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How long? 6
끝이 있는 산책길
재영의 당당한 발언에 현진도 머뭇거리지 않고 따라나섰다. 재영이 펜션으로 들어가서 웃옷을 두 개 가지고 나온다. 현진의 어깨에 재영의 겉옷 하나를 걸쳐준다. 둘이서 별빛이 내려앉는 숲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하수민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도로 주워 담았다. 그 누구의 연애에도 관대한 소연이, 수민의 허위 어린 입방정을 가만 두고 볼 사람이 아니다. 소연이랑 붙어봤자 본인만 손해라는 걸 수민은 알고 있다. 수민은 도덕주의자가 아니다. 그냥 남자가 붙지 않는 거다. 그걸 수민만 모르고 있다.
동우는 어제 먹었던 술에 오늘 술까지 먹어서, 세상이 어질어질하다. 그래도 이 아줌마들과 엮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조심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준다. 차라리 이럴 땐 얼른 들어가서 잠이나 자는 게 여러 모로 돈 버는 일일 것 같았다.
잠자리만 뺀다면, 그래도 이십 대 여자애들이랑 노는 것보다 또래 아줌마들이랑 노는 게 훨씬 재미는 있다. 한선영도 애들 같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십 대처럼 몸 맛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한선영은 뭐든 다 어중간하다. 약사라는 직업과 선영의 집안이 보통 이상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여자로서 끌리는 것도 아니다.
"저는 어젯밤 과음한 데다가 오늘도 과음을 해서, 이만 물러 갑니다~ 좋은 밤들 보내세요."
동우가 핼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뱉어내고는, 등을 돌려 펜션 안으로 도망가버린다. 유지은이 그런 동우의 등을 한참 동안 비밀스럽게 바라본다. 수민도 하품을 하며 소연이 걸쳐준 겉옷의 앞섶을 여몄다. 지은이 수민을 데리고 펜션으로 들어갔다. 소연은 남은 불을 좀 더 쬐다가 들어가겠다고 했다. 수민이 걸치고 있던 웃옷을 소연이 받아 들었다.
마당에 피워놓은 불 앞에, 태환과 소연이 둘만 남았다. 태환이 소연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소연이 은근슬쩍 태환의 앞으로 자리를 바꿨다. 조금 떨어진 펜션 쪽에서 보면 건장한 남자 하나가 혼자 서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소연이 커다란 엉덩이를 태환의 아래쪽으로 바짝 붙여본다. 태환의 아래쪽이 얼마나 단단해지는지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소연의 엉덩이가 태환의 몸과 붙자, 태환의 남성이 오랜만에 단단해지고 있었다. 작년에 몸이 아파서 퇴사한 이후로, 태환은 여자랑 잔 적이 없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발기가 잘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소연을 보는 순간부터, 태환의 남성이 다시 돌아왔다. 고마운 여자다. 이 여자랑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데, 눈들이 너무 많다. 재영과 현진이 산책 중이니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차라리 내일 일요일이 지나고, 빨리 화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연은 솔직하고 신속했다. 화요일 점심에 천안에서 만나기로 둘은 약속했었다.
현진과 재영은 까만 밤길을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다. 재영의 한쪽 손에는 성능 좋은 라이트가 들려 있다. 재영은 웃옷을 챙겨 나올 때, 콘돔과 휴지도 주머니에 챙겨 나왔다. 하지만 숲 속 밤공기가 너무 찬 것 같다. 현진이 건강하긴 하지만 미안하고 조심스럽다. 재영은 둘이서 나란히 밤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행복하다.
재영은 어릴 때 시골에 있는 외가에 며칠씩 머물다 오곤 했었다. 줄로 묶어놓지 않은 동네 개들이 아무 데나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잘 짖지도 않았다. 옆집 누렁이가 외할머니댁 열린 문으로 매일 들어왔다. 외할머니댁 점순이를 보러 온 것이다. 누렁이만 점순이를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다른 집 개들도 점순이를 찾아왔다. 하지만 점순이는 다른 개들이 옆에 오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누렁이는 매일 찾아와서 점순이를 핥아주었다. 며칠을 핥아주고 나서야, 점순이가 누렁이에게 뒤를 내주었다. 외할머니는 어린 재영이가 볼까 봐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지만, 이미 재영은 섹스의 고귀함을 누렁이를 통해 다 배웠다. 재영은 사랑하는 여자를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것을 그때 깨우쳤다.
"재영아, 이대로 밤길을 걸어서 간다면, 우리는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현진은 의미 없는 질문을 재영에게 던졌다. 이대로 재영이와 멀리멀리 끝없이 걷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걷다 보면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파지겠지, 그리고 아늑하고 깨끗한 침대가 그리워질 거야. 그래서 재영이랑 둘이 걷는 데는 끝이 반드시 오게 될 거라는 걸 현진도 알고 있었다. 남편과 의무적인 공동체 시민처럼 살면서, 현진은 늘 재영과 결혼 생활이 궁금했었다. 우리가 각자 이혼하고 다시 결혼한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산책길처럼?
숲 쪽으로 산책을 갔던 현진과 재영이 하늘숲 펜션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소연이 태환의 몸 앞에서 뒤로 팔을 뻗어, 바지 위에서 태환의 남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 남자 거는 얼마나 길까?' 그녀의 손길이만큼 된다. 13~14센티 정도일 거라고 소연은 보지 않고도 짐작을 한다. 작지는 않은 편이다. 소연이 저쪽에서 걸어오는 재영과 현진을 보고, 만지고 있던 태환의 남성을 토닥이며 팔을 제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두 걸음 옆으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