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은 동우의 것을 받아들이고 알게 되었다. 그녀가 이제껏 느꼈던 공허의 실체는 남성이었다. 영혼이 목마르다고 느꼈던 것도, 배후엔 남성에 대한 욕망이었다. 지은은 지금 하나도 목마르지가 않다.
뒤에서 삽입하던 동우가 지은을 안으며 천천히 뺐다. 지은이 인생 계획이 있는 것처럼, 동우에게도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다. 여자를 임신시켜서 낙태를 하게 하는 죄는 짓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세무사 자격증을 딴 이후로 조건이 점점 더 까다로워진다.
그녀의 몸에서 남성이 빠져나가자, 지은의 몸이 더 뜨겁게 남성을 찾는다. 지은이 동우를 소파 쪽으로 밀어붙인다. 학부모들이 앉아있곤 했던 소파 위에 동우가 눕혀진다. 이번엔 지은이 동우의 위로 올라갔다. 동우는 깜짝 놀랐다. 지은에게서 섹스에 열광하는 여자의 진면목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둘의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동우는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하나의 생각만 붙들고 있는 중이다. 지은과 더 하고 싶지만 안 되겠다. 이러다 이 여자 임신이라도 하면, 내 인생은 더럽게 꼬인다.
동우가 독하게 마음먹고 섹스를 멈추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지은을 안심시킨다. 지은도 본능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본다. 그래, 오늘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 섹스의 끝이 궁금하지만, 다시 내일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동우가 차를 타고 학원 건물을 떠나고, 지은도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갔다.
현진은 토요일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현진이 금요일까지 학교에서 근무하고, 토요일에 남편은 축구 동호회 경기를 뛰러 다닌다. 토요일에만 학생들도 남편도 없는 온전한 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이번 주에 재영이 대전 부모님 댁에 오는 날이다.
재영은 밝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현진이 앉아있는 커피숍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여전히 날렵한 셰이프를 유지하는 재영을 보는 현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현진은 지난번 가평에서 고기 사러 가는 길에, 재영이 애타게 찾던 콘돔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난다. 그런 야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장난기가 있는 재영의 눈빛을 떠올리는데, 순간 열이 확 오르는 느낌이다. 벌써 갱년기도 아닐 텐데, 몸에 열감이 있다. 재영이 자리에 앉으며 현진에게 물었다.
"너 지금 야한 상상하고 있었지? 니 얼굴 완전 자두야~"
'자두'라는 단어를 듣는데, 현진의 얼굴이 더 빨개진다. 대학 1학년 때 재영과의 첫 키스 때였다. 재영이 현진에게 물었었다.
"너는 무슨 과일 좋아해?"
"난 자두~"
'두'자가 끝나기도 전에 재영의 입술이 자두 같은 현진의 입술에 포개져있었다. 그때는 재영이 어설프게 현진을 끌어안았었다. 재영의 남성은 발기되지 않았었다. 순수했던 첫 키스였다. 보름달빛이 너무 밝은 밤이었다. 그 보름달을 보며 재영이 현진에게 또 물었다.
"현진아, 저 보름달은 꽉 찬 거 같으니?"
현진은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을 선택했었다. 보름달이나 초승달이나 크기도 질량도 똑같다. 단지 우리 눈에만 다르게 보일 뿐이다. 지구에 작용하는 "시간"의 법칙 때문이다. 국문학도답게 현진이 대답했다.
"텅 빈 허무 같은데~"
"그게 무슨 뜻이야?"
"중의적 표현이야. 허무는 빈 것일 수도 가득 찬 것일 수도 있거든~ 신방과에선 도대체 무얼 배우는 겁니까?"
현진이 군대 조교 같은 발성을 흉내 내며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우리가 달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재영은 공학도가 아니다. 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따위 계산할 줄도, 계산하기도 싫다. 재영이 현진의 옆에서 <Fly me to the moon>을 나직하게 불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