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바람 속에 야리꾸리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자꾸만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마음 때문에 심란한 동우가 잘하지 않던 저녁 산책을 나왔다. 동우는 토요일 저녁 지은과 나누었던 섹스를 곱씹어본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여자가 지은의 몸속에 들어있었다. 이때껏 동우도 스무 명 정도의 여자와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지은은 비교불가다. 전설 같은 이야기 속의 그런 여자가 지은일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자꾸만 다시 하고 싶게 만드는 여자였다. 동우는 갈등한다. 유부녀와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유부녀는 단 한 번의 섹스로 끝내곤 했었다. 미혼인 여자들도 동우 뒤에 줄 서 있다. 그런데 나이도 동갑인 유부녀라니, 말도 안 된다. 그 말도 안 되는 여자의 구멍이 자꾸만 동우를 미치게 한다.
일요일 저녁,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동우가 한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어제 못 마친 섹스를 선영에게서라도 마쳐야겠다. 선영이 동우의 오피스텔로 찾아왔다. 제약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약사답게 영양제를 가져왔다. 선영은 늘 동우에게 무엇을 주려고 한다. 선영이 나이로는 동우보다 한참 어리지만 그녀 자신이 동우보다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모로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는 여자다. 잠자리도 별로다. 자꾸만 지은 생각이 난다.
월요일이 되었다. 동우가 지은에게 톡을 보냈다. 만나고 싶다고 했다. 지은이 오후 2시 이후로 가능하다고 답을 보내왔다. 오전에 지은은 벌써 법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제 동우랑은 별개로 마음에 확신이 섰다. 서류를 작성해서 집에 놓고 나오는 길이다. 길가에 가로수들이 옷 색깔을 바꾸어 입었다. 나도 인생에서 옷을 한 번 갈아입을 때가 되었다고 지은은 생각한다. 어차피 인생은 마른나무처럼 앙상하게 제 몸을 드러낼 때가 오고야 만다. 화려한 색깔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것도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동우는 괜히 설렌다. 단 한 번의 섹스가 동우의 삶 전체를 관통한 기분이다. 여자는 단지 남성을 받아주는 구멍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열병을 앓듯이 불타오르는 사랑 따위 다 소설 속 거짓말이라고 치부했었다. 숱한 여자들을 만났지만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래서 특별할 것도 없는 선영과 결혼도 고려중이었다. 집안에서 늙은 총각이라고 자꾸만 재촉하는 통에, 명절에도 집을 안 간 지 두해 째다.
이십 대에 여자와 섹스를 하기 전 설렜던 기분과는 또 다르다. 이미 그 여자를 경험했는데, 이상하게 설렌다. 동우는 지금 혼란스럽다.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이유로, 나쁜 남자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동우가 아닌가. 친구들은 동우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다들 가정과 와이프라는 굴레 속에 갇혀, 돈 벌어다 주는 농기계 정도로 살고 있다. 미혼 여성들이 줄줄 침을 흘리며 먼저 자자고 덤벼드는 동우는, 남자들 세계에선 잘난 놈이었다. 잘난 놈이 지금 수렁에 빠진 기분이다.
지은이 주저하지 않는 눈빛으로 동우의 차에 올라탔다. 지은은 이혼이 실행될 때까지, 아니 이혼 후에도 굳이 동우에게 이혼에 관해 말할 생각이 없다. 인생 계획이 동우를 통해 확실한 계기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동우와 상관없이 그녀의 갈 길을 간다. 동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날씨도 좋은데, 갑사 산책할래요?"
"네, 좋아요~"
동우는 지은이 차에 올라탈 때부터 물건이 벌써 커졌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십 대 때도 한번 잔 여자를 다시 만날 때, 이렇게 순식간에 물건이 커지진 않았었다. 또 당황스럽다. 춘마곡 추갑사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지은은 다행히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산사를 한 바퀴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돌았다. 얼마동안 걸었는지 모르겠다. 내려오니 저녁이다. 식당에서 두 사람이 산채비빔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지은이 동동주 한 대접을 혼자 다 마신다. 차를 타고 대전으로 가는 길에, 동우가 물었다.
"모텔로 들어가도 돼요?"
"네."
지은은 침착했다. 동우와 지은이 나란히 모텔방으로 들어갔다. 지은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동우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지은을 뜨겁게 안았다. 지은의 몸이 다시 여성으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한없이 깊고 아찔한 저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득한 심연 속으로 두 사람이 사라진다.
지은은 남편 몰래 피임을 했었다. 가평 여행 이후로 몸을 가임 상태로 돌려놓고 있는 중이다. 동우의 아이를 갖고 싶다. 그런 지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동우가 제 손으로 콘돔을 씌운다. 지은은 동우의 남성을 날것으로 원하지만, 동우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 그래도 끝도 없이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