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How long? 9
태양빛과 먹구름
소연이 아파트 창문을 열었다. 마주 보이는 아파트 건물 사이로 태양이 눈부시게 비춘다. 화요일이다. 태환과 약속한 시간을 맞추려면, 아침은 거르고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한다. 태환이 소연의 풍만한 몸을 싫어할 리는 없겠지만, 소연은 요즘 조금씩 아랫배가 나오고 있음을 의식한다.
태환과는 처음 남녀로 만나는 날인데, 공연히 뱃살이 신경 쓰인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는 자신이 있다. 소연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벗은 몸을 들여다본다. 젖꼭지도 탱탱하고 여전히 이십 대랑 견줄만하다. 태환의 몸이 기다려진다.
천안을 향해 소연이 차를 달린다. 일기 예보도 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에서 청주쯤 지나는데, 하늘이 온통 잿빛으로 어두워진다. 폭우라도 쏟아질 것 같다. 소연은 차를 돌려 휴게소로 들어갔다.
어릴 적에 소연네 집은 점집이었다. 소연이 어릴 때 어머니가 신 내림을 받았었다. 아파트 방 한쪽에서 어머니가 신당을 꾸렸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다. 주로 동네 아줌마들이 어머니를 찾는 고객들이었다. 소연은 어머니가 받은 복채로 간호대학까지 졸업했다. 어머니는 하늘이 저렇게 요상하게 색칠을 하기 시작하면, 손님들을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어린 소연에게 말씀하셨다.
"먹구름이 몰려오면 피해 가면 되는 것이다. 기다리면 된다. 먹구름이 걷히는 데 얼마나 걸릴지, 그건 하늘만 아시는 거다."
소연이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컵에 든 커피가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하늘이 다시 밝아졌다. 다시 운전을 해서 천안에 도착했다. 태환이 이미 식당에 나와 있었다. 풍만한 몸과는 달리 소연은 육식을 싫어한다. 초밥에 사케 한 잔을 곁들여 먹었다. 식당 옆에 바로 모텔이 있었다. 세 시간이면 사케 한잔은 깰 것이다. 소연과 태환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모텔로 들어갔다.
태환은 아침부터 입고 있는 바지가 불편했다. 소연을 떠올릴 때마다 불쑥 커지는 것 때문에, 운전 내내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이렇게 입은 바지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몇 년만이었다. 소연의 몸 위에서 태환은 몇 년 만에 다시 남자가 되었다. 소연의 찢어진 눈꼬리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을 때, 태환은 남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이상했다. 예전엔 여자에게 사정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소연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는데, 사정한 것과는 또 다른 쾌감이 느껴진다.
지은은 일요일 오후 대전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잠자리를 원했으나, 몸살기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하지 않았다. 지금 지은이 원하는 건 동우와의 섹스다.
지은이 결혼 초부터 이혼을 생각한 것도 원인은 섹스였다. 남편과는 잠자리도 하지 못한 채 결혼을 했다. 혼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성화에, 남들 다하는 결혼을 한 것이다. 하지만 신혼여행을 가서 남편과 첫날밤을 치르면서, 지은은 잘못된 결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먹구름 같은 인생이 펼쳐질 것처럼 불길했다.
첫날밤, 지은은 남편이라는 남자가 남자로 느껴지질 않았다. 지은이 남자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가 내 속에 들어와 있어도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를 갖지 않았던 것도 섹스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결국 지은은 사랑이 없는 결혼의 종말을 예감하고 있었다.
지은이 원하는 건 사랑하는 남자와 합법적으로 섹스하는 자유이다. 그 자유는 소연이 추구하는 자유와는 달랐다. 지은은 결혼 생활 십팔 년 동안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지은이 남자 경험도 없이 스물일곱에 결혼할 때는, 나이만 꽉 찼지 너무 어리고 뭘 몰랐다. 결혼제도가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하는 상대와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섹스를 즐길 수 있는 법적 장치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기다리던 남자가 드디어 지은 앞에 나타났다.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남자지만, 동우가 남자로 느껴진다. 저 남자와 합법적으로 섹스 파트너가 되고 싶다. 지은은 두 달 전 동우를 처음 보고 나서, 계획을 수립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생을 건 모험이며 도전이 은밀히 시작되었다.
월요일은 학원 일로 바빴다. 새로 온 학생의 학부모들이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했다. 동우에게 전화를 걸어 편안하게 통화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화요일 오전, 지은이 동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원 일로 상의드릴 게 있는데요, 같이 점심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