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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Feb 10.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4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남자의 연심이다. 박태성은 6층부터 1층까지 세 들어 있는 점포의 여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은정을 향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보지만, 항해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풍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작은 배처럼 자꾸만 은정을 향한 시선을 멈출 수가 없다. 일부러 그의 시선을 2층 진현주와 6층 신재희에게, 그리고 1층 고주연과 김서영에게로 분산시켜 보지만 태성의 시선이 결국 멈추어버리는 것은 이은정에게서이다.


진즉부터 태성의 은정을 향한 마음을 눈치채고 있던 진현주의 표정이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현주의 눈앞에서 태성의 눈동자가 은정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노라니 평온했던 진현주의 심기가 몹시도 불쾌해진다. 현주는 태성의 마음을 얻어보려고 몇 년 동안 수작을 걸어보았지만 헛 일이었다.


태성의 마음이 현주에게 열리지 않는 이유가 4층 꾸에로 공방의 사장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현주는 이은정의 사업이 아주 잘 돼서 청진빌딩에서 나가주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에는 이은정이 아예 망해 버려서 월세도 못 내다가 보증금마저 다 까먹은 채로 쓸쓸히 청진빌딩에서 퇴장해주기를 바란 적도 있다.


그런데 4층 꾸에로 공방에는 여전히 수강생들로 붐비고 있고,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사업도 잘 되는지 택배 트럭은 하루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물건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은정은 진현주 못지않게 부지런히 일을 하는 여자였다. 진현주는 박태성을 사이에 두고 엇갈린 연심의 관계만 아니라면, 이은정을 괜찮은 동생으로 잘 사귀어두고 싶은 마음마저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주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다른 여자를 곱게 인정해주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현주는 그녀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만큼, 박태성과 이은정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중이다. 이은정이 차라리 말루스 여사장 신재희처럼 늙은 남자의 애인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한참을 불면증 이야기를 나누던 이은정이 식당 안의 주위를 둘러보며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을 꺼냈다.


"청진일보 기자님들은 한 분도 보이질 않네요."


그러자 김서영이 나서며 자신감 있는 태도로 대꾸했다.


"기자님들은 대부분 오전에는 외부에 나가서 취재를 하는가 봐요. 내일 저녁에 여기서 단체 회식을 하겠다고 미리 예약하던 걸요."


청진 일보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주성훈의 얼굴을 청진빌딩에서 보기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은정은 내일 청진일보 단체회식 자리에 주성훈이 나타날 것인지 그게 초미의 관심사일 뿐이다.


"청진일보 대표님은 신문사에는 자주 안 오시는 것 같던데, 기자님들이 사장 얼굴을 알고나 있을까요? 후훗~"


지금 이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주성훈과 가장 친분이 있기도 한 박태성에게 이은정이 가벼운 농담처럼 질문을 던졌다. 이은정의 복잡한 머릿속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박태성이 착실하게 대답을 아끼지 않고 말해 주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워낙 귀한 분이라 모습을 잘 드러내질 않는 건가 봐요. 흐흐. 내일은 주성훈 대표도 오는 것 같던데요, 안 그래요, 고여사님?"


고여사가 박태성의 너스레를 이어받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콧소리까지 섞어가며 말했다.


"주성훈 대표님이 그렇게 잘생겼다면서요? 돈 많아 능력 뛰어나 인물 좋아, 세상에 다 가진 남자네요~"


고주연은 옆 가게 해누리 강사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주성훈의 능력과 외모를 찬양하며 내일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옆에서 딸 김서영이 엄마 고주연을 향해 담임선생님처럼 실눈을 뜨며 경고하듯이 낮게 말했다.


"엄마는~ 그런 분들은 우리랑 사는 세계가 다르잖아요. 우리도 맛있게 음식 만들어서 부자 되면 되지요."


김서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고주연 못지않게 내일을 기다리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얼마나 잘 나고 대단한 남자이길래 다들 이렇게 난리란 말인가. 가죽공방 이은정이 주성훈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챈 김서영은, 이은정을 향한 박태성의 시선과 박태성을 향한 진현주의 시선을 다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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