 만나는 여자도 겪어봤다. 동우는 자기는 다른 여자들을 만날지라도, 선영이 동우 외에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싫었다. 질투 때문보다는 동우 자신의 몸에 대한 지극한 염려와 애정 때문이었다.
남이섬에서 여섯 명이 함께 점심을 먹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어제 가평에 올 때처럼, 동우가 운전하는 차의 옆 좌석에 현진이 앉는다. 소연과 지은과 수민이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여자들을 태운 동우의 차를 재영이 배웅했다. 그리고 곧이어 재영도 서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