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How long? 7

밤안개와 핑계

by 도라지

지은의 옆에서 수민이 가늘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지은은 수민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동우가 자고 있는 방을 응시하던 지은이 밖을 확인한다. 저만치 불빛이 있는 곳에 건장한 사내가 서있다. 그 앞에 혹은 가까이 소연이 있을 것을 지은은 알고 있다. 동우가 자고 있는 방의 문을 조용히 열어본다. 열리는 문소리에도 누워있는 동우는 반응이 없다. 깊이 잠이 들었나 보다. 세밀하게 스캔하듯이 동우의 자는 얼굴로부터 몸을 훑어 아래로 내려온다.


지은은 동우의 남성도 궁금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날렵한 몸매다. 은행원인 지은의 남편은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은의 남편은 성욕보다 식탐이 더 많았다. 밤일도 짧고 횟수도 줄었다. 동우가 여자를 좋아할 것을 지은은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이제 곧 너의 옆에 내가 누워있게 될 것이라고, 지은은 주문을 걸어본다.


숲 속에 별빛을 살라먹을 만큼 밤안개가 자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펜션 앞을 밝히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 재영과 현진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지은은 수은등의 오렌지빛을 좋아했다. 요즘은 거리에 수은등이 사라진 지 오래다. 여기에서 수은등을 보게 될 줄은 뜻밖이었다. 은밀한 환상이 현실로 탄생될 것을 예감하는 불빛이었다.


"이렇게 일찍 돌아오면 너무 시시한 거 아니니?"


소연이 현진과 재영을 향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온 지은이 혼자서 조용히 밤안개가 자욱해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 밤 안으로 동우를 어찌해 볼 계획 같은 건 아예 없었다. 동우가 편안히 잠들고 내일 아침 깨어날 것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은에겐 목적을 달성하기에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부지런히 달려가도 목적지에 도달하기에 빠듯한 시간이다. 하지만 지은은 이십 년을 기다렸다. 드디어 지은이 원하던 목표물이 나타났다. 서두른다고 일이 성사되는 건 아니다.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늘이 도와서 운때가 맞아야 성사될 일은 성사가 된다. 나머진 나락이다.


지은은 기필코 하늘의 운을 불러 모을 참이었다. 소연과 태환의 본능적인 성교나, 재영과 현진의 부질없는 첫사랑의 기억 같은 건 지은에겐 유치한 아이들 짓일 뿐이다. 지은의 운명을 도전 같은 것과는 다르다고 치부해본다. 지은은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잠도 오지 않는 긴 밤을 지은은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동우의 옆에 재영이 자고 있었다. 태환은 일어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동우가 목이 말라 주방으로 간다. 지은이 벌써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 이후로 아침에 주방에서 동우를 향해 미소 짓는 여성의 모습은 처음이다. 괜히 마음이 푸근해진다. 동우도 세무사가 되기 전, 오래 사귄 여자 친구도 있었다. 그때는 이삼십 대 때였다. 같이 잠을 잤어도, 먼저 일어나서 동우를 위해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 준 여자는 없다. 간단하게 커피랑 토스트를 먹었던 적은 있다.


모두들 늦은 아침 식사를 여유롭게 마쳤다. 서둘러 짐 정리를 하고 태환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재영의 차에 현진이 타고, 나머지 여자 셋은 동우의 차에 올라탔다. 이번엔 지은이 동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지은은 엊그제 장을 볼 때, 아직은 철이 일러서 값이 비싼 감귤을 사두었었다. 운전하는 동우 입에 귤을 넣어 준다. 동우도 지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다.


지은이 동우의 입술 끝에서 그녀의 기다란 손가락을 천천히 떼었다. 두 번째 귤이 동우의 입 속으로 들어올 때, 동우는 자기도 모르게 지은의 손가락도 같이 빨았다. 아침밥상에 아줌마에 대한 방어벽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어쩐지 자꾸만 지은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손가락 끝이 동우의 입 속을 한번 다녀온 후, 지은이 입을 열었다.


"동우씨, 우리 입시학원 세무일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세무사를 바꾸려던 참이었어요."


"저야 좋죠~ 고객 한 분 더 생기는 건데요."


"다음 달 기장부터 부탁드릴게요. 이따가 명함 한 장 주셔요."


"네~"


동우의 대답이 떨어지면서, 귤을 든 지은의 손가락이 다시 동우의 입술로 다가갔다. 동우가 다시 지은의 손가락을 느끼듯이 빨았다. 뒷자리에 앉은 소연은 앞자리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 수민만 예리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앞자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 트집 잡을 게 하나도 없었다. 뒷자리에서 소연이 무심하게 물었다.


"남이섬 주차장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이전 06화(소설) How long?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