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How long? 13

공허에 대한 욕망

by 도라지

재영은 어제 대전 부모님 댁에 내려오면서 정관수술을 했다. 이제 마음 놓고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재영을 닮아 늘씬하게 잘 자란 두 딸이 있다. 아들을 하나 꼭 더 낳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부모님의 고집스러운 생각과는 상관없이, 와이프가 둘째를 낳고 자궁 수술을 해야만 했었다. 재영은 두 딸이면 충분하다. 이제 자손을 더 바라지 않는다. 재영이 동우처럼 총각이면 정관수술 생각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현진은 재영의 표정이나 몸짓에서 이상한 걸 발견하지 못했다.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한 것도 재영이었다. 현진과의 키스를 떠올리며 수술대에 누웠던 재영이다. 재영의 신경이 온통 아래쪽에 가있다. 어제 오후 수술한 탓에, 약을 먹고 있어도 아직도 통증이 있다. 그래도 현진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통증이 덜한 것도 같다.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고 재영은 생각한다.


"수술 후 잠자리를 해도 되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재영이 의사에게 물었었다. 의사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보름 동안은 절대 여자 옆에 가시면 안 됩니다."


한번 더 병원에 나와서 검사를 해보고 수술이 잘 됐는지 확인한 후에, 의사의 지시가 있어야 잠자리가 가능하다고 했었다.


커피숍에서 나온 재영이 현진에게 말했다.


"나 어제 정관 수술했어. 운전도 힘들어서 택시 타고 나왔어. 너 때문에 수술했어."


현진이 재영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 내가 부모님 댁에 데려다줄게, 나는 내 차로 왔거든~"


현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재영이 부모님 집 앞에 도착해서 내렸다. 현진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꾸만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몸무게도 1킬로 빼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속옷도 새로 하나 사야겠다. 남편과 잠자리를 안 한 지 오래돼서, 야한 영화라도 봐 두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재영이 수술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갑자기 현진의 아래에 구멍이 하나 있다는 것이 문득 생각났다. 현진은 여성의 몸이 구멍을 하나 가지고 태어난 것에 대해 그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다. 갑자기 거기가 휑하게 느껴진다.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거린다. 여자가 여자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이유는 이 구멍, 공허를 채우기 위한 경쟁 때문이다.


소연은 화요일에 태환을 만나고 난 뒤로 더 자주 그녀의 몸을 들여다본다. 그날 태환은 정성을 다해 소연을 애무해주었다. 구석구석 태환의 입술과 혀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태환의 입안에 들어가 있던 소연의 유방이 아직도 얼얼한 느낌이다. 그냥 자기의 욕정만 채우고 끝내버리던 어떤 놈과는 달랐다. 소연은 다음에는 태환을 더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욕망마저 들고 있다. 웨이트를 더 열심히 하는 이유도 태환 때문이다. 남자와의 섹스가 섹스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걸 모처럼 다시 느끼고 있는 중이다. 태환과 자고 나서 섹스만 즐거운 게 아니라, 사는 게 즐거워졌다. 다음 주 화요일 소연은 다시 태환과 만나기로 했다. 소연은 비어있는 아래 구멍이 요즘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틀 후면 다시 구멍은 채워질 것이다. 지금은 잠시 비어있어도 공허하지가 않다.


지은은 어제 동우와 첫 섹스를 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포르노 영화를 보고 배운 게 아니었다. 동우의 입술이 지은의 입술을 덮는 순간부터 지은의 몸은 뜨거운 여성이었다. 그녀의 몸이 그렇게 남성을 갈망하고 있었는지 지은도 몰랐었다. 지은은 이혼을 결심했다. 내일 월요일이 되면 법원에 가서 서류를 가지고 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일 게 없다. 동우와 결혼을 못할 지라도, 이대로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인생 낭비에 불과하다. 여자인 시간이 길지가 않다. 여자가 될 수 있을 때 진짜 여자로 살아야겠다고 지은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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